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풀로 오는 봄

 

네번 반을 돌면 1 마일이 되는 윌슨 공원에  산책을 나간다. 연초부터 건강우선 'Health is above wealth'이란 기치를 걸고 마음 단단히 먹고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라인댄스가 좋겠다는 친구의 권고가 있었지만 각가지 나무들이 우거진 윌슨공원은 지척에서 늘 팔 벌리고 반겨준다. 동네 친구 문안 겸 만나서 안부를 주고 받는다. 아침 산책은 기지게를 키는 몸 구석구석 세포의 모닝콜을 받는다. 초록잔디에 물들었다 털고 나온 나의 안색도 초록에 젖어있다. 기분이 상쾌하다. 움추리게 하는 겨울이 물러간게 여간 고맙지가 않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따스한 봄이 오는 건 반가운 일이다. 추운 겨울날 어깨를 웅크리고 다녔다.  날씨가 화창 해 지니깐 마음부터 저절로 환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혈액순환도 잘되고 걷고 나면 물맛도 좋고 밥맛도 좋아진다. 눈동자 굴리는 운동 번갈아 하면서 걸으니 일거약득, 그저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길 듯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걷기를 끝내고 찡해진 나는 오늘 아침은 뒷뜰 손질에 시간을 바치기로 마음 먹는다. 문득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린다. 손바닥 크기의 우리집 뒷뜰은 동네 날개 가족들에게는  인기가 없을 것이다. 우거진 풀섭이나 나무들이 별로 없는 터라 찾아온 방문객 새(鳥)손님, 플르메리아(Plumeria) 낮은 나무 가지 위에 정신없이 우지지고 있는 모습이 반가울 수밖에. 여러번 봤지만 신기한 새소리를 귀담아 듣기는 처음이다. 봄이 배경이 되니깐 내 마음도 후해지나보다.  느긋한 시선이 핏발을 몰아낸다. 이곳에 날아들어 파르르 떠는 날개짓과 고운 노래 소리는 이 아침 나를 들뜨게 해주는 행복 한 보시기였다.

 

가지 끝이 하늘과 입맞춤을 했나, 어느새 꽃망울이 부풀어 있다. 산책을 나가는 남쪽 게이트 쪽 길목에도 오동통한 꽃방울들이 얼굴 내밀고 있다. 보송보송 움트고 싹돋는 봄의 표정이 손녀 뺨 같다. 날씨는 아직도 약간 쌀쌀 맞은데 뿌리는 어느 새 갈아입힐 연초록을 준비하고 있었구나! 주위는 밝고 희망차 보인다. 아름답다. 김 솟듯 물오르는 생명이 솟구치고 있다.

 

우리 집 남향 베이윈도에 놓인 26개의 미짓(Midget) 오킷 화분 위에 봄은 무더기로 쏟아지고 있다. 투명한 햇살은 자그만 체구의 화분들에게 빛 화살, 겨냥하기만 하면 명중, 잎파리 푸른 혈맥 과녁에 닿자마자 싱싱하게 쑥쑥 자라게 한다. 사랑의 교감이 이루어진다. 그 가녀린 몽우리들이 햇볕에 가슴 맞대고 겁 없이 기세 좋게 만삭에 다가가고 있는 광합성 모습이 나를 눈부시게 한다. 만개는 시간문제다. 목젖 내놓고 활짝 웃을 웃음들이 올망졸망 예쁘게 앙증스레 매달려 있다.  파안대소의 그날을 나는 기다리고 있다. 설레임과 기대 그 자체이다.

 

그 매섭고 영원 할 것만 같던 겨울날을 걷어 내는 저 힘, 잊지 않고 새로운 봄을 또 다시 뿌려주고 있는 저 힘은 솔로 운전이 아니다. 땅을 깨워, 동면을 깨워 흙, 새, 오리, 다람쥐, 개미, 거미, 지렁이, 민달팽이, 보이지 않지만 바람도, 하늘도, 구름도, 비도, 지나가는 오파섬의 느린동작 까지도 탑승시킨 봄은 분명 융숭한 초대형 합승 운전자다.

 

햇빛을, 캄캄한 밤을, 물렁한 흙, 짧고 긴 바람과 구름을 싣고 카풀로 달려오는 봄의 두근두근 가슴을 보라! 전들 오죽이나 조심하며 준비했으랴! 수줍은 듯 서두르지 않고  정확하게 성공적으로 계절 고속도로 진출이 가능한 것은  바로 동업하는 우주 질서와 좋은 관계 - 이 기막힌 깨우침이 이 아침 나를 감동으로 떨게했다.  나 역시 두꺼운 불만의 겨울을 벗고 몇 개 안 남을 수도 있는 봄에 승차하여 나눔과 감사의 카풀로 남겨진 ‘좋은 관계’ 를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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