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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산책

Articles 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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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안도현의 시와 연애하는 법 (#1~ #26)
정조앤
Jan 19, 2022 2712
Notice 시인을 만드는 9개의 비망록 / 정일근 file
정조앤
Apr 05, 2016 2429
489 문(門)/ 문성록
정조앤
Mar 28, 2025 67
문(門)/ 문성록 이건 버려진 문짝이네 질퍽질퍽한 공터에 누워있는 낡은 문이네 언제나 한 발짝 비켜서서 문지방 닳도록 누군가 드나들게 했던 문이네 군데군데 칠 벗겨지고 풍(風)맞은 사내처럼 사지 뒤틀렸지만 누워서도 누군가 밟고 지나게 하는 중이라네 ...  
488 목련 꽃잎 / 공광규
정조앤
Mar 28, 2025 36
목련 꽃잎 / 공광규 밤사이 어디선가 걸어온 듯 목련 꽃잎 한 장 현관문 앞 복도에 날아와 있다 어려서 죽은 동생 천도제 때 하늘로 올려보낸 작고 흰 고무신을 닮았다 밤사이 저승에서 흰 신발을 신고와 늙어가는 형네 집 문 앞까지 찾아와서는 무슨 말인가 ...  
487 또 하루―박성우(1971∼ )
정조앤
Mar 28, 2025 46
날이 맑고 하늘이 높아 빨래를 해 널었다 바쁠 일이 없어 찔레꽃 냄새를 맡으며 걸었다 텃밭 상추를 뜯어 노모가 싸준 된장에 싸 먹었다 구절초밭 풀을 매다가 오동나무 아래 들어 쉬었다 종연이양반이 염소에게 먹일 풀을 베어가고 있었다 사람은 뒷모습이 ...  
486 새봄―김지하(1941∼2022)
정조앤
Mar 19, 2025 61
겨우내 외로웠지요 새 봄이 와 풀과 말하고 새순과 얘기하면 외로움이란 없다고 그래 흙도 물도 공기도 바람도 모두 다 형제라고 형제보다 더 높은 어른이라고 그리 생각하게 되었지요 마음 편해졌어요 축복처럼 새가 머리 위에서 노래합니다 ―김지하(1941&si...  
485 마당 앞 맑은 새암을―김영랑(1903∼1950)
정조앤
Mar 19, 2025 76
마당 앞 맑은 새암을 들여다본다 저 깊은 땅 밑에 사로잡힌 넋 있어 언제나 먼 하늘만 내려다보고 계심 같아 별이 총총한 맑은 새암을 들여다본다 저 깊은 땅속에 편히 누운 넋 있어 이 밤 그 눈 반짝이고 그의 겉몸 부르심 같아 마당 앞 맑은 새암은 내 영혼...  
484 어부―김종삼(1921∼1984)
정조앤
Feb 28, 2025 59
바닷가에 매어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 나가서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이 되어서 중얼거리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김종삼(1921...  
483 동백숲 길에서―노향림(1942∼ )
정조앤
Feb 28, 2025 47
아름드리 동백숲길에 서서 그 이름 기억나지 않으면 봄까지 기다리세요. 발갛게 달군 잉걸불 꽃들이 사방에서 지펴진다면 알전구처럼 밝혀준다 그 길 미로처럼 얽혀 있어도 섧디설운 이름 하나 기억 하나 돌아오겠지요. ―노향림(1942∼ ) 할 일이 많은데 ...  
482 먼 꿈―장시우(1964∼ )
정조앤
Feb 28, 2025 43
문득 잠에서 깬 아이는 흐릿한 눈을 비비고 엄마를 부르며 울기밖에 할 줄 모른다 부를 이름조차 잊은 기억의 건너편 저 어둠뿐인 세상 밖에서 불빛이 비치는 풍경은 따뜻하기도 해라 나는 또 어디로 발걸음을 옮겨야 하나 길잡이별조차 없는 어둠 속에서 가...  
481 오래한 생각- 김용택(1948~)
정조앤
Feb 28, 2025 42
어느 날이었다. 산 아래 물가에 앉아 생각하였다. 많은 일들이 또 있겠지만, 산같이 온순하고 물같이 선하고 바람같이 쉬운 시를 쓰고 싶다고, 사랑의 아픔들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는데 바람의 괴로움을 내 어찌 모르겠는가. 나는 이런 생각을 오래 하였다. ―...  
480 숙희―여성민(1967∼ )
정조앤
Feb 08, 2025 72
이별한 후에는 뭘 할까 두부를 먹을까 숙희가 말했다 내 방에서 잤고 우리는 많이 사랑했다 신비로움에 대해 말해봐 신비로워서 만질 수 없는 것에 대해 숙희는 말했다 눈이 내렸을까 모르겠다 신비로워서 만질 수 없는 것을 나는 모른다 두부 속에 눈이 멈춘...  
