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비

 

                                                                               신순희

 

비가 주룩주룩 온다. 벌써 며칠째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면 여전히 비가 오고 있다. 밤새 내린 비로 기온이 내려가 으스스 한기가 돈다.   

고국의 여름 장마 같다. 홍수가 지역도 있다. 줄기차게 내리다 잠깐 해가 쨍해서 하늘이 개었나 싶으면 다시 비가 오고 그러다가 장대비로 돌변한다. 후드득, 지붕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가 하면 이내 빗방울 튀는 소리가 요란하다.   

시애틀에 살면 여러 모양의 비를 만나게 된다. 보일락 말락 하게 보슬거리며 내리는가 하면,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비도 있다. 느닷없이 우박도 동반한다. 신기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비는 얼음비다. 비가 내리면서 얼어버려 나뭇가지가 온통 고드름으로 변하고 빙판길이 된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여우비는 흔하다. 변화무쌍한 날씨지만, 아직 고국에서 맞던 소나기 같이 시원하고 후련한 비는 만나지 못했다
   

처음 미국에 곳이 오레곤의 유진이었다. 춥지 않은 영상의 기온인데도 오슬오슬 한기가 뼛속 깊이 스며드는 날씨에 마음마저 시렸다. 그때 내내 비가 내렸다. 막막한 마음처럼 내렸다. 밤새 소리 없이 내렸다. 비는 우산을 거부했다. 모두 그냥 비를 맞으며 다녔다. 빗속에서 어린나무 그루 붉게 물들어 떨고 있었다. 부엌에서 설거지하면서 창밖을 보면 나무는 그렇게 혼자 우두커니 있었다
   

시애틀의 비가 변했다. 전에는 우산 없이 다닐만했으나 언젠가부터 그럴 없이 비가 내린다. 추적추적 치근덕대는 비가 옷에 달라붙어 몸을 적시니 우산을 받쳐야 한다.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11월에는 우산뿐 아니라 장화도 등장한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장화는 패션이다. 나도 하나 장만할까 생각 중이다.   

하염없이 비가 내린다. 바람 불면 빗살 그으며 내린다. 이제는 빗소리가 아니라 졸졸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난다. 오늘 어딘가에 홍수 나겠다. 날마다 회색 하늘에 비가 내리고 바람 불고 낙엽 지고 있다. 나무들도 빗속에 지쳐간다. 창밖은 비가 흘러넘치건만 마음 한구석에 무엇인지 모를 앙금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나저나 창밖으로 보이는 뒷마당에 멋대로 흩어져있는 많은 나뭇잎은 어찌하나. 젖은 낙엽 치울 생각에 한숨이 나온다.    

비가 주룩주룩 온다. 밤새 한숨 소리 내며 쏟고도 모자라는지 종일토록 내린다. 하늘 문이 열렸나, 창조주가 하늘에서 인간 세상 굽어보다 눈물 흘리나. 해가 가기 전에 추악한 모든 씻어내려는 건가. 아직은 11월인데.

 

[2015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