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하늘 밑 세미나
-어머니가 보이는 강-
1. 마음을 끄는 곳
통한다는 말처럼 기분 좋은 말도 없을 것이다.
마음이 통하고, 생각이 통하고, 정이 통하는 사람들, 거기에 초대하는 이, 초대받는 이가 함께 통하는 사람이라면 더 무엇을 바라랴.
1996년 7월 20일 토요일 아침, 수필가 150여명은 세 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서울을 출발하여 이재현 수필가가 군수로 있는 전남 무안으로 향했다.
무안! 내겐 유달리 정겹게 와 닿는 지명이다. 내가 살아본 적은 없지만 내 호적등본을 떼면 원적 난엔 전남 무안군 몽탄면 사천리라고 나온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내가 태어난 곳도, 살았던 곳도 아니라 해도 나는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무안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래 여러 가지 크고 중요한 교회행사까지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이상하리만큼 마음을 끄는 무안 행에 동행케 된 것이었다. 물론 내가 이번 세미나에 참석하게 된 이유가 꼭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 동안 나는 대개의 세미나가 토요일과 주일로 이어져 있어 좀체로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세미나만은 참석하고 싶었다. 특히 주제 발표자로 정해진 분들이 내가 평소에도 좋아하는 분들이고, 그 분들이 무안사람이라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었다.
또 하나는 민선 자치시대가 열린 후 1년간의 성적표에서 전국 시.군구 기초단체 중 ‘삶의 질이 가장 나아진 군’으로 선정된 곳이라는 점이다. 현대경제사회연구원과 조선일보사가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생활편의, 공무원 친절, 치안, 여가문화, 지역경제, 의료복지 등의 항목을 종합적으로 조사해 발표한 성적표(?)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한 곳이 과연 어떤 곳일까 하는 호기심과 그곳이 나와도 관계 있는 곳이란 데도 있었다.
거기에다 어머니가 태어나시고 살다가 가신 곳, 그곳이 강 하나를 사이에 둔 곳으로 자주 그 땅을 밟고 목포를 오르내리시던 곳이라는 점이다.
그곳에 가면 아직도 어머니의 냄새, 어머니의 분위기, 어머니의 무엇인가가 나를 반겨줄 것만 같고, 나는 그런 땅의 품에 안겨 어머니를 느껴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었다. 나는 그렇게 홀린 듯 무안으로 향했던 것이다.
2. 강물이 바닷물이 되는 곳
무안군은 2읍 7면에 인구가 칠만 오천명이며, 면적은 전라남도의 3.7%에 해당하는432.5km로 국도 1호선과 서해안 고속도로가 중심부를 관통하는 교통의 요로에 27개의 섬까지 보유한 천혜의 땅으로 목포대, 초당대 등 2개의 대학과 5개의 고등학교, 8개의 중학교, 31개의 초등학교가 있다고 한다.
한반도 전체적으로 서남부 가장자리에 위치하여 지리적 문화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 곳으로서 서쪽은 서해와의 사이에 신안군의 섬들과 서북쪽으로는 영광, 함평군과 경계를 이루며 목포시와 연접하여 호남의 젖줄 영산강을 사이로 나주, 영암군과도 경계하고 있는 3면이 바다와 강으로 된 특수한 지리적 환경의 곳으로서 허리를 흐르는 영산강 물이 목포 앞 바닷물과 접하는 곳도 바로 무안이란 곳이었다.
원래 무안군은 상고시대엔 마한의 영지였으며, 백제시대엔 물하혜군 면주였고, 신라시대엔 무주의 무안군이었다가 고려시대엔 물량군, 나주목의 무안군, 무안현으로 되었고, 조선시대엔 전라도 무안현, 나주부 무안군이던 것이 1896년인 고종 건양 원년 8월 4일 사실상 지금과 같은 전라도 무안군으로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일제시대엔 목포부로 개칭되고 다시 목포부와 신안군이 분리되었으며 정부 수립 후엔 무안군에서 신안군이 분군되어 현재에 이른다고 한다. 그래 지난 5월 7일 군민의 날엔 설군 100주년 기념행사를 성대히 거행했었다고 한다.
