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야기] 19세기 산업화 시대, 짐승이 되어가는 인간을 고발하다
인간 짐승
'자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킁킁거리는 짐승의 소리, 식식거리는 멧돼지 소리, 으르렁거리는 사자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그는 조용히 주위를 살폈다. 그것은 자신의 거친 숨소리였다.'
에밀 졸라(1840~1902)는 '양심 있는 지식인, 행동하는 지성'으로 잘 알려져 있죠. 1898년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해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을 통해 유럽 사회의 반유대주의를 공개적으로 비판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19세기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자연과학자들이 자연을 연구하듯이 당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연구하고 폭로하고 기록하는 작품을 썼죠.
▲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의 초상화(왼쪽). '인간 짐승' 출간 당시 신문에 실린 광고. /위키피디아
대표적인 것이 프랑스 제2 제정(1852~1870) 시기를 배경으로 쓴 20권의 연작소설입니다. 루공가(家)와 마카르가((家)사람들의 일대기를 다뤄 '루공마카르 총서'라고 부르는데요, 오늘 소개할 '인간 짐승'은 그중 17번째 작품입니다.
'인간 짐승'의 등장인물들은 제목처럼 하나같이 인간다움보다는 '짐승'을 닮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르아브르 역의 부역장인 루보는 열다섯 살 어린 아내 세브린과 결혼했어요. 그런데 그녀가 양아버지인 전직 법원장 그랑모랭으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합니다. 루보는 세브린과 힘을 합쳐 그랑모랭을 살해하는데, 사건을 목격한 기관사 자크는 오래 참아왔던 살해 욕구에 사로잡힙니다. 이후 루보, 세브린, 자크의 운명이 뒤얽히면서 더 끔찍한 사건들이 잇달아 발생합니다. 주인공들뿐 아니라 프랑스 사회도 인간다움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랑모랭의 치부가 드러날까 우려한 법조계 관계자들은 살해범을 처벌하기보다는 사건 은폐에 앞장서죠.
이 작품은 당시 기계 문명을 대표했던 '철도'를 배경으로 한다는 특징이 있어요. 부역장, 기관사, 화부(火夫·기차 기관의 불을 조절하는 사람) 등 철도와 관련된 등장인물을 통해 기계 문명이 인간다움을 파괴해버리는 장면을 고발한 겁니다. 유럽 곳곳으로 뻗어나갔던 근대 문명의 대표 주자 철도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탐욕의 결정체'였거든요.
19세기 프랑스를 비롯한 전 유럽은 인간 이성의 진보와 기계 문명의 발달로 새로운 시대가 찾아오리라는 기대가 높았어요. 하지만 에밀 졸라만큼은 흔히 진보라고 생각했던 문명의 발달이 인간성을 파괴하고 있다고 봤어요. 책 끝 부분, 자크는 보불전쟁에 참전할 병력을 가득 태운 기차를 전장으로 몰고 갑니다. 개인이라는 '인간 짐승'의 모습이 세계사적 전쟁으로 확장되는 장면이죠. '인간 짐승'은 오늘 우리가 고민해야 할 인간다움은 무엇인지, 기계 문명을 대하는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