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도 불구경(내게 특별한 우리말)

유숙자

한국에서 사는 사람은 우리 말의 고마움을 특별하게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40년을 살다가 외지로 떠나온 나도 그랬다.

영국으로 이주한 1980년, 큰아이가 중학교 1학년 작은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아이들이 영어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1년여 시간제 가정교사를 두었고 라틴어, 불어 교육도 병행했다. 현지 교육에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서 아이들도 부단히 노력했다. 6개월이 지나자 아쉬운 대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 기뻤다.

 

5년여 영국 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문제는 아이들 입에서 한국말보다 영어가 쉽게 튀어나와 오히려 걱정되었다.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이 많아 부모와 충분히 대화 나눌 시간이 없었다. 집에서만큼은 우리 말 사용을 철저하게 지켰으나 대학으로 떠나면서부터 나의 지휘권도 상실되고 말았다. 눈 깜작할 사이에 지나는 겨울 방학도, 긴긴 여름방학에도 배낭여행으로, 봉사활동으로 바빠 차분히 집에서 부모와 마주할 기회가 적었다.

이민자의 가족 중에는 부모와 자녀가 대화가 안 되는 집도 종종 있었다. 세부적인 문제를 놓고 의논할 때에는 영어가 익숙한 아이들과 영어가 미숙한 부모로 이해가 달라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우리 집 큰며느리는 한국 아이지만 시카고에서 태어났기에 미국 아이와 다름없다. 작은며느리는 백인인데 작은아들네에서 흑인과 백인 남매를 입양했기에 미국 가정이 되었다. 다행한 것은 두 아들 모두 우리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점이다. 큰아들은 고사성어도 써가며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가족 모임이 있을 때마다 손자 손녀에게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이야기해 주고 인사법, 짧은 문장 등의 사용법을 우리 말로 가르쳐 주었더니 곧잘 따라 한다. 내 아이들 어릴 때처럼, 물건마다 한글 발음의 스펠링을 붙여 놓고 읽게 했다. 재밌어 반복하여 연습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제일 먼저 외운 단어가 먹으며 가르쳐준 호두과자이다.

우리가 미국에서 살아도 근본은 한국사람이기에 언어와 역사와 문화를 알아야 함을 두 아들에게 강조했다. 그래야 그들의 자녀에게 전해 줄 테니까. 다행히 손자 손녀가 우리 말을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어느 해 여름, 손님을 초청했는데 예고 없이 늦어지고 있었다. 그때 큰아들이 '엄마, 금강산도 불구경이라는데 우리 먼저 먹으면 안 될까요?' 해서 한바탕 웃었다. 예전에 들었던 말이 생각났던 탓이다. 그래, 불구경이면 어떻고 식후경이면 어떠냐. 그 문장을 어렴풋이나마 기억하고 사용하고 싶어한 마음이 기특하고 고마웠다.

 

한국에 있었다면 우리 말의 고마움을 알고 살았을까. 이제는 중년을 넘긴 아들과 손자가 주고받는 우리 말. 그 소리가 청아한 노래처럼 아름답게 들린다. 어디에 가서 살든지 우리 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나에게 큰아들이 엄지손가락을 높이 올린다.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