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표 여행
- 어머니가 보이는 강 -
1. 떠나는 마음
여름이면 늘 마음앓이를 했다.
두개의 마음이 네니, 나니 하며 실랑이를 하는 중에 마음 약한 나는 둘 다 포기하곤 했었다.그러나 이번 여름은 좀 달랐다. 아지 못할 불안과 함께 조급함이 마음을 흔들고, 이것저것 계산까지 하게 한다.
해마다 무더위 때가 되면 꼭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 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목숨 걸고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 북새통에서 다른 사람의 땀내로까지 범벅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나는 싫었다. 거기다 아이들과 일치를 볼 수 없는 것이 일정이었다. 결국 그것을 구실 삼아 적당히 넘기곤 했었는데 금년엔 아무래도 사정이 좀 달랐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미리 선포를 해 버렸다. 가족이라고 해봐야 네 식구이지만 이번 여름엔 가족 모두 함께 여행을 간다고 날짜까지 공포를 해 버렸다.
사실 두 아이가 모두 커버렸으니 금년 여름이 아니면 이젠 그나마 가족 함께의 나들이란 더욱 쉽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다는 큰 아이를 으름 반으로 설득을 하여 참으로 어렵게 시간을 맞췄다. 다른 사람들의 휴가가 거의 끝나는 8월 19일부터 3일간을 잡았다.
떠나기 전 날인 주일 밤에 짐을 모두 꾸리고, 월요일, 날이 밝기도 전인 새벽 일찍 출발을 했다. 몇 시간이나 걸릴지 전혀 예측은 할 수 없지만 그렇게 밀리지는 않을 거라고 예상했던 대로 가는 길은 꽤나 수월했다. 반대편인 서울로 돌아오는 길의 길고 긴 차의 느림보 행렬을 동정을 섞어 즐기면서 야릇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시원스레 뚫린 길로 신나게 차를 몰았다.
일단 길을 떠나면 긴장이 되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자못 여유롭고 호기롭게 출발을 한 셈이다. 그러나 떠나는 마음이란 어른이고 아이고 기대 반, 두려움 반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2. 통일전망대에서
미시령 길에서 갈라져 진부령 쪽을 택했다. 통일전망대로 가기 위해서다. 아침 7시 30분, 떠난 지 세 시간 여만에 진부령 초입의 계곡에 이르렀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보기만 해도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차를 세우고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넓고 편편한 돌을 주워 불에 달구고 고기를 얹으니 냄새와 맛이 기가 차다. 산해진미가 무슨 소용이랴. 조물주가 지으신 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시리도록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자연석 위에 구워 먹는 이 맛에 어찌 견줄 수 있으랴.
물 속의 돌멩이들 색깔이 너무 예쁘다. 하나 꺼내어 봤더니 아름다운 빛깔이 오간 데 없다.다시 물 속에 넣으니 아까의 그 색깔이 그대로 나타난다. 아. 저 있어야 할 곳에 있을 때 저만의 아름다움도 나타나는 것, 네 자리는 바로 거기였구나.
다시 차를 몰아 길을 재촉했다. 간성, 화진포, 그리고 통일전망대, 아침인데도 차는 많고, 출입 수속을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다. 30분 이상을 기다려서야 차를 다시 움직일 수가 있었다.
민통선으로 들어섰다. 분단의 아픔이나 비극이란 말조차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터이지만 이제는 오히려 이런 모습이 자연스러워져 버릴 수도 있는 반세기 우리의 아픔, 그 산과 바다가 아닌가.
