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기타 치며 즐겨 부르는 노래가 하나 있다. 피터, 폴 그리고 메리 트리오가 부른 ‘레몬트리’다. 레몬트리를 늘 듣다보니 나도 덩달아 좋아하게 되었다. 아무리 레몬트리가 예쁘고 꽃이 향기로워도 그 열매 레몬은 시어서 다른 과일처럼 먹을 수가 없다는 사랑도 레몬 같아 겉과 속이 다르다는 풍자적인 내용이다
-Lemon tree very pretty and the lemon flower is sweet
But the fruit of the poor lemon is impossible to eat.-
레몬은 건강식품이다. 맛은 산성이나 몸속에서는 알카리 역할을 하는 게 레몬이다. 레몬은 인도 희말랴가 원산지인 과일인데 미국으로 건너와 칼리포니아에서 잘 재배되어 퍼져나가고 있다고 검색해서 알았다. 영국 넬슨장군이 레몬을 좋아했는데 그 이유는 오랜 항해로 생긴 괴혈병을 레몬으로 치료 내지 방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레몬의 효능은 표백효과에서 시작해서 해독작용까지 광범위하다. 피부관리상 주근깨를 제거하는 표백작용은 여성들에게 그래서 인기가 대단하다. 소화불량이나 변비 등 배설 작용도 한다. 나는 따끈한 차에 꿀을 타서 마신다. 내 몸을 살살 기어오르던 감기 기운도 몸살 끼도 사라지는 게 신통하다. 풍부한 비타민 C의 함유량 때문이라고 믿어 집에는 늘 레몬이 상비약으로 준비되어 있다. 비린 생선냄새도 없애 주는 등 레몬의 애교는 끝이 없다.
지난 주말이었다. 잘 생긴 레몬트리를 만났다. 소구릅 모임이 있어 우리는 치노힐에 살고 있는 후배 집에 초대되었다. 우리 동네에서만 다섯 명, 소요시간 1시간 20분의 카 풀 질주에 일행은 쾌청한 봄날을 마구 마셔댔다. 기분 좋은 주말 오전 어느듯 우리 기분도 화창한 봄날이 되었다. 그간 심하게 변덕부린 엘니뇨 날씨에 사람들은 좀 지쳐있었다.
밝은 남향 2층 언덕 집은 뷰가 좋았다. 밝고 환한 실내는 정오의 햇살이 출렁대고 있었다. 알뜰하게 살림 잘하는 안주인의 솜씨가 한눈에 파악되었다. 집안을 두루 둘러본 나는 뒷뜨락으로 내려섰다. 잘 가꾸어진 집밖 경관도 아름다웠다. 천천히 둘러보는데 화초들은 간격도 알맞게 정원수와 과목들 사이에서 심겨져 잘 어울렸다. 그 아래 경사진 선인장 꽃밭도 이채로웠다. 네모 반듯한 뒤뜰에는 바비큐 그릴을 끼고 커다란 수영장이 벌러덩 누워 있었다. 둘러보다가 내 시선이 꽂힌 그 곳에는 훤칠한 레몬트리 한 그루가 서있었다. 수많은 레몬을 아기자기 매달은 모습은 퍽 아름다웠다. 가까이 다가가 쳐다 본 나는 가슴이 싸하니 내려앉았다. 오른쪽 한 쪽은 잘 가꿔진 정원수들과 이웃하여 팜 츄리를 선두로 쭈욱 서있는데 왼쪽 내 시선이 멎은 곳, 그 곳에는 실하게 레몬이 많이 달려 있기는 한데 이게 왠일? 아깝게도 레몬과 푸른 잎사귀들이 하얗게 병들어 있었다. 그 사이사이 성한 레몬을 골라 사진 찍었다. 안타까웠다. 손님 접대며 요리며 피아노반주 등 집안 살림을 아름답게 꾸려가는 후배 주부와는 병든 레몬트리 방치는 약간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집 손바닥 크기의 뒷 정원은 내 관할이다. 꽃을 좋아해서 나는 정원사에게 요구도 많고 물어보는 것도 많은 편이다. 짬짬이 뜰 일에 내 시간을 바친다. 남가주의 넉넉한 일조량은 꽃도 잘 피우고 과일도 잘 맺혀준다. 감나무, 사과나무, 자두나무, 레몬트리 등 우리집 과수들과 나는 친하게 지낸다. 피아노 잘치고 요리 잘하는 후배의 재능은 나에게는 없지만 정원을 잘 가꾸는 솜씨 하나는 있다. 요리보다 흙 만지기를 행복해 하는 내 시야에는 약간 병든 레몬트리가 안타까울 수 밖에 없었다. 후배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잘 정돈된 아름다운 정원에 흠집 같다 좀 어울리지 않는 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정원사에게 지시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주부의 관심 밖에 있는 그 레몬트리 병이 더 번지지 않고 치료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레몬을 따왔다. 후배남편은 필요한 사람들 가져가라며 네 자루나 현관문 앞에 놓았다. 모두가 탐스럽게 노랗게 익어있는 것들이었다. 내가 아까 살펴본 하얗게 병든 레몬이 아니었다. 성한 쪽에서 땄나 싶었다. 얼핏 스친 내 생각의 경솔함, 내 짐작이 미안해 졌다. 후배 남편의 설명을 듣고 보니 레몬트리가 병이 든 게 아니었다. 우리의 방문을 귀히 여겨 페티오를 페인트 했는데 덮개를 씨우지 않아 페인트가 날아가 레몬트리가 하얗게 페인트를 뒤집어 쓴 흔적이었다. 어머나! 휴우! 후배를 내 잣대로 그릇 판단하고 잰 내 속단이 그만 부끄러워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다. 마침 흘러나오는 ‘Lemon tree very pretty .... impossible to eat.’ 레몬트리가 기어이 잊고 싶은 사건 하나 떠올려주었다. 겉과 속이 달라 먹을 수 없는 레몬 같은 사람을 만난 경험, 그게 지난해 9월 16일의 일이었다. 우리의 노후를 책임져 준다는 조카의 설득이 그날 백지라는 것으로 탄로 났던 것이다. 파산이란 커다란 아가리가 삼켜버렸던 것이다. 그 상흔이 깊었었다.
3월말 그 주말에 만난 레몬트리, 푸른 생명색깔이 짙어가는 부활 절기에 만난, 천만다행으로 겉만 페인트칠을 당한 레몬트리, 많은 것을 생각게 한 상큼한 레몬트리 와의 만남은 내 삶을 재정비, 그리고 내 기억에 오래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