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y Window

  • 배이 윈도와 바다

     

    새로 이사 온 집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향이 남향이다. 부엌과 거실, 또 안방 침실이 다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어 볕이 하루 종일 머물다 간다. 집 구조는 취향에 따라 편리하게 고치는 게 가능하지만 고칠 수 없는 게 향이다. 그 남향 부엌에는 커다란 베이윈도가 붙어있다. 마치 막달 임산부의 부풀어 오른 배처럼 돌출된 창틀은 남쪽 한 면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다. 집은 이 주택단지 안쪽 조용한 구석에 위치해 있고 현관이 동향이니 아침에도 밝고 온종일 통풍이 잘되는 터라 집에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져 꼭 산장에 온 느낌이 든다.

     

    주부가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이 집 부엌공간은 한 복판에 있어 하루 종일 왔다 갔다 하는 주부의 노동량을 줄여준다. 햇볕이 많이 머무는 이 부엌에 서서 수돗물에 손을 담그면서 처다 보는 파아란 남가주의 하늘은 축복처럼 투명하다. 강 언덕에 누워 쳐다 본 어릴 적 고향 하늘, 답답해지고 탁해진 어른의 가슴 한 구석을 늘 시원하게 해준다. 작은 행복 한 줌 아닌가.

     

    아이들은 커서 집을 떠나고 이제 단출한 단둘의 생활이다. 활동반경이 그만큼 줄고 여러모로 부담감이 절감되는 이 동네는 시니어 맞춤형 동네 같다. 몇 년 전 이곳으로 주거지를 옮길 때 남편에겐 갈등이 없잖아 좀 있었다. 우리가 살던 산 중턱의 그 집은 180도로 펼쳐진 바다를 눈 아래 둔 거만한 집이었다. 우리가 집을 보러 간 그날따라 청명한 날씨가 확 트인 바다 경치를 남편의 마음에 몽땅 쏟아 부었다. 매료된 남편은 집은 고쳐도 경치는 못고친다며 그만 그 집을 사고 말았다.

     

    남편의 바다, 남편이 좋아하는 바다는 바람이 센 날의 흰 거품을 문 큰 물결이랑이었다. 남편은 특히 그 장엄한 일몰을 사랑했고 망원경에 의존하여 먼 경치를 끌어다 보기를 즐겼다. 그 영상을 카메라에 담기를 좋아해 혼자보기 아까워 친구들을 초대해서 자기 소유인양 일몰의 타는 해를 나누어 주기도 했다. 나는 안개를 뚫고 수천만 갈래로 빛을 투망하며 솟아오르는 해를 사랑했고 그 걸러진 아침 해 아래서 정원 손질하기를 즐겼다. 더욱 아침나절의 반짝이는 잔물결의 바다수면을 나는 무척 사랑했다. 일년 열두달 매일 다른 표정으로 거기 있는 바다, 무쌍한 변화를 수심 깊이 감추고 속은 타지만 겉으로 내색 않는 어머니가 거기에도 있었다.

     

    이 집에 와서도 바다는 멀어진 게 아니었다. 바라보기 아름다운 남편의 바다는 토런스 길 끝 서쪽에 확실하게 위치해 있다. 이처럼 곁에 가까이 있는 우리의 바다는 항상 가득 차 있으면서도 뽐내지 않는다. 빗물, 흙탕물, 개울물, 구정물 등 너그럽게 다 받아드린다. 본연의 푸른색과 짠맛을 고수하는 바다의 품성에서 배우는 게 많다. 바다와 이웃해서 살면서 얻은 분명한 큰 이득 하나 있다. 좁아터진 우리 가슴이 바다를 닮아 이해의 폭이 넓어져 부부싸움이 줄어든 것이다.

     

    남편이 그토록 좋아하는 오션 뷰(ocean view)를 포기하고 이사를 결정한 또 다른 이유는 잦은 해외 출장으로 집을 비울 때가 많아 남편은 게이트 있는 이 동네가 안심이 되는 눈치였다. 남편 사무실도 더 가까워 졌고 무엇보다도 이웃 교회도 지척에, 산책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공원도 길만 건너면 있어 금상첨화 격으로 좋았다. 세상만사에 때가 있듯이 우리도 이사할 때를 잘 잡은 것 같았다. 버리고 비워야 할 때를, 결과적으로 비우고 떠나는 연습, 이사는 스승이었다. 많이 버렸다. 버리기 힘든 것이 이삿짐 보따리라기보다 실은 내 욕심 보따리였다. 홀가분하게 떠나온 이곳은 언덕이 없어 참으로 편하다. 일상이 필요로 하는 크고 작은 업소들이 5분 거리에 있다. 시내 나가는 운전 거리도 짧아지고 시간도 절약되니 경제적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댜.

     

    어느 날 나는 이 경제적인 동네에 바다를 모셔왔다. 바로 우리집 베이윈도 안에 바다를, 세일 보트가 떠있는 스테인 그라스(Stained Glass) 바다를, 빛이 투사될 때의 그 바다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직사각형의 화병인데 아주 정교했다. 내 손발은 부엌바닥을 딛고 있지만 강열한 색깔의 돛 단 세일보트는 나를 데리고 세계를 항해 한다. 오대양을 넘나들기도 한다. 상상은  늘 신나는 일이었다.

     

    배이 윈도는 커다란 공간을 가지고 있지만 더 소유하려고 욕심 부리지 않는다. 배이 윈도는 부엌안과 바깥을 구분 지으면서 동시에 두 개의 내부세계와 외부세계를 평화롭게 다 공유하고 있다. 자신의 시계(視界)를 뽐 낼 줄 모른다. 실체의 크기를 능가하는 시계는 생선 눈알처럼 툭 나와 270도나 넓게 세상을 보는 안목기능이 있다. 먼지나 얼룩, 더러우면 그대로 투영해 준다. 세계경관의 내용물을 가슴에 안고 있는 배이 윈도, 그 앞에 서면 그 철저한 정직성과 정확성 앞에 나는 부끄러워진다. 그 많은 사연들을 품으면서도 자만하지 않고 침묵하는 배이 윈도의 마음을 닮고 싶어진다. 오늘 더욱 그렇다.

     

    지금은 오후, 여린 햇살이 더 소중하다. 수평선 가까운 해는 더 찬란하다. 남은 정열을 다하여 마지막 순간을 붉게 태운다. 그 장엄한 산화의 꿈, 세월 파도를 넘어오면서 우린 가진 게 너무 많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욕심 보따리가 너무 크다고 찔러댄다. 큰 바다를 거느린 작은 베이윈도의 투명성이 오늘도 세상의 어두운 골목을 내다보게 한다. 푸른 수면을 내려다보는 더 푸른 하늘 송전탑이 저 위에 있다. 상처 입고 소외된 이웃의 신음소리를 듣도록 내 영혼의 배이 윈도 안팎으로 전파를 보내오고 있다. 그 푸른 파장에 내 목숨이 파르르 떨며 이렇게 타오른다. (퇴 6/21/2016)

     

     

    *Bay Window는 큰 유리 한 장의 앞면이 정면이고, 천장과 양 옆 아래 작은 이중 망사 유리문으로 되어 통풍의 기능도 있다. 붙박이식 유리 온실 같아 화초들이 잘 자라는 창틀로 부엌의 면적을 넓히는 건축학적 이점이 있다. 무, 호박, 바나나도 말리고 감을 말려 곶감을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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