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달 전 유투브를 검색하다 우연히 가수 신해철의 노래를 접하게 되었다. '일상으로의 초대'라는 노래 였는데 나즈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세련되고 매력적인 영상미에 이끌려 계속 그의 노래를 검색해 가던 중 나는 그만 충격적인 기사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가 이미 고인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매혹적인 음악 세계에 이제 막 매료되기 시작한 내게 그건 정말 실망스러웠으며 마치 친한 친구를 잃은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그가 '무한궤도'라는 록밴드를 결성하여 '대학가요제'에서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한 '그대에게'를 불러 대상을 타며 세상에 나와 가수로서 화려한 활동을 시작할 무렵 나는 제2의 인생을 시작했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어린이 프로그램 외에는 텔레비전도 전혀 보지 않고 외곬으로 가정과 직장 일에만 몰두해 있을 때라 한국 가수에게 관심을 가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우물 안 개구리처럼 보낸 내 젊은 시절이 좀 후회스럽기도 하다.
그의 노래가 요즘 계속 나의 뇌리에 맴돈다.
숨 가쁘게 살아가는 순간 속에도
우린 서로 이렇게 아쉬워하는 걸
아직 내게 남아있는 많은 날들을
그대와 둘이서 나누고 싶어요
『내가 사랑한 그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해도
그대를 포기할 수 없어요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나는 그대 숨결을 느낄 수 있어요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언제나 그대 곁에 있겠어요』
내 삶이 끝날 때까지 언제나 그댈 사랑해
(신해철 -'그대에게' 일부)
이 노래를 들으며 '그대'란 바로 '음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에게 음악은 삶, 그 자체이며 사랑이며 그의 모든 것이었으리라는 추측을 하며 19세 미소년이 '음악'의 여신에게 바치는 이 맹세의 노래는 아무리 들어도 신나고 힘이 난다.
눈을 감으면 태양의 저편에서
들려오는 멜로디 내게 속삭이지
인제 그만 일어나 어른이 될 시간이야
너 자신을 시험해 봐 길을 떠나야 해
네가 흘릴 눈물이 마법의 주문이 되어
너의 여린 마음을 자라나게 할 거야
남들이 뭐래도 네가 믿는 것들을
포기하려 하거나 움츠러들지 마!
힘이 들 땐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 앞만 보며 날아가야 해
너의 꿈을 비웃는 자는 애써 상대하지 마!
변명하려 입을 열지 마! 그저 웃어 버리는 거야
아직 시간은 남아있어 너의 날개는 펴질 거야
(신해철-'해에게서 소년에게' 일부)
마왕 신해철, 뒤늦게 그의 모든 노래를 샅샅이 찾아 들으며 그의 음악 세계에 흠뻑 도치되곤 한다. 그의 노래는 거의 모두 자신이 작사 작곡한 것 같은데 나는 그를 한국의 '밥 딜런'이라고 일컫고 싶다. 그의 심오하고 우주를 향해 절규하는 듯한 곡도 좋지만, 특히 가사들이 시적이고 또 철학적이기도 하다.
그는 과히 예술 전반적으로 조예가 깊은 둣 했다. 렘브란트를 좋아했고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소개하던 그의 모습은 격이 있었다. 그는 예술의 전당에서 '그대에게'를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스페인 가곡 '그라나다'를 열창한 후, 사랑하는 아내에게 다가가 만인이 보는 앞에서 키스하던 정열적인 오페라스타이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우리 국악에도 심취하여 그의 록밴드에 국악인들을 불러들여 협찬하는 등 새롭고 참신한 '행위예술'적 감각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따뜻한 그의 인간미다. 그는 생시 힘이 약한 자를 보호하고 그들을 대변해 주는 일을 음으로 양으로 많이 한 듯하다. 특히 '100분 토론' 등의 텔래비젼 프로그램에서 학생 체벌 폐지, 간통죄 폐지, 대마초 비범죄화 등을 자신 특유의 논리 정연한 화법으로 피력했으며 동성동본 커플들을 위해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라는 노래를 만들어 그들의 고통을 위로하기도 하였다.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 신해철-'민물장어의 꿈' 일부)
그의 록 콘서트 공연 모습을 보면 과히 마력적이다. 자신을 온전히 불태워 시간마저 멈춰버린 듯한 그의 신비스러운 음악 세계에 관객 또한 혼연일치 되어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이 감동을 준다. 그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마치 교주를 신봉하는 것만큼이나 되어 '교주', 혹은 '마왕'이라는 애칭이 그에게 붙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의 마지막 가는 길 빈소에는 수일 동안 무리의 조문객이 줄을 이어 찾아와 함께 울며 애도의 물결을 이루었다 한다. 그가 동료 연예인과 팬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두루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를 생각할 때마다 왠지 모르지만, 함께 연상되는 또 하나의 사람이 있다. 바로 고 이태석 신부님이다. 두 사람 다 음악을 몹시 좋아하고 맑은 눈과 '큰 사랑'의 소유자이긴 했지만, 또한 그들은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들이 지금 있는 세계는 어떤 곳일까?
나 이제 정녕 죽음이 그리 두렵지 않은 것은 그들 삶의 마지막 모습까지도 숨겨진 의미로 여운을 남기기 때문일까?
신해철이라는
가수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선생님의 글을 통해서 봅니다.
그저 가수로만 여기고 그의 노래를 좋아했는데
이제보니 정말 일찍 떠나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사람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