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들 / 김잠출

 

 

시나브로 시월이다. 하늘이 열린 달이고 인디언들이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 말하는 달”이다. 곧 만산홍엽을 볼 것이고 오곡백과가 무르익었다. 가지산 붉은 단풍을 쫓아 온몸을 붉게 칠한 연어 떼가 태화강을 거슬러 돌아오고 머잖아 십리대숲은 떼까마귀로 뒤덮이게 될 것이다. 거미는 세대를 이어 또 새로 집을 짓고 은행은 노랑 물을 떨구는 중이다. 으악새 슬피 우는 이 가을에도 꽃이 피니 국화와 쑥부쟁이, 구절초와 수크령과 눈맞춤하며 바뀌는 계절에 적응하는 중이다.

이달의 마지막 날엔 “잊혀진 계절”을 들어야 하고 도시의 어느 골목에선 몇몇 남자들이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린다.”며 상실감을 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남자를 슬프게 하는 계절엔 그런 노래가 안성맞춤이다. 할로윈보다 “시월의 마지막 밤”을 기다리는 세대들은 다 그렇다. 그들은 때로 “이룰 수 없는 꿈”이 생각날 때면 조금 섧거나 애달픈 마음을 갖기도 한다.

 

방송의 ‘쪼’

 

우연히 차에서 듣게 된 방송. 30년 전과 변함없는 말투가 귀에 거슬린다. 흔히 말하는 방송의 ‘쪼’가 아직도 남아있다. 쪼는 ‘어조’ ‘습관적인 말’이란 뜻이다. 방송 리포터들은 대부분 “~해보시면 어떨까요?” “~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끝맺는다. 필요없는 군더더기요 버리지 못하는 방송의 쪼다. “즐거운 주말/휴일 되시기 바랍니다.”라는 말은 이미 교과서가 되어 버린듯 이상하다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고요” “~데요”라는 이음말도 너무 잦다. “습니다” “입니다”로 단정적이고 자신 있게 말을 끝맺지 못한다. 지역방송에서흔하게 듣는 잘못된 습관들, 방송의 ‘쪼’는 장르를 불문하고 어느 프로그램에서든 넘쳐난다. 일기예보에서도 기상대의 예보를 “...내다보고 있다”로 표현하니 어색하기 그지없다. 기자들도 “보인다”를 “보여진다”, “생각한다”라고 하면 될 말을 굳이 “생각되어진다”고 말한다. “몸살을 앓다”와 “골머리를 앓고 있다.”라는 뉴스 말은 왜 그리 자주 나오는지 모르겠다. ‘골머리’는 ‘머릿골’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머릿골은 ‘뇌(腦)’, ‘두뇌(頭腦)’를 뜻하는 우리말인데, 줄여서 ‘골’, ‘골치’라고도 한다. 이 말은 ‘머리’를 낮잡아 일컫는 뜻으로도 쓰인다.

뉴스를 전하는 기자들은 습관적으로 자신의 시각이나 판단을 배제한 채 “~에 따르면”을 무한 반복하고 있다. 팩트를 중시한다느니 중립을 표방한다지만 타인에게 책임을 돌리고 나는 책임 없다는 화법으로 들린다.

스포츠 경기에서 무심코 말하는 “자웅雌雄.”도 조심해야 할 표현이다. 막상막하의 비등한 힘을 가진 상대끼리 승부를 겨루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이지만 남녀가 서로 겨룬다는 뜻으로 쓰면 매우 어색한 용례가 된다. 수컷과 암컷을 가리키는 말로 알고 있는데 원뜻은 그렇지 않다. 자웅은 본래 밤과 낮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자웅은 역(曆)에서 나온 말로 자雌는 밤을 나타내고 웅雄은 낮을 나타낸다. 낮과 밤이 서로 번갈아가면서 세상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에 비유해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양상을 나타낸 것이다.

선거가 끝나면 지역방송은 “지역 곳곳이 불법 현수막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나 행정당국은 나 몰라라 한다.”는 뉴스를 자주 전한다. 사실은 현수막懸垂幕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현懸은 ‘아래(세로)로 늘어뜨리다’라는 의미고 수垂는 수직을 말한다. 좌우로 걸거나 매다는 것을 현수막이라고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선거 현수막(?)은 대부분 가로 형태니까 좌우로 거는 건 펼침막이다. 플래카드의 우리말이다.

 

방송이 하는 말이 키스 같다면

 

‘심심(甚深)하다’(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의 의미를 놓고 문해력 저하 논란이 일었던 기억이 난다. ‘심심한 사과’의 ‘심심’을 ‘하는 일 없이 지루하고 재미없다’로 이해한 누리꾼들이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해서 생긴 일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조해 사회적 이슈로까지 번졌다.

