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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곳은 망설임 없이 나를 주워 담아 간수하였다. 열둘이 정상인데 적혈구 수치가 일곱이었던 때 였다. 어지러웠다. 흩어지고 쫄아든 자의식, 식욕과 의욕이 사라진 게 그 무렵이었다. 그 통로 끝에 서울방문 동창회가 팔 벌리고 있었던 것은 행운의 비상구였다.

 

-남도의 봄, 산사 순례 안에 가득찬 그대 표정, 음성과 미소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재미있게 짠 프로그램과 아마추어 사진작가들 행보

비우면서 가득 채우는 빛이 그리는 그림

몰두하고 침묵하고 경청하는 마음들

순간 포착, 가슴이 떨리듯 지금도 푸르게 들려온다.

 

내 가슴은 바탕화면

멎는 곳 마다 꽃 그림

흩날리던 꽃잎 마다 글썽이는 그리움

다산의 시 주사(走寫)한 유홍준 교수의 <부채선물>

가보로 품는다

부채처럼 열고 열리는 그대와 나의 세상

거울동네인가

웃음도 고마움도 옛정도 맑게 비추어

섬진강 따라 유유히 흐르며 따라오며 손 흔드는 남도의 봄

대화와 미소, 그리움과 정보, 음악이 버무려져

클릭 속도 하나가 땅 끝을 불러오면 고국의 산하가 펼쳐진다

장사익의 꽃구경은 내 가슴 절정을 날아오르고 있다.-

 

때 남도 그 곳에는 꽃비가 길을 적시고 있었다. 가슴은 마냥 젖어들고 첫사랑의 고별이 눈물처럼 내렸다. 청정하천 섬진강변 벚꽃은 대책이 없이 가슴 저미며 극치의 아름다움을 흩날려 보내고 있었다. 그 아낌없는 남도여행의 그 꽃길 정상에서 지고의 아름다움을 찾았고 쉼을 찾았고 나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으뜸 축복이었다.

 

도착 후 지난주에는 안산병원에 입원하는 등 가족들을 놀라게 한 작은 동요가 있었다. 행사에 편승한 서울입성은 잘 내린 결단인지 약간 위기감이 있었다. 애정 담긴 선물과 기념품, 여러 친구들의 정성어린 대접과 대화, 워커힐 초대며 위로가 줄을 이었고 그 후덕한 마음을 잊을 수가 없었다. 가슴 짠하게 고마움에 푹 안겼다.

 

크림트(Gustav Klimt)전시회가 예술의 전당 가람에서 열리고 있었다. 3주 서울 체재기간의 보너스였다. 예술에 조예가 깊은 마침 제주에 사는 친구 동연이와 함께 알리오(Aglio)와 작별하고 의기투합하여 벼르고 벼르던 크림트를 만나러 가던 날은 소풍가는 초등학생이었다. 에곤 쉴레(Egon Shile)와 더불어 파격적인 관능미의 화가이기에 기대가 컸다. 아시아에서는 첫 전시회라 110여점 국내 최초 벨베데레 미술관을 옮겨온 느낌이 들 정도였다. 황금빛 <키스>를 만난 서울의 봄은 남도 여행의 연장이었고 키스처럼 무르익어 갔다.

 

-눈을 감고 기다림에 맡긴 여자는 꽃밭에 서있다.

남자의 두 손에 잡혀 남자의 마른 입술이 뺨에 닿아있고 남자의 목에 팔을 둘러 매달린 여자, 온 몸을 던져 기다림에, 그 여자의 기대의 세계는 점점 넓어져 가는 듯 가장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키스>, 여인의 내면에 잠재되어있는 모호한 심리, 에로티시즘을 유발하는 여자가 하필이면 만발한 꽃을 밟고 서있다. 낯선 어딘가를 헤매는 느낌의 그 여자가 서있는 곳이 꽃이 흐드러지게 핀 꽃밭이라니. 우리가 방금 다녀온 촉석루의 자목련, 그 아래 꽃마을 같은- 그 때 그 곳은.

 

한 번도 결혼 않고 13명의 자녀를 둔 그의 생애는 자유분방했다. 예술적 특유의 감성으로 용감하게 시대를 재해석한 황금빛 유혹에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56세에 폐렴으로 사망한 그의 작품세계는 그가 즐겨 입던 특유의 헐렁한 작업복처럼 세상을 관능미로 숨 멎게 만들었다. 그는 자화상이 없다. 여인상과 풍경화가 그의 작업 행로였다. 여성 이미지를 통해 현실과 환영의 성공적 융화예술 토탈아트에의 공헌은 팜므파탈이라는 문학적 개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그 나름의 응용미술이었다. 그리하여 총체적 예술 화면에 화려한 금색으로 표현한 사랑의 주제가 현대인을 숨 멎게 하는 비밀스런 감동의 바탕이었다. 바로 파격적인 색체의 마술사, 에로티즘의 예술적 승화를 이뤄낸 사랑의 화가로 지금 가장 사랑받는 작가로 우뚝 서 있다. 그 당시 에로티즘은 이중적 잣대로 경멸의 대상이었으나 클림트의 작품에서는 예술적 힘과 섬세 현란한 색체로 승화되어 있었다.

 

향토음식에 달아오른 나의 미각은 그 여자처럼 늘 기다림에 있었다. 황금빛 <키스>의 꽃밭을 섭렵한 소중한 사연, 섬진강 남도 꽃길은 큰 위안이었고 다시 일어설 힘, 바로 <황금빛 키스>로 달려가는 국경과 언어를 초월한 초대장이었다. 그 때 그 곳은 입맛 까지 되돌려주었다.

 

잊을 수 없는 만남이었다. 옛 이야기 꽃피우며 밤잠을 설친 우리들의 사랑, 바람이 불면 서로 일으켜 세워 향기로운 인생의 꽃밭을 거닐 수 있도록 한 배려는 학연의 축복이었다. 조금도 지치지 않고 지속적인 에너지 보급은 하늘과 바람, 산사의 고요와 초록 천기를 마시게 해준 나에게는 명약이었다.

 

햇볕이, 초록 바람이, 클림트가 나를 향해 윙크를 보내온다.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정겨운 얼굴들, 그 표정들, 그 목소리 하나하나 '그 때 그 곳은' 흐리게 퇴색할 뻔한 기억들을 살려내고 나를 세울 것이다, 내가 숨쉬며 살아가는 동안 쭉-.

            6-17-2016 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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