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 / 조정은
어느 휴일 P선생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선생은 오랜만에 나타난 내 몰골을 보고 놀라는 눈치였다. 무엇보다 화장을 싹 지운 나의 맨얼굴에.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얼마쯤 함께 걸었다. 걸으면서 나의 파산과 그후 어느 날 새벽의 기묘한 희열에 대해서 떠들어댔다. 선생의 사무실 앞, 바로 지하철 입구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제 선생은 사무실로 들어가고 나는 지하로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바빠서 언제 다시 찾아뵙게 될지 기약할 수 없었다. 평소 무뚝뚝한 선생이 웬일로 그날따라 내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셨고 덕분에 난 참으로 오랜만에 속에 있는 말들을 시원하게 털어놓았다. 헤어지기가 영 섭섭했다. 컴컴한 지하철로 들어서면 또다시 나락일 것만 같은 안타까운 순간에 애매한 표정으로 선생을 올려다 보았다.
바람은 틈에서 분다던가, 틈이라? 틈은 작은 균열이다. 말랑말랑 부드러운 것보다 뻣뻣하고 굳어진 것들에게 더 쉽게 찾아온다. 아무리 단단한 바위라 해도 언젠간 틈은 생기게 마련이고 그러면 거기 여리고 예쁜 생명이 비로소 깃든다. 홀로 저를 지키며 외롭게 떠돌던 작은 씨앗이 그 틈에서 단단한 제 껍질을 벗고 제 노래를 부른다. 바위도 부서지고 씨앗도 부서지고…. 부서져야 다시 태어나는 생명의 향연, 바위도 껍데기가 너무 단단해지면 갑갑하여 벗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이다. 제 속에 차고 넘치는 걸 토하려고 아우성인 것이다.
나도 토할 게 차고 넘쳤던지 아니면 껍질이 너무 굳었던지 갑갑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때 나는 늙은 선생에게 얼핏 희망을 걸었을 것이다. 선생은 나를 빤히 내려다보다가 덤덤한 표정으로 옆에 새로 지어진 빌딩을 가리켰다. 그 꼭대기에 멋진 카페가 있다고, 거기서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것이었다. 쿵, 명치는 아니고 그렇다고 심장도 아니다. 그보다 더 깊은 어디쯤에 뭔가가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순식간에 나를 박살냈다. 부서진 나의 파편들이 잔가시처럼 날카로운 예각을 드러내며 쏙쏙, 묘한 통증을 몰고 흘러다녔다. 손끝으로 발끝으로 뒷골로 관자놀이로….
고해성사, 나는 이것을 좋아한다. 신 앞에서가 아니라 인간 앞에서 하는 고해성사. 스무 살에 이 도시로 처음 와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어디에도 정직한 얘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거였다. 소위 예의 바른 언사들, 실용적인 대화, 간간이 터지는 농담, 그것 외엔 진지한 대화를 나누려는 사람들이 없었다. 조금만 진지해지면 모두가 지루해하며 도망쳐버렸다. 내가 촌스러운 건가. 이십 대를 온통 헤맨 끝에 스물아홉에서야 이미 오래된 친구인 그가 내게는 가장 정직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우린 부부이기 전에 도반으로서의 결의를 다지며 결혼했다. 딸과 아들을 낳았고 그런대로 잘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기가 하던 사업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그는 얼마간은 날이 밝으면 집을 나섰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들어오더니 언제부턴가 아예 집에 들어앉고 말았다. 무슨 가내수공업을 한다고 기계 몇 대를 들여놓았다. 그 기계라는 게 그저 버튼만 눌러두면 되는 것이니 일거리는 아니었다. 게다가 주문이 들어와야 작동을 하는데 홍보도 되지 않은 것을 누가 알고 주문할 것인가. 기계들을 즐비하게 세워둔 거실 풍경은 암담했다. 그때 내가 가장 먼저 내린 결단은 사람들과의 단절이었다. 언니나 오빠 심지어 친정어머니마저도, 시누이와 시동생 시숙마저도 마치 예쁜 꽃들을 꺾어버리듯 가까운 사람들과 연락을 끊었다. 그를 믿지 못하거나 우려하는 소리들이 듣기 싫어서였다. 그렇잖아도 흔들리는 마당에 그런 걱정을 들으면 감당키 어려웠다. 현관문을 굳게 걸어 잠가버렸다. 그리고 방과 부엌과 거실의 창문을, 그러니까 허공으로만 열려 있는 창들을 활짝활짝 열어젖혔다. 햇살도 비껴가는 집, 찾아오는 이는 바람이나 파리, 모기 같은 날것들뿐이었다.
