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야기] 인간은 왜 사랑을 할까? 성숙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의 기술
 

 

사랑은 기술인가? 기술이라면 사랑에는 지식과 노력이 요구된다.

흔한 자기계발서에서나 볼 법한 이 글은 사회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의 첫 문장입니다. 프롬은 1976년 출간한 '소유냐 존재냐'에서 "현대 소비자는 '나=내가 가진 것=내가 소비하는 것'이라는 등식에서 자신의 실체를 확인하는지도 모른다"면서 존재 자체를 잃어가는 현대인을 예리하게 분석합니다.

에리히 프롬의 1974년 모습. 프롬은 우리가 음악·의학을 배우듯이 사랑하는 법도 익혀야 한다고 합니다.

 에리히 프롬의 1974년 모습. 프롬은 우리가 음악·의학을 배우듯이 사랑하는 법도 익혀야 한다고 합니다. /위키피디아

 

'사랑의 기술'은 그런 그가 '소유냐 존재냐'보다 20년 앞서 낸 책입니다. 그런데 이 책이야말로 에리히 프롬 사상의 출발점과 뿌리를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연애 잘하는 법'쯤을 기대하고 책을 집어든 사람이 '사랑'이 얼마나 철학적인 주제인지 깨닫고 놀라게 되죠.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사랑은 인간 실존의 문제입니다. 불안한 존재인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욕망합니다. 그렇지만 어떤 물건을 가진다고 불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프롬은 사랑이 이 실존적 불안을 해결할 답을 준다고 말합니다.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행동이며 인간의 힘을 행사하는 것이고, 이 힘은 자유로운 상황에서만 행사할 수 있을 뿐 강제된 결과로서는 결코 나타날 수 없다.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중략)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랑의 능동적 성격을 말한다면 사랑은 본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다."

유행가와 드라마는 '남녀의 사랑'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인 것만큼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프롬은 삶에 대한 사랑이 모든 종류의 사랑의 핵심이라고 강조하죠. 삶은 '성장 과정'이며 '완전해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랑은 '인간, 동물, 식물 안의 생명에 대한 사랑'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숙한 사랑은 개인의 통합성, 즉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의 '정서적 합일'이어야 합니다. 누군가를 소유하거나 지배하며 통제하려고 드는 욕망은 사랑이 아니라는 말이죠. 바로 이런 사랑만이 인간의 근원적 불안감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프롬은 말합니다.

그렇지만 프롬은 '현대인은 사랑 앞에서 얼어붙는다'고 표현합니다. 사랑을 주는 능력도 가꾸고 길러 나가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우리가 음악·예술·건축·의학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관련 기술을 배워야 하듯이 사랑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사랑의 기술'은 에리히 프롬 사상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소유냐 존재냐'의 바탕이 됐습니다. 프롬은 '사랑, 합일, 친밀감을 바라는 충족되지 않은 욕망'이 '생산품을 소비하는 데서 만족을 찾는' 행위로 이어진다고 진단합니다. 소비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사랑의 구경꾼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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