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도배 박노욱 - 2019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수필 당선작

 

 

  귀찮기만 했던 마당을 도배하던 일이 그립다이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라 그럴까.

  마른 마당은 늘 평온하다비가 내리면 사정이 달라진다며칠을 마다하지 않는 비나 모다깃비가 쏟아지면 진흙탕이 된다비온 후 울퉁불퉁해진 마당을 삽이나 널빤지로 평평하게 고르는 일을 마당도배라고 불렀다옛날 마당은 요즘의 아파트 주차장보다는 우리 가족만의 공간인 거실과 더 가까웠다거실을 도배하듯 마당도배가 필요한 시절이었다.

  갖가지 이유로 마당은 곰보가 된다아이들의 발자국은 나무랄 수 없다들일하고 돌아온 삼촌의 리어카 바퀴자국도 어쩔 수 없다수탉이 광기를 부린 자리와 강아지나 고양이 발자국까지도 봐 줄 수 있다막걸리에 건들 취하신 아버지가 남긴 갈지자 흔적은 마음이 짠하기도 했다고삐를 하지 않은 송아지가 날뛴 자국은 더 깊게 파인다.

  비오는 날 마당은 재미가 쏠쏠하다우두커니 쳐다보아야 맛이 더 진하다몇 방울 우두둑 떨어지는 빗물에 개구리는 앞발로 세수부터하고 춤을 춘다개미한테도 맥을 못 추던 지렁이가 제 세상을 만난듯하다두꺼비는 어디에 숨어서 비를 기다렸던 모양이다논두렁에서나 보던 땅강아지도 가끔 얼굴을 내민다이들은 모두 첫 비를 즐기고 사라진다.

  미꾸라지는 빗줄기가 굵어질수록 활개를 친다미꾸라지가 비를 타고 하늘을 오르내리는 줄로 알고 있었을 때다빗줄기를 타고 승천을 시도하는 모습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의 천성이다마당에서 조금만 나가면 농수로가 있다비가 내리면 미꾸라지가 물을 타고 마당으로 올라와 하늘까지 넘보는 것이다.

  비꽃이 피어나면 마당은 바빠진다제일 먼저 어머니가 화들짝 놀라 뛰쳐나온다장독대 뚜껑을 닫고 나물 소쿠리를 처마 밑으로 옮긴다어머니의 비설거지가 끝날 때쯤마당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챙기는 옆집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모이를 쪼던 닭들도 날개를 털면서 횃대에 오른다강아지도 꼬리를 내리고 하늘을 쳐다보며 걱정을 한다거름무더기 옆에서 쇠똥을 말던 말똥구리도 자취를 감춘다채 다 말지 못한 쇠똥이 풀려 흔적이 사라질 때쯤이면 빗소리만 남는다.

  비오는 날은 성가신 일도 있다위채와 아래채를 오르내리는 일이다마당을 밟고 다니면 비를 맞고 도배거리도 늘어난다아래채 문간방에 거처하는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위채를 오갈 일이 생긴다마당 중간에 납작 돌로 된 징검다리가 놓여있지만 폭우가 쏟아지면 무용지물이다비를 피하려면 처마 밑을 이용해야 한다위채 대청마루를 내려와 부엌 앞에서 아래채 댓돌로 내려선다그 부분만큼은 하늘이 뚫어져있어 한 달음에 뛰어야한다도장과 뒤주를 지나고디딜방앗간과 외양간 앞을 거친다소여물솥 아궁이를 넘으면 사랑방 툇마루가 나온다무척이나 긴 여정 같지만 눈 감고도 다닐 정도였다.

 

  마당은 많은 일을 감당했다보리타작을 하고나면 도리깨가 콩을 두드린다벼가 고개를 숙이고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가 잦아들면 볏짚 낟가리가 쌓여 겨울을 난다무와 배추도 마당으로 옮겨진 후에야 김장독에 들어갈 채비를 마친다누나가 시집가던 날은 왕겨위에 얹힌 단술 독에서 온종일 가는 연기가 피어올랐다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은 마을 사람들이 밤새도록 장작불을 지폈다.

  마당을 가로 질러 빨랫줄이 있었다디딜방앗간 시렁과 반대쪽 돌배나무에 걸린 철사 줄이다빨래를 널 때마다 어머니는 녹을 닦아내기 위해 마른 걸레로 빨랫줄을 훔쳤다중간쯤 자리한 바지랑대는 빨래를 널고 걷을 때 높이를 조절하고 무게를 견딘다아버지의 나뭇짐이 들어오면 어머니가 부엌에서 달려 나와 장대를 들쳐 올린다웃음 반 걱정 반이던 어머니의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다할아버지 제삿날은 대문을 열고 마당을 깨끗이 쓴다깜빡하고 빨랫줄을 걷지 않으면 할머니가 서운해 했다.

  게으름을 피워도 상관없다아버지나 송아지 발자국은 제때 도배를 못해도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시간이 좀 걸리지만 땅이 마르면서 자연 도배가 된다땅따먹기 놀이판은 지워져도 쉽게 그릴 수 있다하지만 구슬치기 구멍 다섯 개는 여간 까다롭지 않다내 멋대로 구멍을 파 놓으면 친구들의 항의가 빗발친다전체적인 방향과 구멍 간 간격과 개별 구멍의 넓이를 꼼꼼히 따져야한다.

