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봉봉
유숙자
손녀 빅토리아가 내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아침부터 그랬다. 뭔가 할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데 기회를 보는 것 같다. 오늘 저녁 할머니가 샌타바바라를 떠난다 하니 갑자기 초조해진 모양이다.
며느리 엘리자베스가 점심을 대접한다 하여 바닷가로 나갔다. 예약된 레스토랑이 피어(Pier)에 있어 바다 한가운데 앉아 있는 기분이다. 랍스타 요리가 일품인 이곳에서도 비비(빅토리아의 애칭)는 먹는 둥 마는 둥이다.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비비가 살며시 다가와 손을 잡는다. 바닷가에 오면 며느리와 나는 산책을 하고 아들과 아이들은 공놀이를 즐기는데 오늘은 전혀 관심 없어 보인다. 비비가 이끄는 방향으로 따라갔다. 바닷가 모래사장이 완만하고 둔덕에 나무가 있어 그늘진 곳까지 왔다. 편하게 앉아 손녀의 반응을 기다렸다. 곁에 앉아 조가비를 파고 있던 비비가 '할머니' 하며 와락 내 품을 파고든다. 꼭 안아 주었다. 심장의 팔딱거림이 전해진다. 모태에서 탯줄이 끊기는 순간, 양부모 품에 안긴 백인 아기, 원초적인 막연한 사랑이 그리운 걸까?
'할머니, 엄마 봉봉 찾아주세요.' 눈물이 두 눈에 그렁그렁하다.
'엄마 봉봉?' 갑작스러운 물음과 손녀의 눈물에 당황하여 얼른 되물었다.
'엄마 봉봉이 없어졌어요. 누가 빌려 갔다는데 가져오지 않아요. 엄마가 봉봉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엄마는 필요한 사람이 가져갔기에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데요.' 4살배기 손녀의 눈물 어린 하소연에 할 말을 잃었다. 지금 손녀는 어릴 때 엄마 품에서 더듬던 봉봉이 그리워 눈물 흘린다.
'알았어, 할머니가 엄마에게 말할게. 봉봉 찾아오라고.' 비비는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물이 빠져나간 자리에 모래톱이 한가롭다. 세차게 밀려온 파도가 흔적을 남기고 떠난 자리. 길게 드러누운 골에 수줍게 파묻힌 조가비가 외롭다. 시월의 높은 하늘이 내려앉은 가을 바다. 청옥 빛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바다도 옷을 갈아입는다는 것을 샌타바바라 바다를 보며 알았다. 계절이 다시 바뀌고 시간이 흐르면 비비도 엄마의 상처를 마음 아파할 것이다.
지난 5월 며느리가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양쪽 모두 절제해야 하는 악성이다. 4월 초 정기 검진에서 암을 발견하고 수술하기까지 며느리는 의연하게 대처했다. 신앙의 힘으로 절제하며 감정의 변화를 드러내지 않았다. 주변의 염려를 잠재울 정도로 침착했다. 오히려 금식하며 기도하는 나를 걱정했다. 아이들에게도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하게 대했다. 방문을 닫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혹여 세상에서 밀려나 외톨이가 된 막막한 외로움에 시달리는 것은 아닐까? 밤 같은 어둠 속에서 뼈 깊은 한숨이 새어 나오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었으나 하늘의 음성을 들으려고 묵상 기도를 하고 있었다. 꼭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단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다른 곳에 전이도 없었다. 다만 비비가 '봉봉' 어디 갔느냐고 물을 때, 4살 아이에게 차마 사실대로 말해줄 수 없는 것이 괴롭다고 했다.
수술 뒤 자주 샌타바바라에 갔다. 며느리가 한식을 좋아해 불고기, 잡채, 궁중 떡볶이를 만들어 준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구절판도 만든다. 약에 지친 모습이 안타까워 음식이라도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채로 만들어 주고 싶다. 녹차를 우려 부친 전병에 각종 채소와 소고기, 표고, 달걀지단을 넣고 싸주면 잘 먹는다.
앞으로 지속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으나 이제껏 보여 주었던 강인함으로 잘 극복하리라 믿는다. 생애 처음으로 지루한 봄을 보내면서 나뭇잎 한 잎 흔들림에도 생의 애착을 느꼈으리라. 삶은 더없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 어떠한 상태에 놓여 있든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저만치서 며느리가 다가온다. 발딱 일어선 비비가 엄마를 향해 달려간다. 돌아보며 엄지손가락을 높이 쳐든다. 할머니를 믿는다는 표시다. 좀 전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눈에 함박웃음이 피었다. 눈물이 웃음으로 변하듯 '엄마 봉봉'에 애착을 갖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바람이 분다. 시원한 샌타바바라의 해풍이 며느리를 반긴다. 에닉스 풍의 시폰 드레스가 물결처럼 살랑이는 것이 보기 좋다.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