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그릇 / 이혜경

 

 

여든 다섯의 생신을 앞두고 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하루하루를 손가락을 꼽으며 지냈다. 기억이 흐려진 와중에도 달력을 볼 때마다 "내 생일이 지나갔나, 안 지나갔나?" 물으며 설레는 얼굴이었다.

새해 달력이 바뀌었을 때부터 이번 생신은 꼭 우리 집에서 모시리라 마음을 먹었다. 지난 해 여름, 당신의 나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면서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박수를 받는 순간에 어린아이처럼 눈이 초롱초롱한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앞으로 아버지가 가족들 앞에서 몇 번이나 촛불을 끌 수 있을까. 하루가 다르게 인생의 초가 짧아지는 것이 눈에 보여서 내 손으로 근사한 케이크를 준비할 작정이었다.

아버지가 떠나기 며칠 전, 전화를 받았다. 내가 화요일마다 친정 근처로 공부하러 다니는 것을 아는 어머니가 잠시 집에 잠시 들러 밥이나 먹고 가라고 했다. 마침 그 주일이 휴강이라 지나갈 일이 없으니 다음 주에 들르겠다고 했다.

"아버지하고 밥 먹을 수 있는 날이 얼마 안 남았다. 나중에 후회 말고 얼굴 좀 보여라."

"지난번에 보니 전보다 얼굴이 좋으시던데요, 뭘. 다음 주엔 꼭 갈게요."

집안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어머니의 작은 한숨 소리를 듣고도 대수롭지 않게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보니 전화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은 지가 한참 지났다. 예전 같으면 어머니 옆에서 놀러 한 번 오라고 말을 보탰을 아버지이지만 요즈음에는 귀가 어두워져서 누구에게 전화가 오는지 마는지 통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어쨌거나 다음 주에 가서 얼굴을 보면 되겠거니 싶었다.

무심히 전화를 끊을 때만 해도 정말 몰랐다. 그 화요일이 아버지와 함께 마주 보며 밥을 먹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는 것을. 그렇게 갑작스럽게 이별을 맞을 줄 꿈에서라도 짐작이나 했겠는가. 그토록 학수고대했던 날을 코앞에 두고 아버지는 생일 밥 한 술 뜨지 못한 채 영영 먼 곳으로 떠났다. 그렇게 즐기던 케이크의 촛불을 한 번 더 불지 못한 채 아버지는 자신의 마지막 심지를 태우고 소멸했다. 흔한 병문안 한 번 못 하고 아버지를 영영 떠나보내게 될 줄 상상조차 못 했다. 연세가 있으니 언젠가 한 번은 닥칠 이별이라 머릿속으로 그려본 적은 있지만 짧은 예고편도 없이 아버지 인생의 마지막 장면이 서둘러 막을 내리는 것을 속절없이 지켜보게 될 줄은 몰랐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뜨거운 여름이 시간 앞에서 한풀 수그러 들었다. 계절이 바뀌는 사이 아버지를 보내 드리는 일곱 번의 작은 의식도 모두 끝이 났다. 아무리 아픈 이별이라도 과거형으로 바뀌고 나면 점차 슬픔의 강도가 줄어들기 마련이어서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직 마음으로는 아버지를 보낼 수 없었지만 시나브로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 빈 공간에 조금씩 적응을 해 버린 내 모습을 스스로 확인할 때마다 만감이 교차했다.

그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인사말처럼 "밥 한 그릇 하자"는 말을 건네곤 했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놓고 일상을 공유하는 것은 단순히 한 끼를 같이 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 사이에 정을 만들어 내는 일이기에 밥 먹을 약속이 생기면 흔쾌히 시간을 쪼개어 달려갔다.

그런데 정작 아버지와 밥 한 술 함께 뜨는 일에는 왜 그렇게 인색하게 굴었는지 모르겠다. 함께 밥 먹을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해 늘 다음으로 미루기만 했다. 휴강이 되었으니 오히려 여유 있게 아버지를 모시고 밥을 먹을 수 있는 기회였는데 단칼에 거절했던 그날의 기억이 가슴을 날카롭게 찌른다. 아버지가 그렇게 떠나고 나니 그동안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뱉았던 "밥 한 그릇 먹자"는 말이 얼마나 간절하고, 엄청난 무게의 시간이 될 수 있는지 새삼 곱씹게 된다.

여름에 세상으로 와서 여름에 영영 떠나신 아버지는 알고 계실까. 옆에 있을 때 한 번 더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대접하지 못한 아쉬움이 마음에 걸려 날이 더워지면 시시때때로 소화불량을 일으킨다는 것을. 마지막 생일 밥을 우리 집에서 드시지 않고 서둘러 간 것은 어쩌면 오래오래 아버지를 기억하며 그리워하라는 딸을 향한 아버지의 마지막 욕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