통일전망대. 분단의 현실에서만 가능한 이 통일이란 말이 싸아한 아픔이 되어 가슴속으로 아리아리 스며든다. 저 멀리 바라보이는 산 속의 건물을 경계로 남과 북이 갈라진다는 설명이지만 산도 나무도 그 푸르름도 같은데 어찌 사람들만 내 편, 네 편을 갈라놓는 것일까.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바다와 백사장이 그림처럼 곱다. 아스라히 펼쳐진 수평선 끝에서 금방이라도 포롱포롱 새들이 날아오를 듯 배들이 피어오를 것만 같고, 백사장 저편에선 티없이 맑은 웃음을 몰고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아이들의 한 떼가 모래바람을 일으킬 것만 같다.
바닥까지 들여다보일 것 같은 청정수, 이렇게 맑고 고운 내 조국의 산하인데 언제부턴가 여기저기서 그 맑고 고움이 깨어져 가는 소리를 듣는 마음이 너무나 아프던 것을 생각한다.
초소를 지키는 초병과 낡은 탱크 한 대, 어쩌면 우리의 현실을 가장 잘 말해주는 아픔의 한 장면이 아닐까싶다.
갈 수 없는 땅이기 보다 가고싶은 땅의 시작인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쩔 수 없이 온 길을 되돌아가는 것밖엔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단 말인가. 문득 갈 수 없는 저편에서 그만 돌아가라고 한사코 손을 내저으시며 소리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닿을 수 없는 곳,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늘 아쉬움으로 안타까움으로 나타나는 어머니, 그래도 어머니가 보이는 곳은 자연의 순수, 곧 예스러움이 남아있는 곳일 게다. 허망한 깊이로가 아니라 안타까운 그리움으로 살아나는 곳, 그런 곳에서만 어머니는 계시는가.
3. 청호동 해변에서
여름의 끝물은 백사장에 내리는 햇볕 열기로 가늠 되나보다. 이쪽과 저쪽을 쇠줄로 이어놓고 배를 통하여 건너다니는 속초시 청호동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북쪽에서 피난 온 실향민들이라고 한다. 잠깐이면 되겠지 했던 헤어짐이 기약조차 할 수 없는 이별이 된 지 오십여년, 그래서일까. 재미 삼아 타보는 100원 짜리 배 삯만큼 마음은 결코 가볍지가 못하다.
어쩌면 얼마 전 T.V로 보도되던 청호동 사람들의 삶, 얼마 안 있으면 관광 레저타운 건설로 그나마 생명 줄을 붙들고 있던 그 한 많은 삶의 터, 마을마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나저제나 통일의 날만을 기다리며 세월만 가라고 시작했던 오징어 잡이는 유일한 생계수단이 되어 버렸지만 정 붙이고 마음까지 주어버리면 통일의 날이 행여 늦어지기라도 할까봐 늘 조바심으로 마음 졸이며 살아온 인고의 세월들, 이제는 붙이고 주고 할 것도 없이 반 백년의 역사 속에 고향처럼 되어버린 곳 아니던가. 헌데 이제 와서 오징어 배 등불을 끄고 어디로 갈 수나 있단 말인가. 청호동은 여름 햇볕보다 더 뜨거운 몸살, 마음살을 앓고 있는 것 같았다.
길 넘어 백사장에 자리를 마련하고 입은 옷 채로 바다에 들어갔다. 밀려오는 파도를 맞 부딪혀 가며 여름의 끝에 다다라 보기라도 하려는 듯 파도를 받아내자 짜디짠 바닷물이 울컥 목구멍 속까지 스며든다.
어쩌면 이곳 지형도 바뀔 판이다. 청호동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 절망과 고통까지 녹아있을 바닷물에선 해초 가닥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고, 조금 저쪽에선 바닷조개를 잡는 듯 도구를 동원한 사람의 한 떼가 합동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문득 이 작은 마을에 흐르고 있는, 그리고 이 햇볕에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는 무수한 의미와 소리들이 바닷바람이 되어 쏴아 하고 내 가슴속을 마구 헤집고 달려드는 것 같았다.
