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가족처럼 느껴질 / 이정호

 

  모임이나 행사에 가면 보통은 격식을 차리고 어색하고 편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간이 지나야 그런 분위기가 조금씩 사라지게 된다. 그런데 참석한 사람들이 가족처럼 느껴지고 편안한 모임이 있었다. 그런 기분과 감정은 처음이었다. 12 연말에 모인 글마루 송년모임이었다.

 

  글마루에 나간지도  20 년이 되었다. 신문광고를 보고 재미수필문학가협회에 나갔는데 그때 옆자리에 앉은 선생께서 글공부를 많이 하려면 글마루에 나가라고 하면서 추천을 주었다. 이후로부터 나가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다닌 것이다. 그때는 고원선생님께서 글마루를 인도하며 쓰는 법을 지도해 주셨다. 처음에 나갔을 때는 윌셔와 뉴햄프셔에 있는 윌셔 갤러리아 4층에 기독교 방송국이 있었는데 그곳 일부를 빌려서 모임을 가졌었다. 모임은 항상 늦게 끝났다. 강의를 하시고 작품들을 평해 주시며 저녁 10시를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 강당에서 글마루 행사를 하곤 했었는데 글마루 회원들의 어린 자녀들이 나와서 그들의 재능을 선보이며 행사를 도와줬었다. 자녀들이 이제는 결혼해서 어른으로 성장하였다. 글마루를 떠나간 회원들도 있고 돌아가신 회윈도 있고 새로 들어 회윈들도 있다. 후로 글마루는 글마루 회원 사무실로 모임 장소를 옯겼다. 그리고 고원 선생님은 허리가 아파서 고생을 하셨는데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셨다. 수술은 마치고 회복하고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회복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모든 회윈들은 놀랬고 장례식에서 고원 선생님의 모습을 마직막으로 있었다. 교회에서 장례식이 치루어 졌고 날은 비가 엄청나게 것으로 기억한다.

 

  그후로 글마루는  한미 교육원에서 강의실을 빌려 공부를 계속해 나갔다. 그리고 팬데믹이 터지고 이제는 거의 줌모임으로 모이고 있다. 이번에 송년파티 모임을 용궁에서 가지게 되었다. 들어가니 테이블이 5개가 준비되어 있었다.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2개의 테이블만 사람들이 앉게 되었다. 옆에는 외국사람이 앉았다. 회원 남편이었다. 그는 독일에서 사람이었다.

 

  프로그램도 신선하게 준비하였다. 바구니에서 종이쪽지를 뽑아서 그것을 펼치면 회원의 이름이 나온다. 이름으로 삼행시를 짓는 것이다. 회원의 성격과 분위기에 맞추어 소개하듯이 덕담으로 글을 쓰는 것이다. 삼행시를 읽은 다음에 시에 해당되는 사람은 동시에 상품도 받아간다. 좋은 아이디어로 생각되었다.

 

   싱얼롱도 하였다. 동요 부르기였다. 회원중에 음악에 조예가 깊으신 분이 키보드를 가지고 나왔다. 그래서 카톡으로 미리 보낸 악보를 보고 옛날 동요를 불렀고 그것은 우리들을 어릴 동심의 세계로 보내기에 충분하였다.

 

  아무 부담 없는 모임, 편안한 모임이어서 좋았다. 항상 남처럼 느껴졌던 회원들이 어느날 갑자기 옆에 있는 가족처럼 느껴졌다. 나이가 들어 가서일까. 그들을 만나는 것이 반갑고 즐겁다. 이런 감정이 없어지지 않고 지속되어 지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