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마켓' 아저씨

 

헬레나 배

 

 그는 밸리의 터줏대감이었다. 내가 그를 처음 알게된 것은 20여 년 전, 갓 결혼하여 첫아이를 낳았을 때쯤인 것같다. 훤하고 서글서글한 모습의 사십 대 중반의 그가 서울마켓을 인수할  때쯤부터  밸리한인 사회도  성장하기 시작하여 그에게 한창 운이 따르는 것 같았다. 

 

 서울 마켓은 아담한  규모로 밸리 한인 주민들의 먹거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잘 해왔다. 마켓 앞 게시판에 한인주민들의 구인, 구직,방 렌트,개인 교수, 악기 레슨 등의 광고가 붙어있어 소통이 아쉬운 사람들에게 즉석 복덕방 구실이 되기도 한다 .

 

 눈을 감고도 서울 마켓의 진열대가 또렷이 보인다.   입구에는 항상 제철 과일이  탐스럽게 진열되어 있다. 물좋은  백도, 포도, 수박, 딸기, 황금빛 참외등이 손님을 반겨준다. 문앞에서부터 나는 과일을 골라 카트에 담기 바쁘다.

 

 채소 간을 선두로 들어선다. 배추, 무, 상추,시금치, 콩나룰, 버섯, 애호박, 풋고추, 파 등을 골라 담는다.  냉동고 문을 열면 통통한  인천할머니표 고기만두와 김치 만두, 빵가루를 골고루 잘 묻힌 냉동  돈까스가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반찬을 만들고 있던 아주머니들이 금방 만들었다며 맛있는 반찬들을 권한다. 고사리 나물 무침, 풋고추조림, 뱅어포와 북어포 구이 등은 서울 마켓의 명물이다.  질 좋은 쇠고기와 알이 꽉 찬  굴비,  담박하고 시원한 서울김치는 다른 마켓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남미계의 종업원에게 갈비,불고기와 꼬리곰탕 거리, 생선찌개 거리등 이것저것 주문하여 받아들고  마지막으로 시원한 칠성사이다 몇 병을  카트에 담고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는 계산대로 간다. 남미계 일꾼이 재빠르게 나의 카트에서 물건을 꺼내어 계산대에 올려준다.

 

 단팥빵과 곰보빵 몇 개를 더 고르며 주변에 있는 새로 나온 진귀한 물건들을 살펴본다. 아저씨가 환한 미소로 대화를 시작하신다. 아이들이 이제 몇 학년인지, 요즘 살기가 어떤지, 무엇이 맛있는지 새 정보를 주고받는다.

 

 계산을 다 마치면 아저씨가 꼭 무언가를 선물하신다. 계산대 위에 진열되어 있던 김밥과 떡 중 한 가지 골라 가지라 하신다.  오댕김밥을 좋아하는 나는주로 그것을 집기도 하지만 가끔 인절미나 약식 등을 얻어와 직장동료들과 나눠먹기도 한다.

 

 서울 마켓이 다른 대형 마켓보다 더 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 아지씨의 구수한 인정미는 대형 마켓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 아닌가?   남미계 종업원이 차에까지 따라 나와 트렁크에 물건들을 실어준다. 이쯤이면 써비스가  과히 만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밸리에 대형 마켓이 들어선 후 다른 손님들과 마찬가지로 서울 마켓을 향한 나의 발길도 점점  뜸해지기 시작했다.  서울마켓 아저씨에게 역경의 시간이 다가왔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는 절대 굴하지 않고 마켓을 그런대로 잘 유지해왔다.

 

 차차 나의 아이들이 성장하여  둥지를 떠난 후 부엌살림에 신경을 덜 쓰다 보니 점점 서울 마켓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우연히 서울마켓 아저씨가 일하시다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아직도 한창나이인데 너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매일 휴일도 없이 카운터 뒤에서 일만 하다 그렇게 갑자기 가버리셨단 말인가. 언젠가 은퇴하여 아내와 손잡고 세계여행도 하고 손주들 재롱도 보며 인생의 후반기를 즐기려는 소망이 그에게도 있지 않았겠는가.  정말 안타깝고 아쉽다. 죽음은 언제나 낯설고 충격을 동반한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 서울 마켓 아저씨가 계시던 시절, 내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그 마켓을 찾아갔을 때 그 아저씨가 그들을 귀여워하며 작은 손에 과자를  쥐여주던 그 시간은 이제 어디로 사라졌을까? 

 

 

 

 

 

 

저작자 표시컨텐츠변경비영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