3. 초록과 파랑이 어우러진 곳
군청 세미나실, 토요일 오후임에도 이재현 군수와 김동현 군의회의장, 경찰서장 등 관내 기관장과 군직원들의 환영 속에 서울에서 온 150명, 각 지방의 100여명 등 250여명의 수필가들은 순서에 따라 개회식에 이어 세미나에 들어갔다.
금아 피천득의 수필세계를 음미해 보고, 그 수필의 기법적 특성을 고찰해 보는 시간으로 원형갑 교수와 이명재 교수의 주제발표가 있었으며, 이어서 이 고장 출신 소청 조희관 선생의 인간과 문학정신에 대해 김정오 교수의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워낙 시간의 제약을 많이 받는 만큼 충분한 질의응답의 시간을 갖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부끄럽게도 소청 선생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다가 이번 기회에 많은 것을 알게되어 기뻤고, 세미나 후 만찬시간에 펼쳐진 국악 향연은 남도예술의 본향답게 멋과 맛이 펼쳐지는 감동의 시간이었다.
해가 지기 전에 해변에 어우러지는 저녁놀의 장관을 보여 주겠다고 안타깝게 서두르는 이 군수의 정성도 아랑곳없이 그 긴 해 조차 무심하게 져버린 후에야 우리는 축제의 자리 홀통해변으로 향했지만 이미 어둠에 덮인 외길 시골길에 서투른 한 운전자의 실수로 차가 빠지고 덕택에 우리들은 차를 내려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을 걸어 해변으로 향했다.
10분 거리라는 군청 직원의 안내 말과는 달리 가는 길은 꽤나 멀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걷는 시골의 밤길, 거기에 바람이 일 때마다 스며드는 바다 내음이 싫지 않았고, 길 양옆의 농작물들에서 풍겨나는 초록 향기는 어린 날로 마음을 끌어가기에 족했다.
해송과 긴 백사장이 끝없이 이어져 장관을 이루고 있고, 초록과 파랑의 내음이 어우러진 홀통해변에서 우린 축제의 한 마당을 펼쳐냈다. 흥을 돋구기 위해 마련한 농악 한 마당에 회원들의 노래자랑, 춤 자랑, 모닥불을 돌며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움과 기쁨 속에 밤이 이슥토록 정 나누기를 했다.
삶이란 이렇게 나를 펼쳐내고 드러내 보이면 훨씬 편하고 즐거운 것을, 우린 어째서 그토록 싸매고 조이고 묶고 감추려고만 했을까.
때로 어둠은 사람을 용기 있게도 해 주나보다. 어둠과 불빛이 교차하여 펼쳐내는 신비한 어우러짐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를 열어 보이게 되고 그것은 곧 즐거움으로 기쁨으로 환호로 얽매인 것들을 훌훌 벗어버리게 한다.
가진 것, 모은 것, 쌓은 것이 무엇인가. 비로소 맨 몸 하나인 것을 발견하는 순간에야 사람들은 보다 인간적이 될 수 있음이 아닐까.
짜임새 있고, 멋들어진 한 자리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정성을 다해 대접코자 애쓰는 군수 내외분과 퇴근도 못하고 끝까지, 아니 우리보다 더 늦게까지 뒷정리며 안내를 맡은 군청 직원들의 애씀, 그 수고를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동남호텔과 청계장 두 곳의 숙소에 나눠 새벽 1시가 다 되어서야 여장을 푼 우리는 그렇게 하루를 보내었던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무안평야의 초록 내음과 먼 듯 가깝고, 가까운 듯 멀어 보이는 파랑바다가 바람을 빌어 뜨거운 호흡을 섞는 정의 고장 무안에서의 첫 날은 그렇게 숨가쁘게 지나갔다.
4. 어머니가 보이는 곳
다음 날은 새벽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일찍 잠을 깬 일행은 산책을 하거나 정다운 이야기의 꽃을 피웠고, 주일을 지키지 못한 50여명은 강당에 자리를 만들고 예배를 드렸다.
찬송과 기도와 말씀으로 여는 하루, 마음 한 켠에서 죄스러움이 고개를 드는가 싶었지만 예배 후 전국 각지에서 모인 각자의 소개를 받으면서 이렇게 자리를 함께 한다는 것도 참 의미 있는 일이고, 축복된 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내 마음이 가벼워지기도 했다.
