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예수
헬레나 배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나는, 끊임없이 내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왔다. 그것과 함께 성장해 왔다고 할까? 어렸을 때는 어린 대로 의문이 많았었고, 반평생을 넘게 산 지금까지도 나의 머릿속 ‘상념’은 끝이 없는 듯하다.
학창 시절 기차나 버스를 탈 기회가 많았는데, 그것이 나를 어린 철학자가 되게 한 것 같다. 기차 안의 안락한 초록빛 벨벳 좌석에 앉아 커다란 유리창 밖으로 보이던 푸르른 논밭은 얼마나 풍요로웠던가? 그리고 서민들을 실어 나르느라 자주 멈추곤 하던 통학버스 안에 앉아 서울 시내 풍경을 바라보며, 그 소녀는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깨달았던가? 이제껏 참 많은 세월을 살아왔고, 마침내 ‘시간은 없는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다만 무한한 ‘지금’이 존재할 뿐.
요즈음 들어 ‘기도’하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곤 한다. 솔직히 나는 진정한 기도에 고프다. 고백하건대 사실 이제껏 참다운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다. 왠지 하느님께 온전히 마음이 모이지 않았고, 건성으로, 입술만으로 혹은 머리로만 기도해온 것 같다. 나는 그런 미적지근하고 불확실한 기도를 드리는 자신에게 이제 넌더리가 나고, 권태로워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이제까지 나는 일방적인 ‘생각’으로만 기도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사색이나 명상이었지, 기도라고 할 수 있을는지 의문스럽다. 요즈음 내가 깨달은 것은 기도란 신과의 대화이며, 신과 함께 머무는 것이며,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랑의 교감 행위라는 사실이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나에게 닥친 급급한 현실에 대하여 온갖 근심 걱정의 노예가 되어 하느님의 도우심을 수시로 청하곤 했었다. 무척 성급하고, 무례하고 경솔한 태도였다. 신중하지 못했고, 침잠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마음의 준비 자세를 갖추지 못했었다. 나는 아직도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무지몽매한 인간, 교만하고 자기중심적 인간, 바로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어찌 이제야 깨닫는단 말인가?
두어 달 전부터 하루에 한 시간 남짓 촛불을 밝히고, 고요히 신 앞에 앉아있는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어느 때는 나도 모르게 두 줄기의 뜨거운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기도 하고, 하느님께서 바로 내 앞에 혹은 내 안에 계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였다. 내가 회개하고 겸허히 자신을 비울 때 거기 치유와 위로의 은총이 빛처럼 내려오심을 실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제야 좀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보일 듯 말 듯 한 신비로운 하느님을 그려보기를 즐기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느님은 바로 우리 아버지와 같은 분이라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하느님은 언제나 나를 사랑으로, 무한한 인내로 지켜보시며 기다려주시는 분이라는 확실한 사실을, 그분의 목소리를 듣게됨으로 알게 되었다. 내가 “아버지!”하고 불렀을 때 그분은 대답하신 것이다.
연기 같고 바람 같고 사방 어디에나 다 계시는 신비로우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모습을 사모하지만, 나는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은 ‘바보’ 예수를 사랑한다. 하느님의 아들로서, 스스로 세상에 내려와 그 모든 고통을 짊어지고자 했던 그의 용기는, 사랑이 과연 무엇인지, 몸소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았던가?
나는 그의 모습을 본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 - 악마의 유혹을 단호히 이겨내던 곧은 성품을. ”행복 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산상수훈을 설하던 정열적인 영적 지도자의 모습을. 들에 핀 나리꽃과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와 모든 자연을 사랑하던 예술가 예수, 제자들과 그의 어머니께 다정다감하던 우리의 친구이며 아들이었던 인간 예수, 아픈 사람들을 어루만지며 고쳐주었던 힐러(Healer) 예수, 끝없이 용서하던 예수, 십자가의 길을 다 걸은 후,”이제 다 이루었다“ 하며 숨을 거두던 그 완전한 평화를.
만약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내려와, 한때 우리와 함께 살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이 없는 세상은 얼마나 허전했을까? ‘신약’이 없는 성경은? 한 인간이 살며 이 세상을 이 얼마나 풍요롭고 의미 있게 전환해 놓았던가? 참으로 어마어마한 한 인간의 업적이 아닌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우리는 결국 하느님의 본질과 완전히 하나가 되기를 원한다. 역설과 모순의 천재, 바보 예수, 당신은 오늘도 내 안에 갇혀 계신다. 나는 당신을 이렇게 사랑하고, 당신은 나를 그렇게 기다리는데…….
헬레나 선생님의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신앙이 부럽습니다.
그 안에서 지혜와 세상을 보는 안면목이 성숙해질 거라 확신해요.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 가장 아름다운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