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문학] 코로나가 다 망쳤다 ...신순희

꽃이 피는 줄도 몰랐다.

 

지난 12월부터 준비해 온 한국 여행이 무산됐다. 그렇게 될 때까지 얼마나 고민했는지 입술이 다 부풀어 올랐다. 어렵게 날짜를 맞추고 계획해서 올  2월 말 여행을 잡았다. 거기에 맞춰 가져갈 선물도 준비하고 관광 계획도 짰다. 오랜만에 일상을 떠날 생각을 하니 옆구리에 날개가 돋았다.


새해부터 강타한 코로나가 다 망쳤다. 1월이 지나고 2월이 되면서 자꾸 이상한 소식이 들렸다. 중국 우한 지방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한에 있는 야생동물을 거래하는 시장에 있는 박쥐가 원인이라는 말이 돌았다. 아니, 왜 그 어둡고 음습한 박쥐를 먹어? 날개 빼면 먹을 것도 없겠던데. 사람들 먹는 거 탐하다 망하겠다.


급기야 한국까지 퍼졌다는 뉴스가 들렸다. 혹자는 말했다. 별거 아니라고, 그냥 감기 같은 거라고, 독감보다 치사율이 낮다고. 여행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내가 너무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걸까? 여행 날짜가 다가올수록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별문제없다는 주위 말이 들리면 갈까 하다, 다시 흉흉한 소식을 들으면 말아야지 하고. 아, 어떻게 할까?


그동안 변해버린 서울 거리를 처음 방문하는 것처럼 온전히 이방인 되어 다니고 싶었다. 호텔 예약을 하고 친지 집에 머물지 않으리.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 보고 그동안 방송에서 본 길거리 음식을 마음대로 먹으리. 통인시장에 가서 엽전 내고 물건을 사고 북촌 한옥마을에도 가봐야지. 옆구리는 자꾸 들썩이는데 들리는 소식은 부정적이다.


점차 퍼지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두려움이 생겨 호텔로 가지 않기로 했다. 동생 집에 거주하면 안전하겠지. 마스크 쓰고 여행해야 한다는 게 맘에 걸리지만 그만큼 시간 내기 힘들기에 강행하기로 했다. 여행 가방을 내놓고 미리 준비물을 챙기기 시작했다. 휴대폰 충전기를 연결할 220V 콘센트를 찾아 넣었다. 마지막으로 동생과 통화했다. 전해오는 소식은 또다시 나를 불안하게 했다. 안 되겠다. 스트레스받으며 여행할 필요 없다. 다 욕심이다.


결국 비행기 예약을 취소했다.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하루 이틀이 지나더니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다. 신천지라는 종교 단체에 속한 신도들이 대구 지역은 물론 여기저기서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게다가 신천지 일부 신도들이 우한에도 갔었다고 한다. 손가락으로 세던 한국의 확진자 수가 급격히 치솟았다. 안 가길 잘했다, 정말 잘했다. 겨우 다녀왔다 하더라도 온 날로부터 적어도 14일은 자가격리해야 한다니 주변에서 눈총받을 뻔했다. 안심하면서도 한숨이 나왔다.


세상에 안전지대는 없다. 이젠 시애틀이다. 실감 난다. 한국 대구를 다녀온 시애틀 사람이 확진판정을 받았다는 뉴스가 나왔다. 여행을 준비하며 코로나와 맞닥뜨렸고 그때부터 알아본 마스크는 지금까지 사지 못했다. 사실 동생은 시애틀로  그 귀한 kf94 마스크를 두 장 우편으로 부쳐주었다. 비행기 안에서 이거 쓰고 오라는 편지와 함께. 그때까진 한국이 심각하긴 하지만, 조심하면 될 것 같았다.


달나라에 가고 복제인간을 만들면 뭐하나. 바이러스 하나에 세상이 벌벌 떠는데. 그동안 사람들 자만에 빠져 너무 잘난 척한 건 아닐까. 학자들은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새로운 바이러스가 등장할 거라고 예견한다. 인간이 정체 모를 세균에 당하지 않고 이겨내려면, 로봇 만드는 일보다 지구를 지키는 일이 우선 아닐까.


코로나는 점점 가까이 오고 있다. 텔레비전에 누군가 나와서 마스크 쓰지 말라고 한다. 의료진 쓸 것도 모자란다며 손을 깨끗이 씻을 것을 요구한다. 너무 손을 씻어 피부가 거칠어지고 있다. 시애틀은 생필품 사재기에 빠졌다. 나도 화장지와 물을 샀다. 더 사둘 걸 그랬나, 이걸로는 얼마 버티지 못할 텐데. 또 물욕이 고개를 든다. 그나저나 마스크는 어디에 있는 걸까?


이런 걱정 하느라 창밖에 봄이 오는 줄도 몰랐다. 꽃이 피는 줄도 몰랐다.

          http://www.joyseattle.com/news/40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