남편과 나는 하루 한 시간 정도 거실에 누워 쑥뜸을 떴다. 그 외의 시간에는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꽤나 경건하게 거실에서 쑥뜸 뜨던 일이 잊히지 않는다. 그가 거웃이 보일만큼 바지를 내리고 누우면 나는 쑥봉을 빚어서 그의 단전에 올려놓고 조심조심 불을 붙였다. 알밤만한 쑥봉이 다 탄 다음에도 얼마간은 누워 있게 하고 난 곁에 앉아 책을 읽어주었다. 『벽암록」, 『육조단경』, 『선의 황금시대』,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등등. 내 차례가 되면 나도 바지를 반쯤 내리고 누워 아랫배에 와닿는 그의 손길을, 눈을 감고 가만히 음미했다. 그도 나처럼 곁에 앉아 책을 읽어주었다. 우리가 결혼한 사이라고는 하나, 아마 단둘이 그렇게 오래도록 함께 있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지 싶다. 마음을 다해 서로 감싸려고 썰렁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깨달음이라든가 대자유라든가 하는 도대체가 모호한 말장난들로 사뭇 거창한 세계로만 치달으며 둘이 집안에 틀어 박혀 있었다. 그 순간만은 그깟 장애쯤 무시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마음도 편안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면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어찌해야 하나! 아이들을 어찌해야 하나. 이런 상황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은 무책임이다. 끼니를 거를 지경인데 아이가 둘이나 딸린 에미 애비가 대책 없이 집에 틀어박혀 한가롭게 쑥뜸이나 뜨면서 편안해하다니, 이건 죄악이다. 겉으론 낄낄대면서 나는 화장실이나 부엌으로 그를 피해가서는 그런 생각에 잠기곤 했다. 편안함은 도처에 있다. 깊은 동굴처럼 컴컴하고 음습한 곳에도 나름의 안락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음습한 편안함에 오래 안주하는 것은 죽음과도 같다. 난 그 컴컴한 어둠의 안락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차츰 그가 곁에 있다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연애 7년, 결혼한 지 12년, 합이 19년이었다. 19년 동안 나는 그를 기다렸고 그를 혼자 독차지하고 싶어 안달했다. 그런데 뜻밖의 시간에 처음으로 나 혼자 그의 다정함을 독차지하게 되었을 때, 속으로 그가 그런 다정함 때문에 사업에 실패한 것 아닐까 의심하며 그를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아무 생각도 없는 것처럼 웃고 떠들며 그의 비위를 맞추고는 있었지만, 우리가 편안해하고 있다는 것이 엄청난 죄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공범자였다. 직무유기의 공범자. 나같이 나약하고 비겁한 사람은 몰리면 공범자인 상대에게 동지애보다 환멸이 앞서고 의리보다 배반을 먼저 꿈꾸는 법, 그와 함께 있으면서도 점점 나 혼자라는 생각에 골몰했다. 정성을 다해 가꾸어 겨우 피운 꽃, 그 마지막 한 송이를 내 손으로 자르듯 그에게도 내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내가 구태여 다른 일거리를 찾아나서지도 않고 첫 번째로 걸려든 백화점 밤 청소를 하겠다고 뛰어든 것은, 차라리 절벽에서 뛰어내리기. 그것은 항거였다.
청소를 하러 거기 모인 사람들은 대개가 60대 중반이 넘은 분들이었다. 그들은 겨우 30대 후반인 나에게 관심을 집중했다. 나는 청소 일이 좋았다. 내 적성에 딱 맞는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일만 시키면 이리 닫고 저리 닫으면서 좋아하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실성기가 있다고 수군댔다. 나는 그저 신이 났을 뿐인데, 나를 제대로 알려야겠다 싶어서 한번은 내 작업 파트너에게 정색을 하고 말했다.
“저, 사실은 전에 보석장사했어요.”
