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 / 송옥근
갑자기 ‘쿵’하고 넘어졌다. 증평군 군의회에서 정례회를 마치고 나오던 중이었다. 발목이 한쪽으로 꺾였다. 비명에 놀란 동료들이 달려왔다.
다섯 시간의 수술을 마친 후 눈을 떴다. 천장이 희미하게 보였다. 왼팔에는 세 개의 링거가 매달리고, 오른팔은 축 늘어졌다. 옆구리에 피 주머니가 달려있고 깁스한 다리는 높은 받침대에 올려졌다. 퉁퉁 부운 눈 때문인지 주변이 모두 부옇게 보였다. 마취가 풀리자 무섭게 통증이 몰려왔다. 연신 무통 주사액을 눌러도 통증은 가시지 않았다. 과다한 무통 주사로 인한 부작용으로 자꾸 토했다.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파김치가 되었다. 병실 도우미가 가져온 밥을 넘길 수 없었다. 기력은 점점 떨어지는데 의사 선생님 말씀에 아득해진다. 오래전 이식받은 신장이 수술하며 투여된 항생제로 인해 기능이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서울대학교병원에 갔다. 담당 의사는 이제 투석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놀라운 말을 했다. 지방으로 내려와 충북대학교병원에서 수술하고 투석을 했다. 네 시간에 걸쳐 노폐물을 거르고 나서 혈액을 주입하면 팔이 퉁퉁 부었다. 손을 대면 화끈화끈 내 몸 어딘가에 화산이 있어 끓어오르는 듯했다. 두 개의 주삿바늘을 찌를 때면 눈을 질끈 감았다. 우울한 내 마음과 상관없이 투석 기계는 아무 감정도 없이 제 일을 했다. 투석은 고통과 싸우는 길고 긴 시간이지만 참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2022년 9월 말, 명예퇴직을 했다. 선후배가 도와주고 아껴주는 직장이지만 병원을 오가느라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한 직장에서 35년을 열정으로 최선을 다하며 보낸 나로서는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동안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일만 했다. 그래서 원하는 것도 이루었지만,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돌아보면 다 내 탓인 걸 그때는 몰랐다.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며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였다. 마음을 내려놓고 나를 사랑하고 다스리니 담담해졌다. 슬픔에 젖었을 때 겸손을 생각하게 했다.
얼마 전 모 내과에서 투석하려는데 혈관이 막혀 할 수가 없었다. 다시 큰 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동병상련이라 그런지 병실의 환자들은 참 따뜻했다. 밤새 고생하는 나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아픈 무릎을 끌고 온 큰언니와 허리를 다친 작은언니는 내 침상에서 연신 손등을 쓸어내렸다. 보름날이라고 부럼과 오곡밥을 먹으며 건강을 기도했다. 내가 좋아하는 코다리찜과 미역국을 내놓으며 병실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뜨거워졌다. 사랑하는 가족과 선한 이웃이 있어 아픔을 이겨낼 수 있었다.
며칠 전 남편과 육거리시장에 갔다. 시장 구경도 할 겸 기분 전환을 위해서다. 생선가게를 거쳐 과일가게를 지나가는데 음악 소리가 들렸다.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엎드려 기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두 다리에 중증 장애가 있어 검정 고무판을 배와 다리에 깔고 찬송가를 틀어놓고 배밀이하듯 느릿느릿 기어왔다. 안타까움에 바로 볼 수가 없어 눈을 돌렸다. 콧등이 시큰거렸다. 고무장갑 두 개를 집어 들고 만 원을 그에게 주었다. 생의 밑바닥에서 자신의 힘만으로 당당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내게 전해주는 의미는 매우 컸다.
집에 돌아와 생각하니 돈을 좀 더 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아쉬운 마음에 베란다를 둘러보는데 내 몸이 아파서 미처 돌보지 못한 시들시들한 난초가 보였다. 식물도 정성을 쏟아야 잘 자란다. 물을 흠뻑 주고 나니 이파리가 생기를 찾는다. 난초는 물을 주지 않으면 죽지만 나는 투석기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니 행복하지 않은가.
누구나 건강이 소중하다는 것을 잘 알지만 소홀히 한다. 건강을 잃은 후에야 후회한다 해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요즘 오른팔이 부어 투석하기 힘들다. 그러나 참고 견딘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매사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 기계에 의존하여 살아야 하는 삶이 아무리 불편하다 하더라도 살아야 할 가치가 있다.
세상에 건강보다 더 큰 재산은 없다. 조금이라도 더 건강을 유지하려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몸에 맞는 먹거리를 찾는다. 아픔이 있었기에 더 단단해진 나를 보며 삶의 지향점을 되새겨본다. 또한 결핍의 허기와 태도를 통해 내 존재의 변화로 살아가면서 더 행복하기를 소망한다.
다시 봄,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