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살아있는 동안 / 윤재천
나는 과연 그를 사랑하고 있으며, 얼마나 오랫동안 이 마음을 지켜갈 수 있을까. 오랜 시간이 지나도 후회하지 않을 것인가 스스로 반문해 본다.
겨울의 긴 그림자가 골목 한 켠을 채우고 있다.
나는 황량한 겨울을 살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한 방황이기보다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지녀온 것을 지키기 위한 마음 씀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나 이상으로 소중히 여기고, 그 소중함 속에 나를 버티는 이 험난한 지킴, 후회하거나 없었던 일로 지워버리고자 하는 생각은 없다.
참다운 사랑에는 아픈 인내가 필요하다. 그 인내가 동반되지 않은 사랑은 자기위안의 길일 뿐, 본질적 의미에서 사랑의 실천은 아니다. 사랑의 가치는 스스로를 지킬 때 더욱 빛난다.
우리는 주어진 삶의 시간 동안 몇 사람을 자기 이상으로 사랑하고 아끼며 살 수 있을까. 의무로 이어진 사랑이 아니고, 선택으로 이루어진 사랑이라면 그것을 견디고 지키는 방법은 약속 하나밖에 없다.
지켜지지 않는 약속은 애초부터 의미 없는 것이기에, 그것은 참사랑이 아니다. 약속을 지키는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다.
이것은 한 인간으로서 또 하나의 인간에게 전하는 자기맹세이며, 남의 눈에 보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영원히 자기 스스로 지켜나가는 진실의 실천이다.
사랑은 온유(溫柔)한 것이나 때로는 참혹하리만큼 고통도 동반되고, 그 진실을 위해서는 자기가 지닌 모든 것을 버리고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랑은 소중하게 지킴으로 가치를 지니고 의미를 더한다.
그을음이 일지 않는 사랑, 그것은 순수한 열정에서만이 가능한 것이고, 혼신을 다해 지켜나갈 때만이 이루어질 수 있다.
무엇인가를 손에 쥐어주고 싶으나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그를 안타까워하는 것이 진정한 마음이며 참사랑의 온기(溫氣)가 아닐까.
사람에 따라서는 사랑을 빙자해 명예와 물질적 풍요를 쟁취하는 사람도 있고, 그것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버리는 사람도 있다. 어느 것이 더 현명하고 인간다운 결단인가는 한 마디로 단정짓기는 어렵다.
나는 전자보다 후자에 마음이 쏠린다.
세월이 지난 다음, 영원히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없다. 사랑했던 사람도, 사랑받았던 사람도, 이들을 축복하고 증오했던 사람도, 별 관심 없이 바라보았던 사람도 남아있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만 의미가 있다.
사랑은 젊은이들만의 독점물은 아니다. 찾아야 할 한쪽을 만나기 위해 헤매는 방황도 아니다. 사랑은 살아가는 모습이며 영원히 지켜져야 할 약속을 지켜나가는 노력이다.
사랑은 서로의 가슴에 드리운 상대의 무게를 부담스러워 하지 않으며, 가볍게 하려고 떨쳐버리지 않을 때만이 가능하다. 이러한 간절함이 어느 한쪽의 것으로 남는 경우도 있지만, 이 순간에도 후회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약속을 하고 어느 한쪽이 어겼다고 해서, 지킨 다른 한쪽마저 약속을 어긴 것은 아닌 것처럼….
사랑은 자신의 힘으로 서지 못할 순간까지도 지켜져야 하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못해 빈손을 허공에 대고 휘저을 수 있을 때 까지도 지속되어야 한다.
나는 그런 사랑만이 부끄럽지 않은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너를 위해 그 약속을 끝까지 지켜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