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야기] '역사란 나와 상대가 투쟁한 기록'… 신채호가 감옥서 쓴 역사서
조선상고조사
"역사란 무엇인가. 인류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적으로 발전하고 공간적으로 확대되는 심적(心的) 활동(活動)의 상태에 관한 기록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쓴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의 첫 문장은 역사에 대한 명쾌한 정의로 시작합니다. 단재는 '아'(나)와 '비아'(나 아닌 나의 상대)의 투쟁은 인류사회에서 그 활동이 멈춘 적이 없고 앞으로도 끝날 날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단재는 '조선상고사'를 통해 단군 시대부터 백제 부흥 운동까지, '아'인 우리 민족의 웅장한 역사를 써내려갑니다.
단재는 '제1편 총론'에서 우리 민족이 길고 훌륭한 역사를 갖고 있는데도 우리 스스로 그렇지 못하다고 여기는 이유가 "후에 일어난 왕조가 앞 왕조를 미워하여 역사적으로 자랑할 만한 것은 무엇이든 파괴하고 불살라 없애 버리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고구려와 백제를, 고려가 일어나면서 신라를, 조선이 고려의 역사를 말살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 역사 기록은 빈한해졌고, 따라서 역사의식도 얄팍해지고 말았다는 겁니다.
단재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빈한해진 또 하나의 이유로 유교의 지나친 득세를 지적합니다. 고려 중기 문신으로 유학을 숭상한 김부식이 자주적 의식을 갖춘 묘청 세력을 제압한 이래, 우리 민족은 줄곧 유교의 본산인 중국을 떠받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죠. 단재는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고구려와 가야국의 시조 등이 중국에서 건너왔다고 주장한 것이 그 증거라고 말합니다.
단재는 이처럼 우리 역사가 좁은 인식에 갇힌 이유를 먼저 설명하고, 우리 민족이 역사적 위기를 뛰어넘기 위해 비아와 벌인 끊임없는 투쟁을 세세하게 설명합니다.
- ▲ 단재 신채호(위) 선생. 조선일보 1931년 6월 10일 자에 실린 '조선상고사' 첫회. /조선일보 DB
본래 '조선상고사'는 단재가 1931년 6월부터 10월까지 '조선일보'에 '조선사'라는 제목으로 옥중에서 연재한 글이었어요. 단재는 옥살이를 끝낸 뒤 책을 완성하길 바랐지만 꿈을 이루지 못하고 1936년 2월 21일 중국 뤼순 형무소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조선상고사'가 백제 부흥운동으로 끝나는 게 그래서입니다. 단재는 '조선사'를 모두 쓰려고 했지만 사정상 안타깝게도 '상고사' 부분만 남겼습니다. 이를 모아 1948년 종로서원에서 단행본으로 펴냅니다.
단재는 백제 왕조가 무너진 뒤 곳곳에서 의병 봉기가 일어난 것을 중요하게 다룹니다. 백제가 멸망하고 의자왕이 포로가 될 때 "귀인들은 나라를 팔아먹은 자의 도당"이었지만, 우리 민족의 기상만큼은 새롭게 일어날 가능성이 언제든 있었다고 강조한 거죠.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었던 단재는 평생 '조국의 씩씩한 재건'과 "그것이 미처 못 된다면, 조국의 민족사를 똑바로 써서 시들지 않는 민족정기가 두고두고 그 자유독립을 꿰뚫는 날을 만들어서 기다리게 하자"는 일념으로 살았습니다. 그 여실한 기록이 바로 '조선상고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