  폭우는 마당에 깊은 골을 만든다골 따라 모여든 빗물이 바다를 이룬다바다에 떠다니던 가랑잎배가 멈추면 십중팔구 대문간 옆 돌담아래 물구멍이 막힌 것이다삽이나 물괭이로 물줄기를 뚫어주면 체증이 금방 내려간다새마을운동 때 현대식이라고 콘크리트 관을 묻어 만든 골목 하수구가 50여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막히지 않는 게 신기하다마당을 지나온 빗물이 바로 땅으로 스며드는 게 아닌가 싶다땅은 많은 걸 품어준다.

  마당에는 사연도 많다여름날 저녁 할머니 무릎에는 오싹한 이야기가 많았다난리를 피해 100여일 피난을 다녀온 후란다. 6월 25일부터 서울수복인 9월 28일 전후쯤일 게다잡초가 우거져 밀림인 마당에홍시가 떨어져 박힌 게 석류 알 같더란다뱀들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고도 했다윗마을 과수원 흙더미 속에서 정체불명의 시체가 나왔는데 우리 집 마당 구석에도 흙더미가 있더란다며칠간 속병을 앓다 파 보니 옷가지와 이불이었고뒤따르던 피난민이 묻어둔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요즘은 흙바닥을 깔고 있는 마당을 보기가 어렵다그때 면서기를 하던 아저씨 집부터 시작된 콘크리트 포장이 마을에 유행을 불러왔다편리한 만큼 운치가 사라졌다잘게 부순 자갈이 깔리고강변 오리식당은 재첩껍질로 갈아입기도 했다잔디가 깔린 별장은 마당과는 분위기가 다르다다행히 우리 고향집은 아직까지 흙 마당이 살아있다.

  마당에는 그만큼이나 기억도 넓게 깔려있다기어 다니던 시절에 흙을 주어먹고 놀던 마당이고다쳐서 생채 기라도 나면 마당 한 구석의 깨끗한 흙을 찾아 발랐다오줌을 내갈기다가 삼촌에게 들켜 혼이 난 곳도동생과 티격태격하다가 꿇어 앉아 벌을 서던 곳도 눈 쌓인 마당이다말더듬이 친구가 발로 땅을 굴리며 학교에 가자고 외치고이등병 계급장을 단 첫 휴가 때 큰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던 곳도 마당이다.

  요즘도 가끔 마당도배를 한다물론 꿈속에서다높은 곳의 흙을 떠서 깊은 데를 메우고빗물을 한 삽 끼얹고 도배질을 하면 울퉁불퉁하던 흔적이 감쪽같이 사라진다며칠 햇빛을 받고 바람을 쏘이면 비 온 뒤의 굳은 땅으로 탈바꿈한다마음속의 상처도 세월에만 맡기지 말고단번에 도배질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비오는 날은 눈을 감는 버릇이 생겼다빗소리가 거세질수록 고향 마당은 더 또렷해진다아이 하나가 처마 밑에서 쏟아지는 비를 물끄러미 바라본다비가 그치자 제 키만한 삽자루를 들고 마당도배에 열중이다이윽고 구름 속에 있던 해가 모습을 드러낸다마당에서 온기가 피어오른다.​​

 

[심사평]

  전국에서 61(126)이 응모했다이 중에서 3편을 골랐다. ‘렉스씨와 함께 춤을’은 ‘렉스’라는 차를 의인화 시켜 마치 반려인양 서로 보듬으며 학원을 운영해가는 이야기로외롭고 슬프고 아플 때 차안에서 노래를 부를 때면 꿀렁꿀렁 춤을 춰주는 렉스와 평생을 같이 하겠다는 내용이다. ‘푸른 수의’는 어머니 생존 시 당신이 손수 마련해놓았다는 수의가 불현듯 생각나 빈 시골집으로 달려가 창고 다락에 있다는 수의함을 열어보니 뜻밖에도 모본단으로 지은 푸른색의 치마저고리가 아닌가이는 자식이 첫 취직해서 어머니께 해드린 옷감으로 자식이 해줘야 할 걸 대신 마련했을 거라는 생각에 오열한다는 내용이다. ‘마당도배’는 비온 후 울퉁불퉁해진 마당을 삽이나 널빤지로 평평하게 고르는 일로비온 뒤의 갖가지 사연으로 패인 마당을 도배한다는 내용이다. 색의 삼베수의가 아니고 모본단으로 된 푸른색의 치마저고리라는 점 그리고 방과 벽이 아니라 마당을 도배한다는 것이다그래서 이들의 다른 작품들을 견주어보았다그런데 ‘푸른 수의’를 쓴 최상근 씨의 다른 작품 ‘화()’는 수막새의 전설을 소개한듯하고 그 과정에서 허구(虛構)를 느낀 반면‘마당도배’를 쓴 박노욱 씨의 다른 작품인 ‘숨’은현재의 아파트 공용화단을 만들고 돌보는 갖가지 일을 재치 있는 유머를 섞어 실감나게 피력하고 있다하여 박노욱 씨의 ‘마당도배’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수준 있는 작품들이 많아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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