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어 서글프다 / 유한근
그녀는 내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내가 나타나기만 하면 어디 있다가 오는지 알 순 없어도 안개처럼 와서는 내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그녀의 발걸음은 조신하다. 몸매도 단아하고 깔끔하다. 사는 곳이 어둡고 조잡한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언제나 단정하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숨어 있다가, 온다는 기별 없이 슬며시 다가오곤 한다. 그녀는 따스한 곳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햇살이 싱그럽고 하늘이 높아지고 빨강 잠자리가 마당을 떼지어 빙빙 돌 때쯤, 그녀는 가을이 지나고 곧 겨울이 닥치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햇볕 가득한 방을 찾곤 한다. 작년도 그러하고 올해도 그러했다. 해산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지도 모른다. 혈육을 잃고 나서 더욱 그러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따뜻한 곳을 찾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천성적으로 그렇게 태어났는지도 모르고.
그녀는 친구가 없다. 가끔 같이 오는 친구가 있어도 그 친구와는 말이나 눈짓을 섞지 않는다. 와서도 서로를 탐색하기만 할 뿐 전혀 살갑게 대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녀는 나만 만나면 처음처럼 눈길을 맞추고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눈을 가늘게 뜨고 깜빡거린다. 그것이 그녀의 유일한 살가운 행동이다. 어떤 때는 햇살이 밝은 저만의 공간에서 화장도 하고 뒹굴기도 하지만, 그녀는 애교 혹은 교태는 부릴 줄 모른다. 애교가 없어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녀를 원천적으로 싫어한다. ‘원천적으로’라는 언어를 쓴 것은 그녀의 부류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다. 내 잘못 때문이다. 다시는 그러한 죄를 저지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치명적인 죄악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 때문이다.
오래전 일이다. 내가 유년시절 개구쟁이 때 일이었지만 지금도 그 기억은 생생하다. 그때도 늦가을이었다. 시골집 안마당에 벼 타작을 끝내고 벼 퉁가리를 세우고 난 뒤의 일이었으니까 아마도 그때쯤 되었을 것이다. 가지고 놀던 세발자전거 앞바퀴가 고장 나 폐품이 되었을 때, 나는 그 고장 난 자전거를 어떻게 가지고 놀 것인가를 궁리하다가 마침내 그 자전거를 끌 어 줄 염소를 생각해 냈다. 힘이 센 염소. 그 염소의 몸에 자전거를 묶고 끌게 하면 염소는 언덕길로 힘차게 끌고 올라갔다. 세발자전거 뒤에 탄 유년의 나는 해 지는 줄 모르고 어머니가 저녁 먹어라 찾아 나설 때까지 친구들과 같이 놀곤 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뒤 그 염소는 유산을 했다. 그 유산의 흔적을 나는 봐야만 했다. 처음에는 그 흔적이 무엇인지 몰랐다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앓아누웠다. 그때의 충격으로 나는 그 뒤부터 동물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싫었다. 꿈틀거리는 것은 무엇이든 싫었다. 그 대신 식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식물이 좋아졌다. 식물성적인 인간만을 좋아하게 되었다. 동물적인 것은, 역동적인 것은 평상심(平常心)을 잃게 하여 무조건 싫었다. 그래서 나는 첫 시집 제목을 아이러닉하게 ‘사랑은 흔들리는 행복입니다’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래서 그녀와 같은 부류를 싫어하게 되었다. 물론 그때의 그 트라우마는 지금 극복되었지만, 아직도 움직이는 것에 대한 나의 원천적인 거부는 남아 있다. 그러나 그녀를 관찰하고 나서, 그리고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서 그것들은 많이 치유되었다.
그녀는 오만하다. 그 오만은 역동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해도 그녀는 한 발도 다가서지 않는다. 그녀는 움츠리고 있다가 단번에 비약하여 내 곁으로 올 수 있는 도약성과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 정(靜)에서 동(動)으로 이동하는 힘이 폭발적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끝없는 여행을 꿈꾼다. 무언가를 탐색하려는 음모를 놓지 않고, 주위에 미세한 움직임이나 거동에도 귀를 세운다. 탐색할 때는 정적이었다가 움직일 때에는 표범처럼 날쌔다. 누군가에게도 주려 하지 않고, 받지도 않으려 한다. 그러나 나한테는 받으려 한다. 나에게 한 발짝만 다가와도 나는 성큼 그녀에게 다가가 안아 줄 수 있는데도 그녀는 나에게 한 발짝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녀는 캣츠걸처럼 오만한 척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마도 그녀의 절대 고독 때문일 것이다. 그녀를 처음 만난 때는 추운 겨울이었다. 서까래가 높은 100년 된 한옥의 낡은 집에서 두 개의 주검과 함께 떨고 있는 그녀의 눈과 마주쳤다. 두 혈육을 그녀는 추위와 굶주림으로 잃었다. 그녀의 두 혈육을 언 땅에 묻어 주었는데도 그녀는 나에게 가까이 오지 않았다. 오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도망치기 좋을 만큼의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나를 지켜보기만 한다. 자신의 고독이 자신만의 영역인 것처럼. 그래도 그녀는 아직도 그곳에서 나를 기다린다. 유령처럼 적막한 마을에서, 새벽안개 속 골목길을 낡은 유모차에 의지하여 천천히 걸어가는 독거노인들을 바라보며, 적요함만을 지키며 기다린다. 그래서 이제는 낯익은 그녀가 서글프다.
췌언. 이 글에서의 ‘그녀’는 대대로 내 시골집을 지키는 들고양이다. 앞으 로 다가올 이 겨울에는 새끼를 낳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