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의 산책길로 들어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바쁜 일상 중에도 항상 나의 안식처로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곳. 내가 사는 동네 뒷산인데 차를 타고 지나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트래일 코스이다.

 

산에 들기 전 작은 나무다리 하나를 건너야 하는데,  나는 여기서 운동화와 양말을 벗는다. 내가 '세상의 구름다리'라고 이름 붙인 곳이다. 맨발로 구름을 밟고 건너면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여기부터는  '자연의 세계'이다. 길 양쪽으로 피어, 나를 마중 나온 들꽃과 나무들이 손을 흔들며 반겨준다.  금방 그들과 하나 되어 대화를 시작한다. 

 

"잘 있었니? 여기까지 나와 반겨주어 고맙다.  그동안 많이 자랐네! 더위에 이렇게 서 있느라 고생 많았어. 그렇지, 사는 것이 모두 쉽지는 않지, 너희들도 더위 속에서 하루 종일 수고 했는데 이제 날씨가 시원해졌으니 좀 쉬렴!"

 

발에 밟히는 흙의 부드러움을 느끼며,  심호흡을 하며 자연의 세계로 몰입한다.  나무와 마른풀들의 향기가 구수하기까지 하다. 간혹 다람쥐와 산토끼들도 뛰어나와 나를 반긴다. 새들이 지저귀고 나비와 꿀벌, 허밍버드도 덩달아  날아든다. 

 

이제는 이곳에 제법 익숙해져 어떤 나무와 꽃들이 어디에 있는지 눈을 감고도 가늠할 수 있다. 그들과 무언의 교감을 나눈다. 웃는 얼굴의 나무, 생각하는 나무, 요가하는 나무, 춤을 추는 나무, 호기심이 많은 나무, 큰 나무, 작은 나무, 그들은 서로 다른 자기만의 빛깔과 모양으로 생겨나,  사이좋게  공생하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완벽하게 조화될 수 있을까?  감탄을 연발하며 천천히 발을 옮길 때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독특한 흙과 돌들의 빛깔과 감촉도 황홀하게 만끽한다. 

 

마침내 큰 고목의 가지들이  길양쪽으로 울창하게 휘어져 아치를 만들어 주는 곳에 와닿는다. 이곳에 오면 어떤 아슴푸레한 연보라색 기운이 보일 듯 말 듯 하다.  여기는 내가 더 깊이 몸과 마음의 교감을 느끼는 곳이다. 이곳을 걸으면 마치 내 머릿속을 거쳐 내 몸 한중간을  걸어가는 기분이 든다. 한.복.판. '제로 포인트(0point)'!  '무아'의 상태를 체험하는 것 같다. 수십 년 동안 쌓인 낙엽이 푹신한 카펫처럼 깔린 곳을 밟으며,  이 신비스러운 에너지가 감지되는 곳을 거쳐 가는 동안은 성스러움을 느끼며 겸허해진다. 

 

이곳을 다 지나오면 다시 훤한 대로가 펼쳐지고 탁 트인 시야로 '누워있는 사람들' 같은 산마루들이 들어온다.  작은 개천을 건너 서낭당 같은 아름드리 고목이 있는 곳으로부터,  마주 보이는 바위 언덕을 오르면 그 정상에 '나의 바위'와 '나의 해바라기'가 기다리고 있다. 나의 분신같이 느껴지는 해바라기에  ‘안녕’ 인사하고,  그 옆에 자리한 큰 바위에 반가부좌 자세로 올라앉아 먼 산을 하염없이 바라보기 시작한다. 황혼에 불타는 신비스러운 주홍빛, 보랏빛, 수정 빛 파노라마가 펼쳐지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나를 애무해주면,  나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부러울 것 없이 넉넉하고 자유로운 '해탈 도인'이 된다.

 

땅과 하늘 사이에서 완벽한 조화를 감상한다. 풍요로운 땅과 싱그러운 나무들,  시원한 바람과 따뜻한 햇빛과 계절의 변화를 되새겨 본다.  아름다운 달빛과, 귀뚜라미 우는 소리, 밤이 오는 소리, 영롱한 별빛, 나는 이 모든 것에 동화되어 다시 걷는다.

 

오솔길에 달빛이 함박눈처럼 쏟아져 내리고, 푹푹 빠지는 달빛을 밟으며 나는 점점 깊은 숲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