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창에 불을 밝히고

                                                                                                                                                             유숙자

12월에 보내는 카드에는 그리움이 담겨 있다.

멀리 있거나 평소 마음이 바빠 소원했던 사람들에게 나의 건재함을 알리고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다. 다른 일에는 곧잘 게으름을 부리는 나도 이때만큼은 열심히 카드를 쓴다. 한 사람씩 떠올리다 보면 이른 감이 있게 시작했어도 나중에는 종종거리게 된다.

 

카드는 마음을 전하는 것이기에 보내는 것에 의미가 있으나 오랜 세월을 지내다 보면 재미있는 양상이 보인다. 해마다 거르지 않고 정성스럽게 보내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받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있다. 받아야 보내는 사람. 일 년 동안 자신에게 일어났던 신변의 변화를 고백하듯이 써 보내는 사람. 인쇄된 글 밑에 이름만 쓰는 사람. 기력이 다한 듯 그것마저도 활자화시킨 사람 등. 이름마저 활자화시킨 카드는 기억해 준 감사 이외에 별 감동이 없다.

 

버릇처럼 제일 먼저 쓰는 카드는 어릴 적 친구 K에게다.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폐허의 벌판 허름한 천막 학교 5학년 교실에서 만난 친구. 폭격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비행기 소리만 들어도 자지러지게 놀라는 정서 불안정 시대에, 함께 있으면 꿈을 꾸었다. 그때 밤새워가며 나누던 이야기를 지금은 기억할 수 없으나 두 가슴에서 흐르는 정 만은 여전하다. 암울했던 시절을 잘 견디며 이어온 것은 한 뿌리에서 자란 두 개의 가지처럼 밀착되어 서로에게 지주가 되었던 덕분이다.

 

한 해가 기울 때쯤이면 카드를 보내 주시는 친지가 계시다. 우리가 외지에서 살고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달력과 함께 보내 주시는 사촌 시 아주버님. ‘이곳에도 달력이 넘쳐납니다.’ 말씀드려도 불원천리 멀다 않고 보내 주시는 정성이 고마워 뜯기 전 감사를 표한다.

 

결혼하고 보름 만에 맞은 첫 성탄절에 남편이 카드를 만들자 했다. 그 말이 어찌나 로맨틱하게 들렸는지 각종 색연필을 사용하여 정성껏 그렸다. 카드를 받은 사람마다 감동이었다는 말을 했다. 남편의 그림 솜씨가 수준 이상이었다. 앞으로 카드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는데 그 행사는 오직 한 번으로 그쳤다. 때로 남편이 써야 할 때도 있건만, 쓰는 것하고는 담을 쌓았기에 그 일은 오붓한 내 차지다.

 

홍익 대학교에 계신 H 교수와도 교분을 나눈 지 30여 년이 넘는다. 아이들이 홍대 부속 초등학교에 다닐 때 어머니 교실의 특별 강사로 청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다. 동년배였던 제자들이 붓글씨와 사군자를 배웠는데 더욱 닮고 싶었던 것은 그분의 인품이다. 우리 가족이 외국에 있을 때도 손수 그린 연하장을 보내 주셨다. 붓글씨로 쓴 덕담과 난, 매화, 초가지붕 위의 둥근 박. 우리 집 거실에 난과 매화가 활짝 피었고 박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교수님께서 보내주신 고향의 정취로 고국에 대한 향수를 달랠 수 있었다.

카드를 받고 펑펑 운 적이 있다.

 

어느 해였나 여학교 동창인 B가 암으로 투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해 크리스마스 때, ‘반드시 암을 이겨내고 낫기 바란다.’는 마음을 담아 보냈다. 해가 저물어 갈 무렵 친구에게서 소식이 왔다.

“친구야, 내년에도 너에게 카드를 보내게 되었으면 좋겠다.”

카드를 읽으며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예전에 활발하게 코트를 누비던 농구 선수답게 친구가 병상을 훌훌 털고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했으나 친구로부터 다시는 소식이 오지 않았다.

 

살아가며 우리는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는다. 세월과 함께 그리움과 기다림을 키우게 하는 인연이 있는가 하면 소식 없으나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있다. 비 오는 날 함께 걷고 싶은 사람. 황혼의 바다에 서면 문득 환영으로 다가오는 사람.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 떠나간 사람이 그리워진다. 어떤 인연으로 만났든 간에 공유할 추억이 있기에 소중하다.

카드 쓰기를 연중행사로 생각하고 주고받던 시절이 그립다. 인터넷 사용이 급증하면서 전자 카드가 성행하고 종이 카드가 현저하게 줄었다. 상대방에게 부담감을 줄까 봐, 카드 보내기조차 조심스럽다. 실제로 카드를 보내면, 시대에 맞게 살자는 친구도 있었다.

 

25년 전 글렌데일로 이사 왔을 때 이 동네의 자랑이 대형 쇼핑몰 글렌데일 겔러리아였다. 유명 인사들이 방문을 즐긴다는 곳. 실제로 클린턴 대통령도 이 몰을 다녀갔다고 한다. 당시 글렌데일 겔러리아는 유럽풍의 쇼핑몰 같은 분위기였다. 전통 있는 유럽의 본차이나를 비롯한 옷과 그림, 액세서리에 이르기까지 세계 여러 나라의 물품이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특히 PAPYRUS, Hallmark 등 카드 가게가 여섯 군데나 있어 편리했다. 세월 따라 차차 변하더니 요즘은 포멀 웨어는 드물고 캐주얼 수트, 신발 가게 일색이다. 며칠 전 Hallmark가 다섯 번째로 문을 닫았다. 카드를 사러 갔다가 쓸쓸히 발길을 돌렸다. 내가 친구들에게 카드가 없어지지 않는 한 보내 줄 것이라고 했는데, 카드가 사라지고 있어 클래식 음반 점이 문을 닫았을 때만큼 서운하다.

 

두고두고 음미할 수 있고 다시 꺼내어 볼 수 있는 것이 카드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때로 친구가 그리울 때면 보내준 카드를 다시 한 번 감상하며 소중한 영혼의 해후를 체험한다. 직접 대면해서 할 수 없는 이야기도 편지나 카드엔 자연스럽게 털어놓을 수 있는 것. 진실하게 서로 열어 보일 수 있는 것. 한 잔의 차를 곁들이며 다시 한 번 그 여백을 즐기고 있을 때면 ‘아! 살아 있음의 행복함이여!’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한 해가 기울 때쯤이면 내 마음의 창에 불을 밝히고 상대방을 그곳에 초대하고 싶은 마음, 그리운 이들의 이야기가 시처럼 음악처럼 감미롭게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나는 카드를 쓴다.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