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쓴 물건들 / 이정호
나에게는 오래 쓴 물건 들이 많다. 제일 오래 쓴 물건은 REMINGTON 브랜드인 전기 면도기이다. 그것은 내가 1986년 8월에 미국 일리노이 주 카본데일에 있는 주립대학으로 유학을 떠났을 때 캘리포니아 데이비스를 들렸는데 거기서 누나로부터 선물을 받은 것이다. 누나는 자형과 함께 UC Davis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가는 길에 누나가 사는 곳을 먼저 갔었다. 계산해 보면 그 면도기를 37년쯤 써 온 것이다. 성능이 예전처럼 좋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아직은 쓸 만도 하다.
나에게 일단 들어 온 물건들은 쉽게 나가지 않는다. 오래 쓰면 익숙해지고 사용하기 편리해서 그렇다. 그렇다고 변화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물건을 받아들이고 또 익숙해지면 더 편리해 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일단 정이 든 물건들은 여간해서는 바꾸기가 싫다.
침대는 우리가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몇 년 후부터 써왔다. 약 17년 정도 쓴 것으로 기억한다. 침대에서 삐끄덕거리는 소리가 난다고 아내가 새 침대로 바꾸면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내가 보기에는 어쩌다가 소리가 나고 아직도 쿠션이 죽지 않았고 더 쓸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이 샌프란시스코 자기가 사는 방에 Orthopedic 좋은 침대를 들여 놓았다. 그러면서 부모님에게도 좋은 침대를 사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내가 아직 우리 침대는 괜찮다고 하였다.
새로 물건을 바꾸는 것이 좋은 경우도 있다. 집 지하에 따뜻한 물을 데우는 보일러가 있다. 보일러는 오래 쓰면 그것이 터져서 바꾸어야 한다. 보편적으로 나 같은 경우에는 쓰는데 까지 쓰다가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면 플러머를 불러서 바꾼다. 그런데 아내가 말했다. 보일러의 수명이 있다고 한다. 오래 썼으면 지금은 괜찮아도 바꾸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 새 것으로 바꾸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 오랫동안 지하에서 가끔 파이프에서 나오는 소리 같은 쿵쿵하는 소리가 났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를 딱히 몰랐다. 그런데 새 보일러를 갈고 난 후부터 쿵쿵하는 소리가 더 이상 나지 않았다. 원인은 보일러가 오래되어서 거기서 나는 소리였던 것 같았다. 그래서 미리 바꾸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쓰는 책상과 의자도 이 집에 이사오기 전부터 써 왔으니 거의 30년이 되가는 것 같다. 아내는 책상도 학생 책상용처럼 적고 하니 더 크고 좋은 새것으로 바꾸자고 몇 번을 말해 왔으나 나는 괜찮다고 하였다. 한 번은 작은 아들과 화상채팅을 하는데 아들의 의자가 푹신하고 뒤로 편하게 기댈 수 있는 좋은 의자로 바뀌었다. 아들이 의자가 참 편하다고 하면서 아버지도 꼭 이런 의자로 바꾸라고 하면서 자기가 사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나는 현재 쓰고 있는 의자가 괜찮다고 하면서 거절을 하였다.
앞으로도 이렇게 익숙해온 나의 습관이 바꿔 지기는 힘들 것 같고 나에게 일단 들어 온 물건들은 쓰는 데 까지 써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신제품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정들고 익숙해온 물건들을 쉽게 뿌리치지는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