나는 모래사장에 벌렁 드러누웠다. 가늘고 보드라운 모래의 감촉이 어머니의 팔베개 마냥 포근하다. 모래 구덩이를 파고 있는 작은 녀석의 등위로는 늦은 오후의 햇살이 조명이 되어 자애로운 어머니의 눈길처럼 따사롭게 내리고 있다.
청호동은 어머니의 신세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착할 수 없는 삶, 정붙일 사이도 없이 너무나 짧은 삶을 살다 가신 내 어머니처럼 청호동도 결국 아쉬움과 그리움만으로 역사 속 흔적만 남겨놓게 될 것이 아닌가. 그것은 내 가슴으로 치는 작은 물결이기도 하다. 무언가 분명한 실체로 다가오지 못하는 그리움은 내게선 늘 어머니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던 것이 아니었던가.
시간이 지날수록 물에서 느끼는 체감온도가 너무 차가워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저만치로 지는 해를 어쩌지 못하게 되자 하나 둘 짐을 챙겨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그리고 줄을 당겨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물 속에 드리워진 긴 배 그림자를 꼬리로 하여 상당히 크고 이상한 괴물의 형상을 이룬다. 지금 이 시간 청호동 사람들의 여러 가지 복잡 미묘한 모든 감정들이 일시에 몸밖으로 표출된다면 저런 괴물의 형상처럼 되지는 않을까.
하루살이 삶으로 왔다가 떠나는 여름 휴가객들을 맞이하고 보내면서 청호동 사람들도 다시 떠나는 연습, 헤어질 준비를 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청호동은 청호동 사람이 지킬 것, 잠시 들린 나그네인 나의 경우 같은 고작 백원 짜리 동전 하나만큼의 연민이 얼마나 그곳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 보탬이 될 수 있으랴.
하지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내리고 해왔던 세월이 아니던가. 바닷내음인지 땀내음인지 모를 짭찔한 내음이 스치는 바람을 타고 코끝에 스며든다.
당사자가 아닌 다음에야 그 절절함은 십분 지 일도 되지 못할 것, 말없이,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살그머니 떠나 주는 것 그것이 예의일 수도 있다는 아픈 깨우침처럼 떠나는 마당에 묻어드는 짭찔함은 더욱 유별난 것만 같다.
4. 비룡폭포
어떻게 해서 떨어지는 물일까?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배꼽 꼬추 다 드러내 놓고 천진스런 함박웃음으로 ‘쉬이!’ 하고 있는 오줌싸개 아이 같은 표정, 비롱은 엄숙함보다 오히려 천진함이 더 돋보였다.
오르고 내리는 길 또한 웅장함 보단 다정함이 있었고, 아무데고 앉으면 편하기만 할 것 같은 물과 바위와 산 그림자의 어우러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지만 산이 물에 어우러지고, 물이 산을 감싸안을 때에야 비로소 산답고 물다울 수 있지 않을까.
한없이 떨어져 내리는 물보다 쉼없이 내려보내는 마음이 넉넉할 수밖에 없는 것은 주어도 주어도 더 주고싶은 마음뿐인 어머니의 마음 같아 보여서일까.
5. 권금성
설악산인 류 선생이 자리를 빈 권금성 산장에서 젊은 친구가 타주는 커피를 마신다. 갑자기 안개가 몰려와 안개비를 내리더니 산 위쪽으로는 아무 것도 볼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시간도 급하긴 했지만 큰 아이가 다 올라가지 말고 하나쯤 남겨 두고 가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고 한다. 그래, 그 남은 몫은 네 좋은 사람과 함께 하거라.
안개비를 맞으며 내려오는 길은 확실히 오를 때 보단 단조롭다.
권씨와 김씨의 옛 사연을 알고나 있는지 권금성을 덮고있던 안개가 조금씩 걷히는 것을 보면서 언제 또 이곳에 올지 모른다는 내 마음은 여전히 오를 곳을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누른 채 다시 케이블카에 몸을 싣는다.
6. 동해 남쪽 한 바닷가.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고 했던가.
