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통신]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인연은 저절로 친해진다는 ‘짝의 법칙’ 지나치게 에너지 쏟는 사람을 조심해야결국은 마음이 황폐해질 수도 있다
의학 용어에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이라는 단어가 있다.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반복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것이 사실인양 믿게 되는 일종의 인격 장애 증상이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은 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때 거짓말로 자신을 포장한다는 것이다. 마치 자기 최면을 건 것처럼 거짓이 진실로 느껴져 그것이 폭로가 되어도 전혀 거짓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자존감이 낮은 사람, 혹은 열등감이 큰 사람에게 이런 증세가 나타난다.
학력 위조 사건으로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신정아, 스탠포드와 하버드대를 동시에 합격했으며 2 년간 두 학교를 다녀본 뒤 한 학교를 선택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던 한국 여고생, DNA 분석 결과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는데도 자신을 러시아 혁명 이후 처형을 당한 공주 아나스타샤라고 주장하던 애나 앤더슨이 바로 이 증상의 주인공이다.
얼마 전, 말로만 듣던 리플리 증후군이 바로 이런 건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일이 있었다. 어떤 모임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탈퇴한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자신의 비상식적인 행동은 모두 삭제한 채 남아있는 회원들은 나쁜 사람으로, 가해자인 자신은 피해자로 각색한 이야기를 퍼뜨렸다. 모르는 사람이야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지만 모임을 함께한 사람은 어이가 없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자기를 비호하느라 왜곡한 이야기를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회원한테도 서슴없이 하는 것이었다. 듣는 순간 아, 이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거짓말을 남발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학력도 경력도 몇 년 사이에 엄청나게 부풀려져 어떤 이는 저 부부의 지나간 직업은 손가락 다섯 개로도 모자란다며 혀를 내두른다.
엘에이 한인 사회는 한 다리 건너 두 다리만 되어도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건 이민 생활 이 후에 만들어진 스토리에 한해서다. 자신이 감추고자 한다면 한국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모양으로 살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동창이나 고향 사람이야 상관이 없지만 그러지 못한 만남은 백지 상태다. 사람을 만나고 사귀고 마음을 주고받는 일에 신중해야 한다던 이민 선배의 말을 이제야 절감한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다를 게 무에 있을까마는 이민사회에서의 만남은 뿌리를 모르니 조심해야한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사실 사람의 사귐에서 아무런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을 때는 나쁜 사람이 없다. 이익이나 목적을 위해 접근한 사람이라면 더더구나 천사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 생기면 본색을 드러내어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분쟁을 일으킨다.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억울한 누명을 씌우기도 한다. 서로 흉허물 없이 주고받았던 말이 비수가 되어 돌아 올 때도 있다. 입을 크게 벌려 말하는 사람이 정의고 침묵하는 사람은 몽땅 뒤집어쓴 채 오해를 받는다. 요새는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난다. 그러므로 나쁜 인연은 재앙이다.
법정스님은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진정한 인연과 스쳐갈 인연을 구별하지 못하고 헤프게 인연을 맺으면 삶이 침해되는 고통을 받는다. 사람에게서 받는 피해는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 부은 대가로 받는 벌이다.’ 라고 했다. 조지 워싱턴 대통령도 ‘품행이 바른 친구와 교제하라. 나쁜 친구와 교제하느니 차라리 외톨이로 지내는 것이 낫다.’ 고 했다.
사람의 사회성과 인간관계에 대해서 몇 권의 책을 쓴 중국의 작가 쑤지엔쥔은 친구의 유형을 여섯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했다. 1)고난과 기쁨을 함께하는 진실한 친구, 평생 우정을 쌓으라. 2)사업상 시너지 창출을 위한 신뢰와 지원 관계를 바탕으로 구축된 친구. 함께 사업을 하라. 3)문화와 취향이 맞아 취미 생활을 함께하는 오락 친구. 너무 자주 만나지 마라. 4)향락 추구를 함께 하는 술친구. 최대한 자제하라. 5)도움이 될 때만 다가오는 이해타산적인 친구. 미련 없이 절교하라. 6)목표를 위해 온갖 미사여구와 가식적인 감정으로 환심을 사는, 상대방을 꼼짝 못할 정도로 다정다감하고 친절하나 관계가 형성되면 악용하는 교활한 친구. 단호하게 관계를 끊어라.
인간관계에 짝의 법칙 (Couple)이라는 것이 있다. 나와 통하는 사람과는 저절로 친해지므로 의도적으로 관계를 엮으려고 애를 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나치게 시간과 물질과 에너지를 내게 쏟는 사람은 아무리 달콤하더라도 조심해야한다. 결국은 마음이 황폐해 지는 일을 만나게 된다. 리플리 증후군 때문이든 무엇이든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얼굴로도 변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경험하지 않고 사는 것도 축복이다.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법정스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는다. <미주문학> 2021.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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