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좋은수필 2018년 2월호, 현대수필가 100인선 엿보기] 어떤 통증 - 이관희
어떤 통증 - 이관희
거리에서 사가지고 온 사과 봉지 밑의 사과가 썩은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가슴에 어떤 통증을 느낀다. 내 평생에 내가 남에게 얼마나 많이 배암이 되었으면 그 중에 한 마리가 나에게로 돌아왔을까.
길을 가던 사람이 내 등 뒤에서 가래침을 크윽 돋워 카악 뱉을 때, 가슴에 어떤 통증을 느낀다. 내가 얼마나 세상을 더럽히며 살았으면 길 가던 사람마저 내 등 뒤에 대고 가래침을 카악 뱉을까.
자주 다니는 산길에 어느 날, ‘이곳에 개를 다리고 다니는 사람은 개다’라는 서툰 글씨가 써 붙여진 것을 보았을 때, 가슴에 어떤 통증을 느낀다. 문득, 지금까지 살아 온 내 인생이 저 서툰 글씨의 낙서 같은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네 길 모퉁이에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는 자는 삼대가 망한다.’는 문구가 붙여져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가슴에 어떤 통증을 느낀다. 내가 지금 금성이나 화성에 와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사람들이 나를 E.T. 같은 우주 괴물로 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축구공처럼 떼굴떼굴 굴러가게 생긴 동네 아주머니가 처음으로 걷기 운동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을 때, 가슴에 어떤 통증을 느낀다. 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는 말이 왜 이런 때는 오히려 슬프게 느껴지는 것일까.
50대 후반 쯤 되어 보이는 늙은 택시 기사가 한적한 길가에 급히 차를 세우고 모퉁이로 뛰어가 참았던 방뇨를 하는 모양을 보았을 때, 가슴에 어떤 통증을 느낀다. 6.25 피난 시절, 중풍 든 엄마가 손발을 떠시며 얻어 오시던 밥 바가지 생각이 왜 하필 이런 때 불쑥 떠오르는 것일까.
혼자 사는 노인이 기르는 개를 똥 뉘러 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을 때도,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는 공원 구석진 자리에 아까부터 혼자 앉아 있는 노인을 보게 되었을 때도 똑같이 가슴에 어떤 통증을 느낀다. 다 파먹고 문밖에 내놓은 빈 짜장면 그릇이 생각나서.
날이 어둑해질 무렵까지 차가운 길바닥에 푸성귀 몇 점을 놓고 팔고 있는 할머니와 시선이 부딪치는 순간, 가슴에 어떤 통증을 느낀다. 계절이 가을로 접어든 지 오래 되었는데 어디선가 꿈속인 듯 들려오는 매미 울음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
낙엽 밟히는 바스락 소리에도 어떤 통증을 느낀다, 라고 사람들이 수 천, 수 만, 억, 억 번도 더 느꼈을 똑같은 느낌을 나도 메모해 놓은 글을 보자, 문득, 발밑에 밟혀 부스러지는 낙엽소리를 정말로 누군가의 비명 소리로 들었을까, 정말로 썩은 사과 한 알을 나에게 되돌아 온 배암 한 마리로 여겼을까, 정말로 내가 세상을 너무나 많이 더럽히며 살았기 때문에 길거리 사람들마저 내 등 뒤에 대고 카악 가래침을 뱉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의심이 들며, 그만 지금까지 쓴 모든 거짓말들을 다 지워버리고 싶어진다.
(그러나 다음 글을 써 놓은 후 지워버리지 않기로 한다. 내가 쓴 글들이 졸작인 것은 맞지만 거짓말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내가 쓴 글들은 모두 시詩(창작)였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외출하다가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몸을 팔아 달라’는 젊은 여자들의 벌거벗은 전단 사진을 아차 피하지 못하고 그만 밟고 지나가게 되었을 때, 가슴에 어떤 통증을 느낀다. 그 순간, 중학 시절에 읽은 슈바이처 박사의 ‘나는 살고자 하는 생명체 속에 둘러싸인 살고자 하는 생명체다.’ 라는 말이, ‘나는 언제 저들의 살고자 하는 몸부림을 한 번이라도 팔아 준 일이 있었던가?’ 라는 말로 들려왔기 때문이다.
이관희 님은 『창작에세이-작품과 작법』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