“그려? 보석 많이 팔었어?”
그녀의 표정은 말할 수 없는 연민의 빛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내 말을 믿지 않는 게 분명했다. 나는 이러면 믿어주려나 하고 덧붙였다.
“저, 등단한 작가예요.”
그녀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면서 저만치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어이, 이 사람이 소설을 쓴다네. 소설가랴아~ 아.”
여기저기서 웃음이 폭발했다. 모두들 한마디씩 거들었다
“응 그려. 나두 옛날에는 소설 책 여러 권 썼어. 빨리 왁스칠이나 혀.”
모두가 나를 돌보려 애는 썼지만 내 말을 진지하게 듣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지체장애가 있는 한 남자만이 괴이한 소리로나마 진지하게 말을 걸어왔다. 그러나 나 또한 그 사람에게 진지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결국 그곳에선 말이 통하지 않으니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었고 뜻하지 않게 묵언참선 비슷한 걸 경험했다. 오래도록 말을 하지 않으면 생각도 멈춘다. 나는 그저 하루하루를 몸으로만 살았다.
석 달이 지난 어느 날 새벽,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나는 기묘한 희열에 휩싸였다. 도시의 하늘은 고층 빌딩들에 의해 기하학적으로 절단되었지만 그래도 그날 새벽하늘은 가득히 빛덩어리였다.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웠고 발자국 소리도 가벼웠다. 온몸에 스멀스멀 생명의 기운이, 기이한 신비가 들어차고 있었다. 이게 웬일일까. 노동에서 오는 욱신거리는 통증은 차라리 쾌감이었다. 내 손끝에도 종아리에도 송송 마알간 이슬이 맺힐 듯 청량했다. 살아 있구나, 내가 이렇게 살아 있었어.
그 새벽에 나는 강으로 갔다. 강가를 걸으면서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낮은 소리를 들었다. 깊은 강바닥에서는 물방울들이 방울방울 저마다 홀로 떠나고 있었다. 강물도 낮은 곳에서는 이윽고 낱낱이 흩어져 혼자가 되는가. 혼자가 되어서야 제소리를 찾고 저마다의 노래를 부르는 것인가. 작은 물방울들의 외침과 환호와 절규를 그 아침에 나는 들었다. 방울방울마다, 골과 이랑을 건너며 부르는 신아위(神我爲), 여울목에서의 신들린 도무(蹈舞), 깔끄막진 바위에 부딪쳐 내지르는 상창(上唱), 스스로 길을 만들어야 하는 존재들은 모두 낮은 곳에 있을지 모른다.
새벽강을 하염없이 따라 걸으면서 나는 그 깊고 깊은 바닥에 다다르고 싶은 충동으로 몸을 떨었다. 그건 절대로 자살욕구 같은 게 아니다. 외려 삶에의 강렬한 욕망이었다. 아주 깊고 낮은 곳에서 나다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생생히 살아서 내 노래를 부르고 싶은 열망이었다. 둔치를 내려갔다. 순간, 강물은 사납게 물비늘을 털면서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오싹 소름이 끼쳤다. 주춤거리다가 낯선 배반감을 안고 돌아섰다. 그날부터였을 것이다, 나의 고해성사를 받아줄 어떤 신앙 같은 것에 다시 갈급해지기 시작한 것은.
카페는 8층이었다. 얇은 블라인드를 뚫고 햇살이 사정없이 쳐들어오고 있었다. 창가로 가 햇살 속에 앉았다. 아! 나는 다시 밝은 햇살을 좋아한다. 그러면 이제 우울증이 심각하지는 않다는 얘기다. 그렇게 자위하면서.
얼마나 지났을까. P선생이 천천히 걸어들어 와 내 맞은편에 앉았다. 야위고 창백한 얼굴, 깔끔하게 빗어 넘긴 백발, 유독 형형한 눈빛, 결코 따뜻한 인상은 아니다. 날카롭고 냉정한 쪽에 더 가깝다. 나는 후회했다. 이 분에게 치부를 털어놓은 것은 실수다. 대개의 사람들이 내게서 물질이 거덜난 현상은 믿지만 그후 내 마음속에 찾아온 환희에 대해선 믿지 못했다. 그들에겐 내 말이 빈자의 허풍쯤으로만 들리는 것이다. 가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알겠는가. 이 분도 이제부터 겉으로는 입에 발린 덕담을 건네면서 속으로는 나를 비웃을 것이다. 속으로는 내 파산의 원인이 이런 현실도피적인 내 방식에 있다고 비난하고 정죄할 것이다. 피하고 싶었지만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차라리 정직한 비난이나 꾸지람이 그리웠다. 제발 꾸짖어주시길 간절히 바라면서 허리를 곧추세우고 꼿꼿하게 앉았다.
