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예수를 돌려주세요

                                                                                                                                                               유숙자       

12월로 접어들자 온동네가 성탄분위기로 들떴다. 집집마다 정성들여 장식해 놓은 조형물과 색전구로 골목이 불야성을 이룬다. 경쟁이라도 하듯 한 집 한 집 치장이 늘어나는데 그 중에서 첼시 집 장식이 가장 멋지고 화려하다. 정원을 마치 성극무대처럼 꾸며 놓았다. 허름한 마구간에 구유가 놓여 있고 조각가에게 부탁했다는 아기예수를 눕혀 놓았다. 조각이 어찌나 정교한지 좀 떨어진 곳에서 보면 영락없이 살아있는 아기처럼 보였다. 마리아와 요셉이 기도하는 모습으로 구유 옆에 서 있고 동방박사도 있다. 집 전체를 색전구로 장식해 놓아 그 일대가 대낮처럼 환하다.

 

성탄절을 앞둔 어느 날 외출에서 돌아오는데 동네 사람들이 첼시 집 앞에서 웅성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밤사이 아기예수가 없어졌단다. 구유 옆에는 “아기예수를 도둑맞았습니다. 제발 돌려주세요.”하는 팻말이 놓여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내일모레인데 비어 있는 구유. 가슴 속에서 한 가닥 찬바람이 휑하니 스친다. 하나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그 아들을 주셨는지 알면 차마 집어가지 못했으리라. 텅 빈 구유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첼시네 가족들은 어떤 생각에 잠겨 있을까. 한 번도 집 주인을 만나보지 못했지만, 그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니랴 싶었다.

하나님, 당신의 아들을 훔쳐갔습니다. 저희는 아버지의 깊으신 뜻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아기 예수가 어디서 어떤 마음으로 성탄을 맞으실까요.”

비록 나무로 만든 조각상이었으나 첼시 가족에게는 조각의 의미를 넘어선 살아 있는 아기 예수, 낮은 곳으로 임하신 구세주로 생각했기에 아물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성탄 시즌이면 정성과 수고를 아끼지 않고 며칠씩 집 단장을 하는 것이 이곳 풍습이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며 기뻐하는 신자들이나, 비신자라 할지라도 성탄에 이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서운함, 새해를 맞는 기쁨이 공존하는 탓이다.

 

생애에 가장 아름다웠던 크리스마스이브를 기억한다. 지금도 그런 행사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살았던 1980년 영국에서 맞은 크리스마스이브다. 전통을 중히 여기는 영국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산타클로스가 찾아온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캐럴과 종을 울리며 동네 어귀로 들어서면 모두 나와서 산타클로스를 맞는다. 여섯 필의 말이 끄는 마차에 세 명의 산타클로스가 색전구로 장식한 황금 마차를 타고 손을 흔들며 다가온다. 산타클로스는 캔디와 초콜릿을 뿌리고 예쁘게 포장한 선물을 아이들에게 안겨 주며 메리 크리스마스 호 호호 하고 외친다. 동네 사람들은 일 년 동안 준비한 구제금과 선물을 바구니에 담아서 아이들을 통해 산타클로스에게 전한다. 받는 것도 즐겁지만, 나눔에서 느끼는 뿌듯함과 베풂의 기쁨을 아이들 스스로 체험케 해주려는 교육적 의미가 담겨 있다.

 

내가 어렸을 적 성탄절 즈음에는 눈이 내렸다. 성탄 전야에 내리지 않더라도 그때쯤이면 눈이 쌓여 있었다. 교회에서 크리스마스이브 음악 예배와 성극이 끝나면 맛있게 떡국을 끓여 주었다. 이윽고 성탄절 새벽을 맞으며 교인들의 가정을, 대학병원을 찾아가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렀다. 예전 아름다웠던 풍습이 언제부터인가 사라져 조용히 맞던 성탄절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도 아기 예수 오시는 성탄절에는 밤새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내릴 것 같고 어디선가 새벽 송 소리가 들릴 것 같다.

 

성탄절을 맞는 우리는 사랑과 은혜와 축복이 함께하는 메리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좋겠다. 트리 위에서 반짝이는 갖가지 불빛처럼 나의 마음속에도 꺼지지 않는 불씨 하나 지니고 싶다. 그 빛이 힘들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매개체가 되어 진정한 의미의 메리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좋겠다. 일반적으로 한 해가 저문다는 것은 가진 자나 못 가진 자 모두에게 쓸쓸함을 준다. 평소에 바빠서 지나치고 있었다 하더라도 한 해가 저무는 이맘때만큼은 나눔의 아름다움으로 베풂의 넉넉함으로 훈훈한 인정의 꽃을 피웠으면 한다. 주위를 살펴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들에게 넉넉한 마음으로서 성탄의 참 의미가 가려지지 않게 되었으면 한다.

 

성탄의 계절이 지나고 새해가 되어도 첼시네 조형물은 그대로 있었다. 텅 빈 구유에는 누군가 작은 헝겊 인형을 가져다 놓았다. 동네 주변 나무마다 ‘아기 예수를 돌려달라’고 붙여 놓았던 인쇄물은 이미 활자가 퇴색되어 흐릿한 채로 부는 바람따라 힘없이 펄럭인다. 1월 중순이 지나서야 첼시네는 마구간도 구유도 거두어들였다.

 

이따금 그 집 앞을 지나게 될 때마다 나의 기도는 한결같다.

다가오는 성탄절은 첼시 가족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새롭게 하시리라 확신합니다. 빈 구유에 더 아름다운 아기 예수가 누워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첼시 가족을 위로하실 테니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탄 선물을 첼시 가족에게 주소서. 우리 이웃 모두에게 기쁨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