바쁘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는 버스 편으로 이 군수의 안내를 받으며 무안의 볼거리들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시간이 없어 대개 지나치는 것으로 대신해야 했지만 상동마을 용암저수지 뒤 청룡산 소나무 숲을 목화밭인 양 하얗게 덮어버린 백로, 왜가리들을 보면서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고장 무안임을 알 수 있었고, 굽이굽이 정겹게 펼쳐진 해안도로의 좌우로 자라 오른 담배, 토마토 등 농작물을 사열하는 맛 또한 그만이었다.
무안 양념채소 영농조합에서 전국 생산량의 24%를 차지한다는 무안 양파를 구경하고, 해제면 송서리 도리포항에 도착하니 내리던 비가 멎어 있었다. 원래는 임치진 수군통제부가 있던 곳이라는데 돔, 농어 등이 잘 잡히는 바다낚시터로 유명한 곳으로 톱머리의 단감, 탄도의 감태와 함께 이곳 도리포의 새우는 무안의 3대 임금님 진상품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근래엔 고려시대의 청자유물 596점이 인양되어 더욱 알려진 곳이기도 하단다.
247만m에 국제공항이 들어선다는 망운면을 거쳐 우린 승달산의 전설을 뒤로 한 채 차를 달려 목포로 향했다. 원래의 계획은 남농 기념관과 목포 향토관도 함께 관람할 계획이었으나 시간이 원수라 결국 국립 해양유물전시관 하나로 만족해야 했다. 완도선, 신안선 및 해양유물 전시실과 선박사 전시실 등을 관람하며 우리 조상들의 슬기와 재능과 과학적 정신에 다시 한번 탄복을 했다.
하마터면 빛도 보지 못했을 귀한 유물들이 발굴되고 인양됨으로 그 시대를 추정하고 조명해 볼 수 있게 되었고, 또 당시의 무역상황이나 생활모습까지도 알아볼 수 있게 하니 얼마나 귀한 보물들인가.
때로는 감춰진 것이 아름다울 수 있고, 영원히 숨겨져 있는 것이 귀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햇빛을 보게 됨으로서 얻는 이 엄청난 감격과 기쁨 또한 소중한 것이 아니랴.
문학을 창작이라고 하지만 수필문학 만큼은 창작일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집채만한 커다란 돌을 쪼아내어 함빡 웃는 아가의 얼굴을 조각 했다 해도 그것은 돌 속에 숨어있는 아가의 웃음을 꺼내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듯 수필 또한 숨결과 향기와 소리를 불러내고 모으는 작업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지나는 길목의 풀꽃 하나까지 결코 낯설지 않음도 내게서 늘 감돌고 있던 고향에의 그리움과 고향이란 말 대신 어머니로 가슴 뭉클케 하던 짭찔한 강물 내음 같은 안타까움이 가슴에서 늘 흐르고 있기 때문이리라.
보는 것, 만나는 것, 그리고 떠나고 보내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으련만 우린 문명의 이기에 너무 많이 길들여져 있어 볼 것도, 들을 것도, 심지어 맛도, 멋도 제대로 느낄 수 없게 되어버리지 않았던가.
오랜만의 수필을 통한 나들이 길에서 나는 또 한번 어머니가 보이는 강 앞에 선다. 떠나는 차창에 무섭게 쏟아지는 빗줄기가 애써 눈물을 감추고자 양파를 까시는 어머니의 모습인 양하여 자꾸만 가슴이 아려온다.
빗물 내리는 차창으로 저만치 따라오고 있을 영산강을 향해 소리 없는 외침으로 어머니를 불러본다. 내 속에 흐르는 또 하나의 강물 줄기 하나, 그것은 내 작은 신앙과도 같은 그리움,어머니는 내 가슴에서 강물처럼 무안에서도 흐름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수필문학 세미나를 통해 가슴 가득 안아보는 고향 내음, 그리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서로의 가슴에서 가슴으로 흐르는 우리 수필인들의 정 줄기를 확인한다.
아마 그렇게 쏟아지는 빗속의 귀경 조차 편안할 수 있었음도 가슴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고픈 우리 모두의 바램, 그 열망이었을 것 같다.
< 수필문학 '96.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