코리아타운 수난 시대
성민희 / 재미수필가
아침부터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40년 넘게 키워 온 우리의 ‘코리아타운‘을 어떤 일이 있어도 사수해야 한다며 유권자 등록을 권한다. 땅을 지키기 위해 주민투표를 하라고? 이 평화로운 미국에서 난데없는 영토 분쟁이라니. 그렇잖아도 ‘코리아타운 두 동강 저지 끝까지 힘 모은다’ 아침 신문의 타이틀을 보고 분개하고 있는 중이었다.
지난달에 가세티 엘에이 시장은 임시 노숙자 보호소를 시 소유 주차장에 건축한다는 발표를 했다. 그곳은 한인타운의 가장 번화한 지역 중 하나로, 한인 사업체가 밀집해 있고 인근에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다. 그 뿐 아니라 주상복합 아파트와 콘도 등이 신축되어 주거지역으로도 부상하는 곳이다. 이런 지역에 노숙자 보호소가 들어선다면 한인 상권에 타격은 물론 학생이나 일반인의 안전 문제에도 비상등이 켜진다.
그런데 또 이번 주에는 한인타운이 반으로 분리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방글라데시 커뮤니티가 한인타운의 반을 차지하는 북쪽 지역을 방글라데시 타운으로 분리·독립하려는 계획을 주민의회에 제출했다. 이의 통과를 위해 오는 6월 19일에 실시될 주민투표를 대비하여 유권자 등록을 독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한인타운(Korea Town)’이라는 이름이 붙은, 엄연히 허가를 받은 우리 동네 일부를 뺏어가겠다는 셈이다.
원래 한인타운은 1980년 대 초까지만 해도 히스패닉이나 흑인이 많이 사는 빈민가였다. 우범지대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갓 이민 온 사람은 잠깐 살다가 자리를 잡으면 주변 도시로 집을 사서 떠났다. 한인상가는 밀집되었지만 한인이 살지 않는 한인타운이었다. 나는 거기서 40분 쯤 떨어진 오렌지카운티에 터를 잡았기에 주말의 나들이로 타운을 찾았다. 그때는 프리웨이에서 내리면 드문드문 보이는 투박한 한글간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한국마켓에 들어서면 쌀에서도 배추에서도 라면에서도 사랑이 새록새록 느껴졌다. 간혹 짜장면이라도 한 그릇 사 먹는다면 아주 사치스러운 주말을 보낸 셈이었다. 코리아타운은 우리의 향수병을 그렇게 달래주었다.
돌아보면 한인의 미국 이민은 1980년도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늘어났다. 2017년 한국 정부가 발표한 미주동포 현황을 보면 1984년에는 2만 5천 820명이 이민을 왔다. 2017년의 923명 이민에 비하면 8배나 많은 셈이다. 마구 몰려오는 이민 행렬에 비례하여 한인 상가는 올림픽가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벋어갔다. 마켓, 식당, 봉제업 등 여러 분야의 사업 규모가 본격적으로 커져 LA 시의회는 ‘코리아타운’이라는 공식적인 행정구역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한인 경제가 활기를 띠며 승승장구하던 1992년. 4.29 폭동이 났다. 흑인 로드니 킹을 집단 구타한 백인 경관 다섯 명에 대한 배심원 판결이 무죄로 나오자 흑인들이 반발하여 일으킨 폭동이었다. 때마침 오렌지주스를 훔쳐가던 흑인 소녀를 한인 업주 두순자 씨가 총을 발사하여 사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빌미로 언론과 경찰은 폭동을 한흑 갈등으로 변질시켰다. 경찰은 베벌리힐즈로 올라가는 길은 막고 한인타운 쪽은 무방비로 열어두어 폭도들의 행보를 한인타운 쪽으로 유도했다. 타운은 우리의 젊은이들이 총으로 무장한 채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전쟁터가 되었다. 심혈을 기울여 일으킨 가게가 불에 타고 물건은 강탈을 당했으니 한인들의 비통한 심경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타운 경제는 무너지고 많은 사람들은 빈털터리가 되어 정신적 고통을 안은 채 타주로 떠나갔다.
그로부터 26년 후. 한인사회는 다시 일어났다. 고난을 딛고 일어난 많은 사업체가 주류사회를 향해 영역을 넓히고, 부모의 고생을 보며 자란 1.5세와 2세는 공직, 전문직, 기술직, 관리직 등 각 분야에서 자랑스러운 한인으로 살아간다. 근래 들어 타운에는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도 속속 신축되어 마치 신도시가 세워진 것 같다. 외곽에 거주하던 한인이 몰려들기 시작해 집값도 주변 도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뛰었다. 그야말로 한인이 거주하며 한인이 활동하는 명실공한 한인타운이 된 것이다. 이제 코리아타운은 한국 고유의 정서와 문화가 형성되어 한인에게는 미국에서 한국을 살 수 있는 행복한 공간이고, 타인종에게는 한국의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엘에이의 명소가 되었다.
그런데 이 무슨 변괴인가? 노숙자 보호소 설치와 방글라데시 분리 독립이라니.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여러 한인 단체와 교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엘에이 시에게는 보호소 설치 반대를 위한 공청회 개최를 요구하고 방글라데시 분리 반대를 위해서는 반대투표 하기를 독려한다. 한인도 투표권으로 힘을 결집할 수 있음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어떻게 일구어 온 우리 타운인데. 이번에도 또 당할 수는 없지 않은가. 친구와의 통화를 끝내자 나도 급히 전화번호를 누른다. <2018. 8.1 대구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