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바꾸기 / 박경대


    

 

녁에 재미있는 드라마를 한 편 보았다. 미국으로 입양되었던 아이가 의사가 되어 귀국한 뒤 가족을 찾은 내용이었다. 주인공의 집에 남자가 귀했던지 이름이 귀남이었다. 성이 방 씨이니 방귀남이 되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이름이 나오면 웃음이 났다.

십여 년 전 여름, 청문회가 열렸을 때 증인으로 출석한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 선생의 본명이 김봉남으로 밝혀져 사회에 회자 되었던 적이 있었다. 세계적인 감각을 가진 분의 본명이 예상외로 고전적이어서 국민들에게 많은 웃음을 선사했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주위에서 별난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날 때가 종종 있다. 학창시절 조용희라는 친구가 있었다. 선생님께서 출석을 부르실 때 이 친구의 이름만 불리면 반 전체가 웃음바다가 된 기억이 난다. 유머가 많았던 선생님은 그때마다 시끄럽다며 탁자위에 막대기를 두드리며 조용히, 조용히.’라고 하여 한참동안 배꼽을 잡곤 했다. 다행히 친구의 성격이 좋아서 별일 없이 잘 지내었다.

요즘은 이름을 쉽게 바꾼다. 연예인들은 본명을 쓰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이름을 고쳐 쓰는데 아예 성()까지 바꾸는 스타도 많다. 글로벌 시대여서인지 영어 이름도 괘념치 않는다. 대법원에서 이름을 고치기 쉽도록 판결이 내린 몇 년 전부터 개명의 열풍이 불었다. 보도에 의하면 벌써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평범한 이름을 세련된 이름으로 고치기도 하지만 대부분 듣기에 좋지 않아 개명을 원하는 것이다. 이름 때문에 고민의 정도를 넘어 우울증으로 발전하는 사람들도 있다.

듣기에 자신의 성()에 반하는 이름, 상스러운 이름, 놀림의 대상이 되는 이름, 등 신청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다양하다. 또한 평범하게 쓰이던 이름이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범죄자와 이름이 같다하여 고치려는 경우도 있다.

신문에 개명을 신청한 사람들의 이름이 있기에 살펴보니 강도범’ ‘성기왕’ ‘신난다’ ‘엄어나’ ‘피해자’ ‘임신중’ ‘송아지’ ‘석을년등 이루 다 적을 수가 없을 정도로 우스꽝스러운 것이 많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고통을 겪었으리라는 생각이 단박에 들었다.

예전에는 똥개나 차돌이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많았다. 별명이 아니고 심지어 아이의 엄마까지 그렇게 부르기에 참으로 의아하게 생각했다. 의료시설이 부족하던 4~50년대에는 집집마다 생기는 대로 아이를 낳아 그 중 한 둘을 잃어버리는 집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식의 이름에 마당에 뒹구는 똥개처럼 아무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똥개나 차돌이라는 아이를 학교에 입학할 무렵이 되어야 비로소 본명으로 바꾸어 부르는 것이었다.

나도 본의 아니게 이름이 바뀌었다. 어릴 적 들은 이야기로 선친께서 출생신고를 하실 때, 클 태()로 신고를 하였다. 그러나 점을 찍은 위치가 애매하였던지 동사무소 서기가 마침표로 보고 호적원장에 큰 대()로 등록이 되어 버렸다. 집과 동네에서는 경태로 불리다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비로소 경대로 되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이름을 고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딸아이 이름은 내가 지었다. 첫딸을 원했기에 아이가 태어나기 두 달 전쯤 로부터 시작하여 차례로 글자를 써 보다가 부르기 쉽고 예쁘며 한자를 조합해 보아도 그럴 듯하여 송미(松美)로 할까 생각하고 불러보곤 하였다. 이른바 요즘의 태명이었다.

몇 달 후, 실제로 딸이 태어났다. 어머니께서는 독자 집안에서 계집아이의 이름을 지어 미리 부르는 바람에 딸이 태어났다고 마땅찮게 여기셨다. 그 딸애의 나이가 서른이 넘었으나 이름이 어떻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걸 보면 이름을 잘 지은 모양이다.

모임에서 알고 지내는 몇 분도 최근에 이름을 바꾸었다. 대부분 예쁜 이름을 원하는 여성분이다. 그분들에게 바뀐 이름을 불러 드리면 활짝 웃으시며 좋아하신다. 여태껏 부르던 이름을 바꾸면 주위사람들에게 불편을 주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이름으로 바꾸어 생활에 활력이 생기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듯 기분이 좋아 진다면 바꾸어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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