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과 나뭇잎의 환 / 조이섭 - 2024년 제6회 선수필 문학상

 

 

 

나무는 뿌리로 땅의 정기를 자아올리고, 가지를 벋어 하늘의 기운을 모은다. 바람의 속삭임으로 꽃문을 열고, 비의 간지럼으로 잎을 피운다. 꽃과 나뭇잎은 한 몸, 한 가지에서 태어나지만 모양과 색깔, 역할이 전혀 다르다.

세상에 예쁜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막 피려고 하는 봉오리부터 활짝 핀 꽃까지 저마다 다른 맵시와 색色과 향香으로 뭇사람의 시선을 끌고, 찬사를 받는다. 심지어 선운사 동백은 떨어진 다음에도 사람들의 발길을 붙들어 맨다.

그러나 꽃이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시간은 우리네 청춘처럼 애처롭게 짧다. 꽃은 그러한 자기의 운명을 알기에 으스대거나 잘난 체하지 않는다. 온갖 방법으로 드러내기 좋아하지만, 열매를 맺기 위해 벌과 나비를 부르려는 불가피한 몸짓에 불과하다. 그저 짧은 순간 생긴대로 피었다가 때맞춰 떨어지면 그뿐인데, 괜스레 사람들이 몰려 나와 북 치고 장구 치며 호들갑을 떤다.

꽃은 벌 나비를 유혹하고 수정하는 책무를 다하면 속절없이 떨어진다. 힘없이 지지만 함께여서 덜 외롭다. 분분하게 날리는 낙화를 보는 사람들도 무한한 슬픔을 느끼거나 고통스러워하지는 않는다. 꽃진 자리에 열매가 맺는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희망을 품고 과거길 떠나는 서방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새색시 심정처럼 애틋할 뿐이다.

나무에는 꽃 피고 수정하는 짧고 발랄한 젊음만 있는 게 아니다. 아름다운 꽃이 진 다음, 수정으로 맺은 열매를 키우는 고단한 몫이 어머니의 숙명처럼 남아 있다. 그 일을 감당하는 것이 나뭇잎이다.

사람들은 나무에 이름을 지어주고 꽃의 모양과 색깔을 기억한다. 그러나 나뭇잎 모양만 보고 나무 이름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드물다. 나뭇잎은 꽃과 달리 두드러지려고 애쓰지 않는다. 쳐다보는 사람 없고, 알아주는 이 없어도 나뭇잎이 하는 일은 많다. 광합성으로 영양분을 만들고,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한다. 잎 없이 피는 꽃은 있어도, 잎 없이 맺는 열매는 없다.

겨울이 오기 전에 나뭇잎의 모든 역사役事가 끝난다. 노동을 마친 나뭇잎은 붉고 노란 단풍을 훈장처럼 매단다. 환상보다 짧은 축제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스스로 떨켜를 만들어 나무와 이별을 고하고 피곤한 몸을 땅에 누인다. 사람들은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며 외로움에 빠져든다. 앙상한 나뭇잎의 잎맥에 산더미만큼 높다란 골판지 손수레를 끌고 언덕을 올라가는 할아버지의 긴 그림자의 쇠락이 겹쳐 보 이기 때문이다.

빨간 꽃잎이 젊음의 상징이라면, 연록을 벗겨낸 거뭇한 나뭇잎은 든든함의 표상이다. 꽃은 탄생이요, 나뭇잎은 성장이다. 꽃이 자식을 잉태하는 선남선녀라면, 나뭇잎은 원숙하고 살뜰한 주부이다. 꽃은 오므리고, 피고, 질 때를 안다. 나뭇잎도 봄과 여름 내내 태양과 더불어 일하고, 시들고, 떨어질 때를 잊어버리는 일이 없다. 둘은 꽃 피우고 열매 맺는 농사를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해낸다. 가끔 태풍과 가뭄이 훼방을 놓아도 온몸을 크게 한번 부르르 떨고, 내년 봄을 기약한다.

이렇듯 꽃과 나뭇잎은 생김새와 역할이 서로 다르지만, 뽐내고 시기하거나 무시하는 법이 없다. *규중閨中의 철없는 일곱 친구처럼 서로의 공이 크다고 다투지 않는다. 사람들만 들고 날 때를 가리지 못해 낭패당하기 일쑤이다. 조금 예쁘다고 칭찬받으면 금방 기고만장해지는가 하면, 자기보다 잘난 이를 보면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과는 사뭇 다르다.

나무는 제 몸 빚어 자식을 낳는다고 노래한 시인이 있다. 나무는 꽃과 잎을 피운다. 꽃과 잎은 제각기 맡은 생과 육의 의무를 다한다. 꽃은 생명의 열매를 맺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생生이다. 나뭇잎은 저 자신을 붙들고 있는 나무와 열매를 아울러 키우는 육育이다. 사람도 그렇다. 젊어서 자식을 낳고[生], 오랜 시간 정성을 다해 기르지[育] 않는가.

아이 낳고 기르는 일에 있어, 나는 작은 것 생색내기 좋아하며 물색 모르고 산 꽃이었다. 제멋에 겨워 오만에 빠져 살았다. 만화방창한 날이 사시장철 이어질 줄 알았다. 아내는 나뭇잎이었다. 있는 듯 없는 듯이 길고 짧은 것, 아래위 가려가며 생과 육을 혼자 도맡았다. 꽃이 시들고 나니 눈밭에 홀로 푸른 소나무 세침細針의 존재가 새삼 눈에 보이고, 고마움과 소중함을 알겠다.

열매 맺은 꽃은 떨어져 가뭇없이 사라지고, 열매를 키운 나뭇잎 도 썩어 형해形骸조차 없어진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겨울 동안 그들의 본향인 흙의 원소로 귀환하여 나무로 회귀回歸한다. 회귀한 원소는 꽃이 나뭇잎으로 되고, 나뭇잎은 꽃으로, 혹은 그들의 근원根源인 뿌리로 다시 태어날지도 모른다.

땅과 나무, 뿌리와 가지, 꽃과 나뭇잎, 열매와 하늘, 하늘과 땅이 서로 다르되 다르지 않다. 처음과 마지막이 매한가지다. 모두가 변하고 변하는 순환의 고리, 나고 자라고 꽃피고 지고 마르는 환環일 뿐이다.

그 고리의 어느 한 자락, 땅 밑에서 새로운 생명이 움튼다. 생명의 씨앗은 해가 거듭될수록 어린나무를 거쳐 거목이 되고, 한 그루의 나무가 숲을 이룬다. 숲은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고 뭇 인간의 휴식처가 된다. 그리고 조용히 영면永眠에 든다.

타작마당에 깔아 놓은, 결실이라 할 것도 없는 쭉정이들을 펼쳐 놓고 때늦은 도리깨질을 해본다. 고개를 들지 못할 만큼 부끄러운 짓이 적지 않고, 버리고 감출 것이 많다. 아름다운 꽃을 피워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 적도 없거니와 무성한 나뭇잎으로 쉬어갈 그늘도 만들지 못했다. 인제 와서 휘추리로 내리치고, 키질을 아무리 해본들 무슨 소용이랴.

맡겨진 소명召命이 끝나는 날, 뭇 나무들처럼 조그만 씨앗 하나 세상에 남겼다고 우러러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도 아니면 평생 매달려 살았던 나무 아래 뿌릴 거름 한 삼태기를 거두어도 다행이겠다. 그 또한 무의미한 바람이요, 환環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 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에서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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