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외치던 소리
헬레나 배
“너희는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해마다 대림 주일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이 성경구절을 접하게 된다. 이 구절은 바로 세례자 요한에 대한 예수님의 증언이다.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낙타털로 만든 옷을 걸친 예언자 요한과 함께 오버랩 되며 나의 뇌리에 떠오르는 또 하나의 요한이 있다.
벌써 십년도 더 된 어느 대림절 기간 이었다. 성당에서 대림절 특강이 있다하여 저녁에 특별히 시간을 내었다. 대림절은 아기예수님을 깨끗한 마음으로 영접하기 위한 각별한 준비기간이기도 하여 나는 좀 설레는 기분으로 성당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직장과 가사, 육아, 이런 것들에 메여 있던 몸은 피로하였지만 또한 ‘복음’에 목마르기도 하던 터였다.
특강은 월요일에서 금요일 닷새 예정이었고 강사는 UC BERKELEY에서 신학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던 J 신부님 이셨다. 키가 좀 작은 편이고 엘리트한 인상의 한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신부님이 나오셔서 강의를 시작하였다. 기억에 남는 것은 그가 김용택 시인의 시를 강의 중 인용하며 분위기를 감동적으로 사로잡으며 흥미롭게 진행하던 일이다.
그가 강론한 이야기들을 아직도 나는 제법 많이 기억하고 있다. 그는 대림 시기에 우리가 특히 본받아야할 대표적인 예수님의 두 제자로서 세례자 요한과 성모 마리아를 꼽았다. 사람들에게 요단강가에서 물로 세례를 베풀며 주님을 맞을 준비를 시키던 세례자 요한과, 어린 처녀로서 뜻밖의 임신을 하게 되어 감당하기 힘든 처지에서도 성부의 부르심에 온전히 “예”하고 순종한 성모 마리아의 신앙심을 부각시켰던 그의 시각이 신선하고 멋지게 느껴졌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우리도 ‘우리 각자가 본 예수’에 대하여 ‘우리의 복음’을 계속 써내려가야 할 것이라는 그의 열강은 그야말로 광야에서 외치는 요한 세자의 소리처럼 성령으로 가득 차 내게도 뜨겁게 전달되어 왔다.
휴식 시간이 되어 나는 그와 잠시 인사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대화를 하다 보니 뜻밖에 그가 나의 고향 사람이라는 것과 어린 시절 같은 성당에서 교리반을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로 확실히 기억을 못하는 것은 나는 그때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며 방학 때만 할머니가 계신 상주에 내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니 으슴푸레 어릴 적 모습이 기억나는 듯도 하였다. 아마 미사 중 복사를 맡았던 조무래기 소년 중 하나였으리라. 그가 옛날을 기억해내려는 듯 한동안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와의 만남은 그 때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불러다 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강의가 계속되던 한 주 동안 내내 행복했다. 그는 정성 들여 준비한 자료로 시공을 넘나들며 닷새에 걸쳐 열강 하였다. 마침내 강의가 다 끝나고 그가 떠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그의 본당이 있다는 새크라멘토 프리웨이 북쪽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너희는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냐?”
그의 열정적인 음성이 아직도 귓전에 울리곤 하였다. 그리고 어린 시절 뛰놀던 고향 언덕이 떠오르면 나는 감미로운 눈물을 흘렸다. 그 해 크리스마스는 왠지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나는 하연 눈밭 속에 작은 외양간이 별빛을 받고 있는 정경이 그려진 카드에다 성탄 인사를 몇 자 적어 그에게 보냈다. 그가 답장 카드를 보내왔다. 기쁘고 반가웠다. 그 안에는 화두처럼 혹은 예언처럼 짤막하게 함축된 문장이 그의 필체로 적혀 있었다. 그것이 한동안, 아니 아주 오랜 동안 나에게 비밀스런 힘이 되어 주었다.
그 때부터 나는 오래 망각하고 있던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노트북을 구입하여 매일 다시 일기를 적어가기 시작했다. 어떤 예지적인 꿈을 꾸기도 하였다. 밤이었다. 나는 빛 자체이신 어떤 분의 손을 꼭 잡고 어느 동산을 오르고 있었다. 갑자기 지하에서 샘물이 솟아나 시내를 이루며 산자락으로 흐르기 시작하였다. 그 꿈이 아직도 내 마음의 화면에 떠오르곤 한다.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혹은 은총이 나를 어디론가 몰고 가는 느낌을 받기도 하면서 내 인생에 대한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J 신부님은 마침내 소원하던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후덕한 성직자로서의 삶을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고향 친구로부터 전해 들었다. 이다음에 고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그가 있는 성당에 찾아가 고해성사를 보고 싶다. 담담하게 고백하고 싶다. 그리고 마주보며 환하게 웃고 싶다.
참 좋은 당신
김용택
어느 봄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지던 내 뒤란에
햇빛이 들이치는 기쁨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히 불러내신 당신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아,
생각만 해도
참
좋은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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