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바다

 

 

 

 

                                                                          신순희

 

 

 

너무 고즈넉하다. 이곳이 무인도는 아닌지 몰라. 어쩌면 남편과 우리 둘뿐. 바다가 아니다. 컬럼비아강 하류. 물결이 잔잔하니 강인가 싶지만 모래밭과 파란물이 바다 같다. 하얀 모래 강변 따라 걷다 보니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푸르다. 아직 피지 않은 갈대는 바람만 휘어지게 한다.

 

무인도에 발자국 찍혔다. 네발짐승 발자국에 공연히 두려운 마음이 든다. 개는 아닌 같다. 발자국이 이리 있을까. 그럼 어떤 동물이라는 건지. 무인도이길 바라는 마음인가 보다. 등으로 내리쬐던 따스한 햇볕이 돌연 몰아치는 바람에 오소소 춥다. 섬에 유배된다면 이런 기분일까? 상념을 깨고 저쪽에서 아저씨가 내려오고 있다. 옆에 강아지도 온다. 그래, 여긴 포트 스티븐스 바닷가 샛길에 있는 작은 동산이었지. 컬럼비아강물이 흘러드는 바다, 난파선이 있는 바다로 나가자.

 

망망한 바다. 바다를 번째 찾았다. 해전 여름에도 왔었다. 그런데도 공원 입구에서 길을 잃었다. 해변을 향한 알았는데 초소가 나온다.  초소에서 입장료 5달러를 내고 들어선 곳은 군사 박물관이다. 초소의 할아버지는 우리더러 일본인이냐 물었다. 한국인이라는 말에 반색하며 자기 아내도 한국인이라 한다. 뒤이어 하는 말이 심란하다. 이곳을 세계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잠수함으로 미사일을 쏘아 공격했다고 한다. 당시 미군은 적에게 위치가 발각될까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숨죽이고 적이 돌아가길 기다리니 여러 공격을 시도한 일본군이 결국 물러간 것. 피해는 없었다. 그때가 1942 6월 21일에서 22일.

 

미군이 비밀리에 주둔하던 감춰진 바다까지 넘본 일본. 할아버지는 우리가 일본인이라고 말했어도 일본군이 공격한 사실을 얘기해 주었을까?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태평양 건너 미국 본토까지 진출을 시도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일본군의 전쟁 야심이 그토록 컸다니, 갑자기 한기가 느껴진다.

 

군사박물관을 되돌아 나와 오솔길을 지나자 바다가 보인다. 오리건 바다가 그렇듯 서늘한 기운에 수평선이 흐리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온통 잿빛이다. 점점이 보이는 사람들 모습도 물안개 속에 희미하다. 한여름인데도 북적대지 않고 한가롭다. 맨발로 걷기 좋은 모래밭이 끝없다. 평평한 모래밭 위쪽으로 모래구릉이 펼쳐져 있다.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니 시야가 트인다. 마치 중턱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느낌이다. 바다를 보려면 오리건으로 가야 한다. 바다가 보고 싶어 우린 여름이 되면 시애틀에서 여기까지 달려오곤 한다. 포트 스티븐스 주립공원은 숨겨진 바다 같다.

 

바닷가에 난파선이 물에 비스듬히 잠겨있다. 물에서 건져져 바다에 천연 전시된 난파선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들. 폐선은 세계 2차대전이 끝난 아는지 모르는지 파도를 맞으며 물안개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감추었다 한다. 천혜의 해안이 80 넘게 군기지였다니, 군용 지프를 타고 해안을 돌며 벙커 속에 몸을 감추고 포를 쏘았을 군인들 상상이 간다. 

 

포트 스티븐스 주립공원(Fort Stevens State Park)이라고 이름 지어진 것은 1865년이다. 이곳은 원래 군기지였다. 남북전쟁과 세계 2차대전 당시 군기지로 사용되다 1947 폐쇄되었다. 지금은 관광지로 변했지만, 여전히 미국 육군이 관리한다. 당시 사용하던 포와 적을 감시하는 망루 그리고 곳곳에 벙커가 그대로 남아있다. 역사가 있는 자연 휴양지이지만 아직도 전쟁의 냄새가 난다.

 

스티븐스 공원은 오리건주 아스토리아에 있다. 아스토리아는 워싱턴주 서남단에서 아스토리아 다리를 건너면 바로 나오는 항구 도시다. 다리는 길고 철교인데 태평양으로 흘러가는 컬럼비아강을 건넌다. 다리 밑으로 배가 왕래하도록 가운데 곳이 ㅅ자 형태로 높이 솟아 있지만, 나머지는 수면에 아주 가까워 조금 으스스하다.

 

시애틀에서 출발해 아스토리아 다리를 건너는 도중에  웰컴 오리건’이란 팻말이 나온다. 다시 다리를 건너 돌아갈 웰컴 워싱턴’ 만나면 우리는 편안한 심정이 된다. 주를 오가며 출렁대는 다리를 건너면서 팻말 말고 이쪽저쪽을 가르는 보이지 않는 경계는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맑은 날인데도 다리를 에워싸는 희뿌연 안개로 시야가 흐리다. 머릿속은 포트 스티븐스를 공격했다는 일본군  잠수함 생각에 더욱더 흐리다.

 

 

 

[2018 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