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아버지의 일생-
신순희
아버지의 시계는 동그란 얼굴이 투명한, 태엽을 감는 은빛이었다. 아라비아 숫자가 뚜렷한 푸르스름한 점이 새겨진 야광이다. 차가운 촉감의 은색 줄은 하나씩 연결되어 탄력이 있다. 아버지는 왼쪽 손목에 늘 시계를 찼다. 그 시계 안에 하루를 가두었다.
아버지는 아침에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가볍게 물기를 탁탁 털어낸 숱 많은 머리카락을 포마드를 발라 빗었다. 그리고 익숙하게 손목시계를 찼다. 책상반에 홀로 앉아 은수저로 국을 먼저 뜨면서 아침을 시작했다. 숭늉으로 입가심을 마치면 변소에 오래 앉아 속을 비웠다. 하루종일 일터를 지켜야 하는 아버지의 발가락은 무좀에서 벗어나지 못해 허옇게 껍질이 일어났다. 그래도 구두를 벗을 수는 없었다. 한여름 더위에 남방셔츠를 입는 것을 빼고는 언제나 양복 상의를 입었다. 겨울에는 긴 코트에 중절모를 써 큰 키가 두드러졌다. 그 뒷모습에 그늘이 졌다. 아버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가게에 나갔다. 아버지의 시계는 정확했다.
아버지는 퇴근 후 비로소 시계를 손목에서 풀어 텔레비전 옆에 두었다. 늦은 저녁상을 혼자 받았다. 때때로 소주 한잔을 곁들여 피로를 풀었다. 어쩌다 외아들과 겸상을 해도 둘 다 별 말이 없다. 저녁이 끝나면 안방 한쪽 벽 꼭대기에 둥근 쟁반만한 시계에 밥을 주었다. 하루를 거르면 시곗바늘은 움직이지 않았다. 태엽을 감는 열쇠는 행운의 열쇠 같았다. 다른 사람은 만지지 않았다. 아버지 몫이었다. 아버지는 은빛이었다.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나면 은단곽에서 은단을 몇 알 꺼내 입에 넣었다. 어린 나는 그 시간을 기다렸다. “너도 줄까?” 아버지는 내 손바닥에 몇 알을 떨어뜨렸다. 싸하고 씁쓰름했다. 아버지의 입맛은 썼다. 담배가 그렇고 술이 그랬다. 소화가 늘 안돼 복용하던 노루모의 맛도 쌉싸름했다.
겨울밤, 가게에서 돌아온 아버지와 얘기를 나누는 상대는 은빛 텔레비전이었다. 아버지는 편안한 잠옷으로 갈아입고 긴 코트와 중절모는 안방 벽 한 귀퉁이에 박힌 못에 걸어 두었다. 언뜻 아버지가 아직도 서 있는것처럼 보였다. 종일토록 일터에 서 있던 아버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엎드려 누운 아버지의 종아리 위에 올라갔다. 조심조심 밟았다. “괜찮다. 꽉꽉 밟아라.” 그래도 걱정이 되었다. 내가 무거울 텐데, 그런 생각도 잠시, 곧 지루해져서 몸을 비비틀면 그만 됐다, 몸을 일으키던 아버지. 그때만해도 아버진 젊었다. 막 머리를 감아 자연스럽게 흐트러진 아버지의 머리카락이 청년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여고생이 된 어느 날, 불현듯 깨달았다. 아버지의 시계가 뿌옇게 퇴색되어 있는 것을. 탄력 있던 시곗줄은 늘어지고 야광의 푸른색은 빛이 바랬다. 그래도 시간은 어김없이 아버지를 이끌었다. 아버지는 늘 밖에 있었다. 일요일도 없이 시계를 찼다. 자식 다섯을 가르쳐야 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매번 같은 생활을 반복했다.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도 운동할 시간도 없었다. 낙이라면 술 뿐이었다. 퇴근길에 가끔 들른 술집에서 한잔하거나, 소주 한 병을 사가지고 집에 들어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함께 대작할 사람도 없이 아버지는 혼자 소주 한잔을 기울이곤 했다. 왜 그때 나는 아버지에게 살갑게 굴지 않았는지, 딸이 넷이나 되었건만 애교 피는 딸 하나 없었다. 아버지와 나눈 대화는 돈이 필요할 때가 대부분이었다.
어느 추운 겨울밤, 만취한 아버지는 누군가 낯선 이에게 부축을 받으며 집에 들어섰다.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버리자 어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코를 고는 아버지 손목에 시계가 없었다. 아버지는 시계를 잃어버렸다. 아버지는 새로 다시 손목시계를 하나 샀다. 가벼운 은빛이 나는 방수 시계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머리칼은 희끗희끗 퇴색되고 턱수염이 하얘져도 할 일이 많다. 손목의 시계는 째깍째깍 잘도 간다. 초침은 숨이 가쁘다. 시간을 쪼개야 한다. 아버지는 움츠러드는 어깨를 폈다.
시계는 바른쪽으로만 도느라 시간이 걸렸다. 막내딸이 시집갔다. 쉬고 싶다. 아버지는 일을 놓았다. 시계를 풀어 서랍에 넣었다. 안방 한쪽 벽 꼭대기에 있던 커다란 시계는 고장 나 버린 지 오래다. 시간에 구애받을 것이 없다. 그래도 일정한 시간에 기상했다. 아침을 가볍게 먹고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 우유팩 하나를 사들고 왔다. 평소에 읽고 싶던 역사책을 실컷 읽을 수 있어 설레었지만, 눈이 침침하다. 동네 노인정에 나가보니 할머니들만 모여있다. 어머니와 마주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쓸데없는 참견만 늘어 말 없던 아버진 어느새 잔소리꾼이 되었다. 어머닌 아버지와 취향이 달라 텔레비전을 같이 보는 것이 불편해졌다. 따로 부엌 옆에 방을 마련했다. 아버지는 혼자 텔레비전을 보다 잠이 들었다. 편하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했다.
아버지 시간은 왜 이리 더디 가는가. 오라는 데 많은 어머니와 달리 갈 데가 없다. 아버지는 아들 집 외에 딸들 집에는 가지 않았다. 아들네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자꾸 잠만 잔다. 괜히 일을 놓았다. 서랍에 넣었던 손목시계를 다시 꺼내 차 보았다. 헐거워 시계가 돌아간다. 답답하고 무겁기까지 하다. 시곗바늘을 되돌릴 수는 없다.
시계는 누렇게 빛을 잃었다. 아버지는 병상에 누워 소변을 보는 것이 고역이었다. 억지로 일어나다 넘어졌다.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의지가 완전히 꺾였다. 꿈을 꾸었다. 마지막 가는 길에 아버지는 시계를 풀어 놓았다. 그리고 맏딸이 첫 월급 타서 선물한 금반지만 끼고 떠났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 자유로운 꿈속으로 영원히.
아버지의 하얀 턱수염이 남편에게도 보인다. 남편은 결혼예물로 받은 손목시계가 고장 난 뒤 시계를 차지 않는다. 아버지처럼 시계에 태엽을 감지 않아도, 시간을 가두지 않아도 된다. 휴대전화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집을 나서는 남편의 뒷모습에 아버지의 그늘이 진다.
[2014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