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원(原願) / 김종희 

 

여행은 만남이다. 그런 만남은 계산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 뿐만아니라 여행은 일정 없이 가는 대로 몸을 맡길 때 자유롭다. 그런 까닭으로 여행은 일상성을 뛰어넘는 일이다. 일상성을 뛰어넘는 곳에서 일어나는 갑작스런 감동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에서 미처 느낄 수 없는 어떤 감동을 폐사지의 주춧돌에서 전해 받는 것도 어쩌면 일상성을 넘어서는 경험 때문인지도 모른다.

역사의 흔적을 느끼고 싶을 때는 옛 절터에 갈 일이다. 역사의 순간은 오감으로 만나야 한다. 문자로 인식된 역사는 그만큼의 상상력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적 드문 산기슭에 묻힌 쓸쓸한 유적을 어떻게 문자로 표현할 것인가. 거기 무심한 돌로 뒹굴고 있는 옥개석에 弔文을 쓴들 그것이 유적에 어떤 감동을 부여할 수 있을까.

탑과 건축은 종종 당대 권력의 성격을 보여준다. 탑의 형상을 통해, 건축의 규모를 통해 우리는 당대의 로고스를 읽는다. 이러한 로고스는 결국 관념을 낳는다. 육하원칙에 의해 각인된 관념은 숱한 세월이 흐른 뒤에도 변함없는 탑의 ​修辭가 되는 것이다. 마치 순장된 修士처럼 탑을 위한 修辭 또한 순장된 修士가 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감으로 대상을 만날 때 의외의 경험을 하게 된다. 문자로 정리되지 못한 탑신에서 오랜 시간을 결을 만나는 것이다. 오감을 통해 만나는 파토스는 상상력을 낳는다. 질박한 돌의 질감에서 숱한 시간을 찾아내고 시간대마다 다양한 결을 살려내는 것이다. 잡초 사이에 흩어진 돌무더기로 부지런히 눈을 옮기는 것은 역사의 한순간순간을 눈으로 걷는 길이다. 역사의 만남은 과거로의 여행이며 또한 미래로의 여행이다. 그런 까닭으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교감이다. 교감으로 얻은 파토스는 알 수 없는 전율을 동반한다.

삼국유사를 테마로 경주 일원의 옛 절터를 돌아볼 때다. 비록 건축은 사라지고 황량한 터만 남았을지라도 어떤 곳은 충만되어 있는가 하면 가슴에 묻은 정인처럼 볼수록 애틋한 곳도 있다. 건축이 사라진 옛 터에 정비된 주춧돌의 자리만으로도 과거의 번영함이 후 체험으로 자리하는가 하면 빼어난 조형미를 가진 한 기탑이 애처로워 가슴이 미어지는 곳도 있다. 그럴 때면 손으로 그 결을 느끼는 것도 아까워 눈으로만, 마음으로만 보고 만다. 오랜 풍화 속에 하나의 탑일지라도 층층의 탑신마다 각기 다른 형상을 가진 채로 서 있다.

원원사지, 경주 외동읍 모화리 봉서산 기슭 한 쌍의 탑이 내게는 그런 곳이다. 한때의 영화로움이 쇠락한 문설주처럼 덜컹이는 곳, 후대의 누군가는 역사의 순간을 무참히 쓸어버리고 그 위에 조상을 묻었다지. 통일신라 지도급 인사들이 세운 호국사찰이라는 로고스를 받아든 원원사지가 지금은 한낮의 햇살을 쓸쓸히 받아들이는 파토스만 남아있다. 실재하지 않으나 존재하는 황룡사 9층 목탑에 비해 원원사지는 한 쌍의 탑이 실재하되 그 존재가 퇴색되어 간다.

​原願, 이름 모를 석공의 정 끝에서 십이지신상의 도복 주름은 바람에 나부끼듯 하늘거린다. 옛사람은 후대의 누군가 자신의 손끝에서 빚어진 형형한 신상의 눈빛이 살아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지 않았을까. 原願이라는 로고스에 그의 파토스를 실어 오랜 생명 의지를 넣었던 것은 아닐까. 아마도 탑을 통해 석공은 영원히 지속될 여행을, 그 속에 자유로운 만남과 감동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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