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명가가 따로 있나요
아들은 두산이고 딸은 녹담이다. 필링 굿(Feeling Good)이란 의류업체의 백사장 댁 자녀들 이름이다. 그 때 퍽이나 신선하게 다가온 이름이어서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학교에서는 해가 둘, 바위처럼 튼튼한 댐으로 불러지니 대박 이름이 아닌가!(Two Sun, Rock Dam). 백두산과 백록담을 오가는 통일의 그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는 아버지 백사장, 그래서 자녀들 이름을 두산과 록담으로 지어준 그 아버지 그 마음을 짚어본다. 아버지 마음 하면 잊혀지지 않는 이름 또 하나 있다. 바로 피종진 교수댁의 딸아이 이름이다, ‘어라’다. 피어라, 삼천리 방방곡곡에 무궁화야 피어라, 퍽 아름다운 작명의 지혜가 아닌가.
어느 날 남편의 후배 권유로 우리는 은행 주주가 되었다. 이래저래 주식에 눈을 떠 신문도 보게 되고 관심을 가지면서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어느 날 그 은행의 한국어 이름을 공모한다는 의뢰가 왔다. 갑자기 서울을 다녀와야 하는 일이 생겨 비행기 안에서 조차 계속 은행 이름 짓기에 골몰 해 있었고 예기치 않게 일정이 늦추어졌던 일이 그 해 유월에 있었다.
'으뜸은행'이라 일단 하나 지어놓고 '뜸' 영어표기가 어려울 것 같아 다른 이름을 골똘하게 계속 찾아 헤매던 서울 여행길이었다. 돌아온 후 결과가 궁금했다. 급히 떠나느라 여행 스케줄을 안 알렸고 출타중인 나와는 연락이 안 되었을 터이니 무책임한 사람이 되고 만 기분이 들었다. 안착 후 그래도 은행이름이 궁금해 문의한 나에게 '오픈은행'이란 이름으로 상정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오픈은행' 첫 느낌은 참으로 편한 이름이었다. 외래어가 모국어화 된 이해가 쉽고 낯익은 이중 언어 중의 하나였다. 낯설고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대단한 친화력으로 다가온 이름이었다. 내 머리에서 나오지는 않았지만 '오픈'이란 이름은 부르기 좋고 쉬운 이름이었다. 문턱이 높지 않다는 인상을 풍기며 친근감으로 다가왔다.
다문화 사회에서 은행이름도 세계화 물결을 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와 나 우리 모두의 은행, 타민족에게도 열림이 가능한 윈윈 상생의 '오픈 은행' 그런 발 돋음을 기대해도 좋을 성 싶었다. '오픈 은행'은 그 먼 이민정착 길을 행복하게 가려는 신용과 신뢰를 바탕으로 삼는 최선 노력의 큰 미래이다. 이름처럼 모두에게 열려있는 오픈은행, 불황을 저 멀리 쫒고 탄탄한 새로운 주역의 은행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내 마음은 온통 초록빛이다.
떡국 먹고 큰집에 세배하는 설이 되면 온 집안 가족이 다 모인다. 지난 설에는 그동안 서울 가서 선교하던 조카사위가 이곳 사랑의 교회에 부임해 와 반가운 만남을 누렸다. 아들 셋을 두었는데 이름이 너무 신선했다. 두 살 터울로 큰 녀석이 중 삼, 중 일, 그리고 막내가 초등생이다. 두 살 터울로 아들 셋을 낳을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름이 대한, 민국, 필승이다!
배우 송일국씨의 세쌍둥이 이름을 세상이 다 알고 있다. 대한, 민국, 만세는 축복받은 이름임에 틀림없다. 세쌍둥이 이름은 한꺼번에 즉석 작명이 가능했으니 훨씬 쉽지 않았겠나 싶다. 오픈은행도 좋고 애국적 이름 필승도 좋고 만세도 좋다. 의미가 참 희망적이다. 미래지향적이다. 가슴이 시원해지는 이름이다. 이름처럼 이름답게 무럭무럭 잘 성장해 주기 바라는 마음이다.
같이 문학의 길을 가는 선배가 계시다. 강선생님은 늘 박학하신데도 내색 잘 안하신다. 편안한 인상도 그렇지만 그의 시도 그렇다. 쉬고 싶고 기대고 싶어지는 시를 쓰는 시인이다. 그 강 시인님의 이름 때문일까? 강 언덕! 얼마나 낭만적 이름인가. 낙동강을 내려다보며 소나무 그늘의 강 언덕에서 뛰놀던 내 유년이 떠오른다. 강 언덕 시인, 언젠가 그 두 내외분을 서울 가는 좁은 비행기 안에서 뵙고 무척 반가웠던 기억이 있다. 그의 목소리도 우렁차다. 문학의 강이 흐르는 시 언덕에서 절창의 그의 노래를 듣고 싶다. 눈감고 그의 시 낭송도 듣고 싶다, 요즈음 같이 감성이 메말라있는 즈음에.
햇빛 부신 푸른 하늘에 시선을 돌린다. 문득 큰 아들 이름이 떠오른다. 재우(載祐)다. 실어서 운반하는 재載, 신의 도움, 행복이란 우祐이다. 지금 아들은 신의 도움과 행복을 어깨에다 메고 등에다 짊어지고 실어 운반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늘마음을 땅에다 실어 나르는 사역 말이다. 이 세상에 선천적 작명가는 바로 부모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