헌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가 보다. 동해시 외곽의 한 바닷가, 기도원이라고 하지만 시골 교회 분위기인 교회 아래의 바닷가엔 큰 물개, 작은 물개, 장난질 치고있는 아기 고래의 모습으로 물위에 쫑긋 머리만을 드러낸 바위들이 각양의 형상으로 갖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큰 아이는 등받이까지 있는 의자처럼 생긴 바위에 기대고 앉아 제 친구들에게 엽서를 쓰고,작은아이는 여기저기 신비로운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기에 바쁘다.
전에 한 번 와봤던 곳,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천혜의 아름다운 모습이 고향처럼 다소곳한 정을 느끼게 하는 곳이고, 힘들고 복잡한 일이 얽힐 때면 문득문득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던 그리움의 곳이다.
아주 특별한 멋스러움이 있는 것은 아닌데 그냥 이곳에만 있으면 육지와 바다와 산바람과 바닷바람이 스스럼없이 서로 포옹을 하고 정겨운 입맞춤을 하는 태초의 에덴 같은 느낌을 받는 곳이다.
볼록볼록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까아만 바위들은 그대로 살아있는 모습이고, 그들은 쉬익쉬익 날기를 뽐내는 갈매기들과 장난까지 치는 것 같다.
그러나 가만히 바라보면 바위들은 무수한 생명의 보금자리처럼 보인다. 바다는 거대한 어머니가 되어 무수히 많은 유방을 내놓고 젖을 먹이고 있는 모습이다. 알맞은 따스함과 시원함으로 마음을 정갈하게 해 주는 곳, 바라보고만 있어도, 그냥 아무데나 앉아만 있어도 편안한 마음이 되는 곳,
귀가 열리고 눈이 열려 자연의 말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고, 저 속 깊은 곳에서 노니는 바다 식구들까지 환하게 볼 수 있는 곳, 이곳에 있으면 사람과 자연이 아주 아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어버릴 것 같다.
본시 사람도 자연의 일부가 아니던가.
7. 돌아오는 마음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여행과 마음을 한 바퀴 도는 여행, 어느 것이 더 긴 여행이 될까.
여행이란 사람을 피곤하게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피곤 속에서 얻는 나른한 풍요로움, 그리고 나를 바라보고, 주위를 둘러보고, 자연의 순리를 가늠해 볼 수 있게 하기에 그렇게 경주라도 하듯 떠나고들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일상이란 거역할 수 없는 특명과도 같은 것, 그 실행의 수단이나 방법이야 저마다 다를 수는 있더라도 누구보다 그 명령을 거부할 순 없으리라. 사실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그것은 단순히 원점으로 복귀하는 것이 아닌, 새롭게 변화된 모습으로 또 하나의 새로운 삶 하나를 여는 것이지 않는가.
결국 오늘의 내가 결코 어제의 나일 수 없는 것도 삶 자체가 그런 부단한 운행을 계속하는 시간의 열차이기 때문일 게다.
돌아오는 길은 다른 쪽 길을 택했다.
양양에서 한계령 쪽으로 가지 않고, 구룡령 쪽을 택한 것이다. 차창으로 손을 내밀면 내가 가야할 윗길이 손에 잡힐 듯 한데 그곳에 이르려면 270도를 회전하여 한참을 가야 하는 구불구불 오름 길, 그 거대한 산의 정상까지 그런 구불길을 얼마나 많이 올랐는지 모른다.
정상에서 바라본 산아래 모습은 우람한 체구의 시골 아낙과도 같았다. 곱지도 그렇다고 밉지도 않은 수더분한 시골 아주머니, 무성한 숲 때문에 완만한 곡선만 보일 뿐 그렇게 구불대며 힘들게 올라왔던 길조차 나무숲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산은 그 모습만으로도 산다울 수 있었다.