그런데 선생은 무표정하게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잠시 먼 데를 바라보며 아무 말씀이 없었다. 그 창백한 얼굴에 피식 웃음이 스쳤는가 싶었는데, 우물쭈물 옆구리에 끼고 온 종이 백을 꺼내더니 내 앞으로 밀어놓았다.
“허허! 이거, 이거 참, 쯧! 이거 말이야. 선물이야.”
뜬금없이 선물이라니? 뜨악해서 빤히 바라보는 내게 선생은 덧붙였다.
“사실 나도 이거 선물로 받은 것인데, 한 번 풀어봐.”
당시의 내게 선물 같은 것은 정말 필요 없었다. 선물은 실용보다는 비실용적인 장식품이나 사치품일 경우가 허다하고, 나는 그때 그런 멋부림을 즐길 만큼 여유롭지가 못했다. 나는, 저 안 깊숙한 곳에서 일어난 사건, 쿵 뭔가가 떨어져 내리고 혈관으로 잔가시들이 흘러다니는 바로 그 사건을 혹시 들켰을까봐 그것이 불안했고, 오직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난 선생이 내민 선물을 도로 밀쳐놓았다. 그러자 선생은 과장되게 헛웃음을 쳤다. 그 웃음에는 사뭇 부끄럼마저 묻어나는 듯했다. 난 과장되게 힘을 주어 입을 앙다물었다. 선생은 멈칫하고는 잠시 눈을 돌렸다가, 아주 어색하게 종이 백에서 포장된 상자를 꺼내더니 풀기 시작했다. 어찌나 꽁꽁 쌌던지 상자 속에서 또 상자가 나오고 그러길 몇 번, 얇은 미농지로 돌돌 싼 길쭉한 물건이 다섯 개 나타났다. 그것들을 조심스럽게 내 쪽으로 밀면서 다시 멋쩍게 웃으셨다.
“이제 풀어봐.”
그것은 상아와 라피스라줄리 등 다섯 가지의 보석을 연마해서 만든 도장 재료였다. 나는, 이걸 왜요? 하고 물었고 선생은 아직 도장을 새기진 않았으니 팔아 쓰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나는 반 년 전만 해도 보석장사였다. 이런 물건들도 무수히 내 손을 거쳐 도매 시장으로 흘러나갔다. 그러나 이미 그 일에서 물러났고 다신 그 바닥으로 들어서고 싶지도 않았다. 겹겹이 싼 걸 보면 선생에게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짐작이 갔다. 가난한 문사인 선생의 검박한 성품으로 보아 이런 보석을 함부로 써선 안 된다고 생각하셨던 게 틀림없다. 아껴 두었다가 언젠가 요긴하게 써야지, 그렇게 챙겨 두셨을 것이다. 그것을 차마 받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 전 선생님 마음만….”
목이 메어서 말끝을 흐리면서 엉거주춤 일어나 뛰쳐나오고 말았다. 주책없이 눈물이 줄줄 흘렀다. 혈관 속을 헤집고 다니던 잔가시들은 간데 없었다. 잘 했어, 참 잘 했어. 그런 걸 아무 생각 없이 받았다간 평생 그 은혜를 갚지 못할 거야. 한동안 나는 그 선물을 받지 않은 자신을 대견하게 생각했다. 어리석게도.
얼마 후 P선생은 림프암으로 세상을 뜨셨다.
너무 급히 달렸다. 너무 멀리 달렸다. 달릴수록 껍질만 단단해지는지 요샌 누구에게 내 마음 털어볼 조짐조차 사라졌다. 어디 외진 토굴 하나 없을까. 천지가 진동하게 통곡이라도 해보게, 그러면 이 단단한 껍데기 조금 부서지려나.
<2011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