479 저녁별―송찬호(1959∼)
정조앤
Feb 08, 2025 35
서쪽 하늘에 저녁 일찍 별 하나 떴다 깜깜한 저녁이 어떻게 오나 보려고 집집마다 불이 어떻게 켜지나 보려고 자기가 저녁별인지도 모르고 저녁이 어떻게 오려나 보려고 ―송찬호(1959∼) 송찬호 시인의 작품만 가지고 한 달 내내 글을 쓰라고 해도 쓸 수 ...  
478 오늘의 날씨 / 서상민
정조앤
Feb 04, 2025 64
꿈을 꿨지 ​ 당신이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동전같이 작고 동그란 꿈 손가락을 꼼지락거릴 때마다 찰랑거리는 경박하고 소란한 꿈 사나흘 앓고 일어나 빈 포대 같은 몸으로 담배 한 대 피워 물때처럼 몽롱하고 현기증 나는 꿈 이게 꿈인지 생신지 헷갈리느라...  
477 파랑의 감각 / 김개미
정조앤
Feb 04, 2025 40
파란색이 차갑다 생각하지 않아요 드높은 가을 하늘을 보고 차갑다 생각한 적 없어요 어려서 그렇게 배웠다고 커서도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다른 사람에게 들은 말은 내 생각이 아니죠 골목 깊은 곳의 파란 대문은 동네에서 제일 예쁜 파란색 파란 나...  
476 잎눈 / 이진환
정조앤
Feb 04, 2025 37
잎눈 / 이진환 파닥이다 허공을 놓친 낙엽처럼 하나씩, 떠나간 듯 버리고 온 독한 다짐으로 한철, 냉기가 움키는 잎눈이란 뒤란의 그늘까지 끌어다 엮은 한기로도 잡아두질 못해 ​ 어금니의 표정으로 조여도 ​ 깊어질수록 조바심에 대한 불면의 심지처럼 색감...  
475 설날 / 오세영
정조앤
Feb 04, 2025 28
새해 첫 날은 빈 노트의 안 표지 같은 것 쓸 말은 많아도 아까워 소중히 접어둔 여백이다. 가장 순결한 한 음절의 모국어를 기다리며 홀로 견디는 그의 고독 백지는 순수한 까닭에 그 자체로 이미 충만하다 새해 첫 날 새벽 창을 열고 밖을 보아라 눈에 덮혀 ...  
474 시간의 얼굴―장순하(1928∼2022)
정조앤
Jan 24, 2025 55
(생략) 만인의 것이면서 누구의 것도 아닌 너 너와 나는 이인삼각 애환 함께 하였건만 어느 날 고개 돌릴 너 끝내 얼굴 없는 너 번지 없는 빈 집에 문패 달랑 걸어 놓고 온데간데없는 너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는 너 그러나 천지에 꽉 차서 없는 곳이 없는 ...  
473 못 박힌 사람―김승희(1952∼ )
정조앤
Jan 24, 2025 45
못 박힌 사람은 못 박은 사람을 잊을 수가 없다 네가 못 박았지 네가 못 박았다고 재의 수요일 지나고 아름다운 라일락, 산수유, 라벤더 꽃 핀 봄날 아침에 떴던 해가 저녁에 지는 것을 바라보면 못 박힌 사람이 못 박은 사람이고 못 박은 사람이 못 박힌 사...  
472 담양―조성래(1992∼ )
정조앤
Jan 24, 2025 42
다친 길고양이가 따라오면 내 뒤의 전 세계가 아프고 녹슨 컨테이너 아래 민들레는 다시 한번 잃을 준비가 되어 있다 멀쩡하게 서서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악이 된 기분이 든다 현실이라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자기 자신은 밤 고속도로 위의 불빛...  
471 이마 ―신미나(1978∼ )
정조앤
Jan 05, 2025 143
장판에 손톱으로 꾹 눌러놓은 자국 같은 게 마음이라면 거기 들어가 눕고 싶었다 요를 덮고 한 사흘만 조용히 앓다가 밥물이 알맞나 손등으로 물금을 재러 일어나서 부엌으로 ―신미나(1978∼ ) 겨울에는 우리의 본능이 따뜻함을 알아본다. ‘이 옷보...  
470 숨―박소란(1981∼)
정조앤
Jan 05, 2025 150
겨울의 한 모퉁이에 서 있는 것이다 시린 발을 구르며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버스가 아닌 다른 무엇이라 해도 기다리는 것이다 이따금 위험한 장면을 상상합니까 위험한 물건을 검색합니까 이를테면, 재빨리 고개를 젓는 것이다 남몰래 주먹을 쥐고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