고지식은 높은 지식이고 금일 마감이 금요일에 마감한다는 의미인줄 알거나 “무운武運을 빈다.”를 無運으로 이해하고 사흘을 3일이라고 아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MZ세대에게 국한 지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말 날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라 하겠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 여드레 아흐레 열흘 순이고 20일 간의 시간은 스무날, 다음 날은 스물하루다. 또 하루나 이틀 정도의 짧은 시간은 하루이틀이고 사흘이나 나흘 정도는 사나흘, 너(네)댓새는 나흘이나 닷새 가량을 말한다. 닷새나 엿새 정도는 대엿새라 하고 엿새와 이레를 합쳐 예니레, 일곱 날이나 여덟 날은 일여드레이다. 잘 안 쓰다 보니 생경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두어 개’는 두 개나 세 개가 아니고 ‘약 2개쯤’이나 ‘두 개 남짓’, ‘두 개 정도’를 뜻하니 정확하게 세 개에 못 미친다. 서넛은 대충 어림잡아 셋이나 넷쯤을 말하고 네댓은 어림쳐서 넷이나 다섯쯤을 가리킨다. ‘달포’는 한 달 보름이나 45일쯤, 또는 한 달 반이란 말이 아니 다.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이니 한 달 남짓인 31일에서 35일쯤이 맞는다. 한자로는 삭여 朔餘 월경月頃 월여月餘라고 하면 된다. 세대 간의 문해력 차이가 실재하는데다 생각 보다 틈이 넓고 깊어서 예를 들어 본 것이다.

고유어는 전문 방송인들도 실수하거나 잘못 말하는 경우가 흔하다. 예전에는 PD나 기자, 아나운서들의 수습 기간에 우리말 날짜 세기 훈련을 반복적으로 했는데 디지털 세대는 소홀히 여기는가 보다. 고유어는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헷갈리며 오용하기가 쉽다. 고유어나 순우리말을 많이 쓰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고유어 표현이 언제나 옳은 것도 아니다. 모든 말을 반드시 고유어로 할 필요도 없겠다. 말의 쓰임은 정확하고 명료하게 전달되고 서로 간에 소통에 지장이 없으면 그만일 터이다. 다만 일반인들의 오용도 문제지만 그 전에 방송인들의 언어와 말이 잘못된 것은 문제 삼고 지적해야 한다. 그들의 말은 국민 언어의 표준이자 교과서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요즘 방송인들은 말을 가려서 조심스럽게 하지 않는다. 신조어나 성적인 표현을 쓰는 일도 거리낌이 없다. 선섹후사, 낮져밤이, x끼란 비속어들이 자막으로 남발하고 마약OO이나 O린이, 풀빵이 아닌 풀방이란 자막도 등장한다. 민망하고 난감한 말들이다. 그들은 아마 이런 대사가 있는지 모를게다.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단어는 마치 키스 같아요.”

언제쯤 방송인들의 말이 이런 찬사에 마침맞게 완전무결해질까?

 

‘톡파원 25시’와 ‘세상의 모든 음악’

 

방송이 내게 하려고 했던 말을 쉽고 편하게 알아듣는 ‘방송’도 있다. 톡파원 25시와 세상의 모든 음악이 그것이다. 톡파원 25시는 ‘전 세계 공통된 관심사들을 해외 거주 중인 교민, 유학생 등이 직접 취재해 화상 앱을 통해 실시간으로 대화하는 스튜디오 토크 프로그램’이다. 해외 거주 교민, 유학생이나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외국인들이 특파원이 아닌 톡파원으로 다양한 곳을 전하는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젊은이들의 시각도 좋고 소개하는 장소나 내용도 신선하다. 여행은 TV로도 충분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프로그램이다.

KBS 클래식 FM 100.3MHz의 세상의 모든 음악도 색다르다. 말 많은 여느 FM과 달리 선곡도 좋고 멘트가 많지 않고 전체적으로 정갈하다. 마치 우전차를 마시는 기분이 든다. 15첩 30첩으로 상다리 휘어지게 하는 상차림보다 3첩 밥상이 더 좋을 때가 있다.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인 저녁 6시에서 8시 사이, 퇴근길에 듣는 ‘세상의 모든 음악’은 내겐 큰 위안이다. 어느 날은 클래식에 조용히 귀를 열고 어떤 날엔 크로스오버나 재즈에 심취하며 세상의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가을비가 조용히 내리던 그날엔 Don McLean의 <Vincent>가 흘러 나왔다. 추억도 추억이지만 오랜만에 제대로 된 귀호강을 했다.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린 고흐를 위해 맥클린이 만든 노래다. 노래는 “Starry, starry night”을 읊조리면서 시작된다. 중간쯤에서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을 이제 내가 이해한다”고 고백한다.

