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 하나

 

                                                                                                       신순희

 

    

화분에 씨를 심는다. 다시 보니 그건 씨가 아니다. 햄버거다. 이것이 무슨 조화인가. 먹던 햄버거 조각을 심으면 무엇이 나올까?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대로라면 햄버거가 열리는 나무가 나와야 한다. 깨어 보니 꿈이다. 평소 햄버거를 좋아하는 것도 자주 먹는 것도 아닌데, 꿈이란 허무맹랑하다. 시애틀에 살다 보니 햄버거가 등장하고.

생각해보니 그것도 괜찮다. 지구 곳곳이 굶주림에 아우성인데 햄버거나무라면 획기적인 식량 공급원 아닌가.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햄버거를 따는 기분이 어떨까. 원료가 아닌 완성된 식품이니 조리할 필요 없고 연료도 필요 없고….개발할 수만 있다면 노벨평화상감이다. 한편 생각해본다. 생명을 지탱해주는 일용할 양식이 음식에 국한될 필요는 없겠다. 책도 마음의 양식 아닌가.

책이 열리는 나무라면 어떨까. 꿈보다 해몽이라던데. 이따금 나는 현실감 없이 생각한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산다는 것은 기나긴 꿈속의 꿈이 아닐까, 가없는 꿈을 꾸느라 고생하는 꿈이 끝나는 날은 언제일까?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불가능이 없고 예측불허이다. 속에서 나는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본다. 희로애락은 현실에만 있는 , 꿈속에는 없다. 그런데도 나는 날마다 꿈을 꾼다.

꿈이 무어냐 물어주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한다. 시애틀에서 가장 워싱턴대학 로고가 청보라색이고 우리 아이들이 졸업한 고등학교 로고 색도 그렇다. 시애틀 청년들의 이상과 현실을 버무린 . 우리 앞에 지금 한창 피는 자잘한 봄꽃도 청보라다. 색은 흐린 돋보인다. 현실감 떨어지는 아련하게 바랜 , 나의 색깔이다.

서점 이야기를 하려 한다. 아마존이 처음에 인터넷 서점으로 시작한 아는 사실이다. 그로 인해 다른 대형 서점들이 문을 닫고 나니 아마존은 시애틀에 다시 서점을 열었다. 전시를 위한 상징적인 서점이라고 하지만, 이동인구가 많은 대형 백화점에 들어서 있어 오고 가는 시선들을 붙잡는다. 나도 호기심에 그곳에 들어갔다 하드보드 표지의 ‘Korean Food’ 요리책이 눈에 들어 책을 구매했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서점을 구경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면 곳곳에 아마존 서점이 들어설지 모른다.

나는 책방을 열고 싶다. 시애틀에서 한글로 쓰인 창작집만 파는 작은 책방을. 주제가 있는 사랑방 같은 책방으로 겨우 유지만 되어도 족하겠지만, 아무래도 어려울 같다. 헌책을 팔고 대여도 해야겠다. 손님이 진을 치고 책을 읽고 간다고 해도 없다. 책을 사랑하는 모든 손님이 반가울 테니. 현실은 여전히 돈이 문제다. 여기서부터 생각이 복잡해진다. 우선 청보라에서 환상적인 보라를 버리고 이지적인 청색을 꺼낸다. 펼쳐진 청사진은 냉정하다. 책방 주인이 되는 일이 요원할 있다.

책방 주인은 나의 오랜 꿈이다. 어린 시절, 동네 책방에서 비밀의 화원이라든지 알프스의 소녀 빌려 읽으며 꿈을 꾸었다. 청소년 시절에 가본 청계천 헌책방에는 없는 없었다. 많은 책더미에서 내가 찾는 책을 찾아내던 주인아저씨를 경이의 눈으로 바라봤다. 친구에게 김현승 시집을 선물하는 기쁨도 있었다. 서점 입구에 진열된 각종 책의 표지에 얼마나 홀렸던가. 만일 내가 책방 주인이라면

지금은 꿈꾸는 시간. 구체적인 계획을 구상하는 일은 시간이 걸릴수록 좋다. 꿈꾸는 동안 만큼은 나는 청년이다. 꿈속에 작은 화분이 있다. 손가락으로 흙을 뒤적여봐도 아무것도 심겨 있지 않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모습이 관조 된다. 이윽고 책나무 씨를 심는다. 한줌 꿈이다.

이루어지지 않는 꿈이라도 괜찮다. 책방 주인이 되어서 선반에 책을 듬성듬성 채우고 권씩 보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꿈만 같다설령 꿈으로 끝난다 해도 상관없다. 꿈을 있어 나는 좋다늦은 시작이란 없는 . 무한한 세계에서 내가 가꾸고 기르는 화분 하나 있다

 

[2019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