나는 내리막에서 더 어려움을 탄다. 등산을 할 때도 내려오는 것을 더 힘들어하고, 차를 몰 때도 내려가는 것이 훨씬 어렵다. 그렇다고 올라가는 것이 쉽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오를 때는 무리를 해서라도 용을 쓰다보면 올라갈 수가 있지만 내려가는 일은 왠지 내 힘, 내 의지와는 늘 별개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럴지도 모른다. 삶도 오를 때는 그저 오르는 데만 정신을 쏟느라 어떻게 올라갔는지 조차도 모르게 올라가지만, 일단 어느 정도 오르고 난 뒤엔 그 길들을 내려다보게 되고, 그러다가 거기서 자신의 어수룩함도 발견케 된다.
얼마나 내려왔을까?
내린천이 길게 펼쳐져 있는 계곡, 차를 대기에 좋은 한 곳을 잡아 차를 멈추고 냇가에 자리를 잡았다. 맑은 계곡 물에 손을 담그니 그 차가움이 순식간에 여름을 잊게 만든다. 모래와 모나지 않은 돌들이 평평한 분지를 이룬 곳에서 우린 준비해 간 음식을 꺼내 점심식사를 했다.
그리고 너무 차가워 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작은아이에게 보란 듯 입은 옷 채로 물 속으로 들어갔더니 생각만큼 차갑지는 않다. 아마 내려 쪼이는 햇살 덕분에 이만해진 것 같다.
휴가철이 갓 지난 후여서 인지 인적이 끊긴 계곡에서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와 풀 향기를 맡는다. 자연의 소리, 자연의 내음은 언제 들어도 싫지 않고, 언제나 향기롭다.
흘러가는 냇물이 매끄럽게 닳아진 돌을 넘으면서 햇살을 받아 현란한 빛살 총을 쏘아댄다.금빛, 은빛 어우러진 빛살의 윤무, 계곡은 무수한 은어들의 춤으로 가득하고 가끔씩 매미소리가 춤사위를 부추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시계를 본다. 짐을 꾸린다. 다시 떠나야 한다. 돌아가기 위해서 떠나야 한다.
돌아오는 것도 역시 떠나야만 있어지는 일이다.
사람은 언제가지 이런 되풀이를 하고 살아야 할까? 아니할 수도 없고, 마다할 수도 없는 것들이기에 무시하거나 모른 체도 못하니 삶은 결코 내가 사는 것만으로 내 것이 되지는 않나 보다.
돌아오는 마음은 늘 두 마음이다. 안도감과 아쉬움, 그것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상존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마다할 수는 없으리라. 이 두 마음이야말로 늘 삶 속에서 때로는 추진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제동력이 되기도 하여 삶을 균형 있고 조화롭게 해주는 것들이 아니던가.
언제나 돌아오는 길은 떠나가는 길보다는 여유로울 수 있다. 그것은 내 영역이란 생각에서다. 홈 그라운드란 이점을 안고 있기 때문일까.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어디가 홈 그라운드가 될 수 있을까?
어차피 산다는 것은 순환선 열차여행이겠고, 돌아온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조금 오래 머무는 역을 찾는 것밖에 더 되던가.
집을 나서서 돌아오기까지의 시간과 곳곳들이 과연 처음의 기대에 얼마큼 이나 만족을 주었는지는 아무래도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여야만 알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지금 내가 떠나왔던 곳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고, 그곳은 내가 떠나왔던 그때의 모습 그대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며, 그곳에 이르면 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떠나기 전과 거의 똑같은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여행이란 액체-고체-기체를 넘나들며 변화를 만날 때마다 적당히 쉼표와 느낌표를 찍어주는 것이 아닐까.
무척 피곤했던지 잠들어 있는 내 사랑하는 세 승객과 함께 나는 지금 꽤 많은 느낌표들을 싣고 돌아가고 있다. 아니 돌아오고 있다.
<1996.12. 창조문학 '96.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