 

이러다 다 죽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TBS가 예산 절감에 나서고 출연료 삭감과 외부 진행자를 사내 아나운서로 교체하는 등 몸살을 앓고 있다. 방송독립이니 언론자유니 편파방송이니 교통 전문방송이니 아무리 말해도 돈 안 되는 방송은 존재하기 어렵다. 최근의 방송이 날개 없이 추락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있다. 최근 10년간 지상파 방송을 시청하는 가구 비율이 30~50%나 줄었다. 방송 광고 매출도 당연히 급감하니 방송사의 재정 형편이 좋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대규모 경영 적자는 필연적이다. 당연히 예산 절감, 비용 축소 등 비상경영이나 감축경영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IMF 이후 이미 수차례 경험한 우리 방송의 악순환이 떠오른다. 제작비 삭감은 돈이 안 되는 교양이나 다큐가 우선 칼질의 대상으로 이어진다. 드라마도 줄이고 재방을 최대한 많이 해 초기 비용을 보전하기도 한다. 퇴직자들이 안 나오니 신규채용도 않는다. 우리네 방송사 인력들은 정년이 될 때까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철밥통처럼 버티니 항상 구조조정을 하려해도 실패만 해 왔다. 젊은 인재들이 안 들어오니 늙고 창의력이 고갈된 창가족들이 더 많아진다. 인력구조는 늘 역피라미드나 항아리형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조직은 역동성이나 활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지역방송도 예외가 아니다. 방송국 안에 지역전문가들이 점점 사라지고 자신의 회사를 말 공장이라면서도 사내 인력을 배제한 채 서울 연예인 불러 방송을 맡긴다. 돈들여 육성한 아나운서나 기자, 피디는 뉴스 진행만 하거나 C타임에 있는 라디오 프로를 맡기고 있으니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또 위기가 닥칠 때마다 늘 원인을 외부 환경 탓으로 돌리고 자기 잘못은 모르쇠하기 일쑤다. 그러다 상황이 조금 호전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난의 시기를 금방 잊어버리고 예전으로 돌아가버린다. 발전은 커녕 변화도 없이 늘 그 자리를 맴돌다 그 자리에 서 있게 되는 셈이다. 높은 산을 등산하다가 안개나 폭풍우를 만났을 때 밤중에 방향 감각을 잃고 같은 지점을 맴도는 환상방황環狀彷徨과 다름 아니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이런 대사가 있다. “이러다 다 죽어”

 

10여년 전만해도 이사간 집의 짐을 정리할 때 TV세트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가 첫 고민이었다. TV가 자리 잡고 방향이 정해진 다음에 다른 짐들이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만큼 TV는 자석처럼 우리네 집의 중심이었고 가족을 한 곳으로 모이게 했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과거에는 한 대의 TV앞에 수십 명의 동네사람들이 모여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한 명의 시청자 앞에 수십대의 TV가 놓이기도ㅠ 한다. 네 손안에 TV가 있고 그냥 고르면 되는 시대이니 선택지는 무한대다. 심지어 내 말이 참이라고 증명하기 위해 제시하던 반증도 달라졌다. 그 때는 신문이나 TV가 가장 권위 있는 반증의 근거였는데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그거 00유튜브에서 봤다.”고 말한다. 신문 기사를 읽었다거나 방송에서 봤다고 하는 사람들이 거의 사라졌다. 방송이 그만큼 신뢰를 잃었는지 권위가 없어진 것인지 세태가 변하긴 변했다.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인구감소와 함께 지방소멸이 다가오고 있다고 진단하고 지방이 사라질 거라고 염려한다. ‘사라져 갈 지방’에 지역방송도 포함된다. 우리나라 지역방송 대부분은 위기든 호황이든 자신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결정하지 못하는 허약한 존재다. 구조적으로 독립이 어렵고 자생력이 약하다. 그러니 지방이 사라지면 지역방송도 사라질 것이라는 염려가 기우라고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지역방송이 지방소멸에 대한 대비를 얼마나 하는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제발, 유튜브를 이기든지 아니면 그냥 유튜브의 흐름에 올라타서라도 끝내 살아남았으면...하는 바람을 전한다. 이마저도 나만의 기우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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