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지주일 (팜 선데이) 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톨릭 축일중 하나이다. 먼 옛날,  붉은 옷의 왕자를 태운 작은 당나귀는 예루살렘 성문을 입성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나와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그분 가시는 길에 깔아드리고 야자수 입사귀를 꺾어 흔들며 평화의 왕자이며 그들의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열광하며 환영하였다. 


아침에 일어나 나도 붉은 드레스로 갈아 입고 성지 가지를 찿아 손에 들고 미사에 참례하였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드시고 계신다. 그는 빵과 포도주를 사도들에게 나눠주시며 부탁하신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네 이웃을 마치 너희 몸처럼 사랑하라! 내 양들을 잘 돌보아 주어라!" 그러나, 잠시후 예수는 병정들에게 체포되었고, 빌라도 총독에게 심판을 받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산을 오른 후 가혹한 참사를 당한다. 


이 모든 연극이 재현되는 동안 나는 2000여년 전으로 돌아가 군중의 한 사람으로 그 모든 광경을 목격하였다.  평생 묵상해온 이 구절이지만 오늘따라 내게 더 안타깝게 다가오는 것은 군중들의 거대한 무지와 편협한 마음들이 위대한 성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마침내 그를 죽였다는 사실이다. 예수가 마침내 숨을 거둔 후 천둥 번개가 치고 성전의 휘장이 찢어지는 징조가 나타나자 군중은 그제야 제정신이 들어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후회하였다.


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전 한국마켓을 잠시 들렀다. 간단히 요기할 몇가지만 사려고 들렀는데 일요일이라서인지 마켓안에 활기가 넘쳤다. 두서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만두, 굴비, 달래나물등을 장바구니에 넣은 후 김치 코너에 다달았다. 풋배추 김치가 먹음직스럽게 보여 한 병 꺼내려고 하는데 어느 한국 중년여인이 바로 그 앞에서 남미 계통의 마켓 종업원과 무언가 정답게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주 "스윗"한 여인이라 여기며 그들 틈에 간신히 작은 풋배추 김치 한병을 집은후 다시 반찬 몇가지를 담은 후 유자차 시식코너를 지나는데 방금 만났던 그 여인이 그새 거기에 와 있다. 


이번에는 유자차 시식 코너 담당 직원과 대화를 늘어지게 나누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녀의 설에 의하면 꿀이 들어간 유자차는 샐러드에 무쳐 먹으면 아주 맛있고 생강이 들어간 유자차는 고기를 잴때 조금 갈아 넣으면 육질이 부드러워 진단다. 직원보다 더 설명을 잘 하여서 잠시 누가 손님이고 직원인지 착각할 정도였다.  눈치를 보니 이 분은 만나는 사람마다 좋은 말을 해주며 나름대로 적절한 도움을 주고 있었다. 시식했던 상품이 잘 팔리면 담당 종업원의 실적과 수입도 증가한다는 사실을 들어 알고 있었는데 이 여인의 선전에 귀가 얇은 나는 그 자리에서 꿀든 유자차를 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옆에는 요쿠르트 시식 코너도 있었는데 이 아줌마는 6개 묶음 요쿠르트 $6.99 짜리가 오늘만 특별히 $2.99에 새일 한다며 그 자리에서 여러 묶음을 사들이고 있었다.내가 마침 그 옆에 있었는데 시식코너 담당 아줌마가 자기에게 주는 샘플을  "언니" 먼저 드셔야 한다며 내게 마시라고 건네 주었다. 새콤하면서 맑은 맛이 좋아 나도 또 즉흥적으로 한 묶음을 사들였다. 


이 이름모를 여인은 내가 자기 말을 잘 들어 주니 신기하고 기특해 했다. 그러다가 우리는 계산대에 나란히 서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이 아줌마가 대뜸 캐시어 아가씨 "리사"를 내게 소개시켜 주며 그녀를 잘 "부탁"한단다. 그리고는 자기 가방에서 작고 앙증맞은 색동 주머니를 꺼내 나에게 슬며시 건네 주었다. 계산대 아가씨 리사도 선물용 물티슈를 덩달아 꺼내 내게 주었다. 


순식간 이렇게 정다운 언니와 동생 인연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갑자기 줄 것이 없어 명함 한 장씩 쥐어주고 언제 차라도 한 잔씩 같이 하자고 하였다.  이름모를 여인은  자기가 요리를 쉽고 간단히 하는 법을 많이 알고 있다며 나더러 언제든지 전화하라고 하였다. 


이 여인은 내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그녀는 이웃 사랑을 아주 자연스럽게 실천하고 있었다. 이렇게 만나는 사람마다 도와주고 덕담을 해주며 서로 기분좋게 해주는 삶이 이 분에게는 이미 몸에 익어 너무나 쉬워 보였다. 서로 손잡고 사이좋게 함께 가는 세상, 이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며 수단이 아닐까하는 여운이 드는,  기분 좋은 성지 주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