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감정과 공정성

유숙자

탤런트 K 씨에 관한 이야기가 인터넷을 달구었던 적이 있었다. 한국방송연기자협회 이사장인 K 씨가 탤런트 시험에 응시한 아들을 1차에서 탈락시켰다. 경쟁률이 치열해 안면이 조금만 있어도 청탁을 넣을 판인데 최고 심사위원의 결행 처사는 큰 뉴스감이었다.

K 씨는 YTN ‘뉴스&이슈’에 출연하여 아들의 KBS 공채 시험 도전기에 대해 털어놓았다.

 

연기자란 열심히 노력해서 연기력을 갈고닦아야 하는데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무조건 합격시키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고. 그는 아들에게 네가 억울하면 전 과정을 차례로 지켜보라 했더니 워낙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많이 응시해서 그런지 내가 떨어뜨린 것에 대해 억울해 하지 않더라 했다.

 

시험이 실력에 따라 가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으나 사회가 어디 그런가. 청탁과 이권이 판을 치기에 이런 이야기는 청량음료를 마실 때처럼 속이 시원하다. 연예계에서는 이미 그에게 “포청천”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삶의 궁극적 목표는 자아 완성에 도달하는 것. 이런 철학을 지니고 산다는 K 이사장이야말로 연륜과 경험이 가르쳐 준 귀한 교훈과 체험을 몸소 실천한 분 같다.

 

K 이사장의 글을 대하고 보니 아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던 시절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들은 대학 재학 시 대 기업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입사했다. 함께 일하는 동료 중에 A라는 동양권 청년이 있었는데 A는 입사 초기부터 동료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내어 놓은 아이디어를 자신의 것인 양 가로채기도 하고 실력보다 의욕이 앞서 얄팍한 심성을 곧잘 드러냈다. 고쳐지지 않은 행동은 결국, 사회적 가치관이 성숙지 못한 구성원으로 지목받기에 이르렀다.

 

몇 년이 지난 후 A가 사내 다른 부서로 옮겨가게 되었다. 새 부서에서는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그의 동료 중 한 사람에게 A의 인성에 대한 소견서를 부탁했다. 동료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고 아들이 그 일을 맡게 되었다. 아들도 억울한 일을 당해 내게 하소연했던 기억이 있었기에 어떤 내용의 소견서를 썼는지 궁금했다.

 

몇 달 후 회사 송년 모임에서 우연히 A를 만나게 되었는데 어찌 알았는지 아들이 써보낸 소견서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더란다.

아들은 동료들에게 불이익을 준 A였지만 한 사람의 장래를 생각해서 지혜롭게 행동한 것이다. 인성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 아니나 A의 행동은 과욕에서 우러나온 것. 뭔가에 쫓기는 듯한 불안, 단시일 안에 노력보다 더 큰 성과를 얻으려는 이기적 욕심이란 것을 간파했다. 경쟁사회에서 볼 수 있는 미성숙한 사람의 한 전형이라 생각했다. 반면, 일에는 열정적이라 지금은 이런 모습을 보이지만 좋은 직장인이 될 요소도 내다보았다. 주변 사람을 밟고 일어서려 끊임없이 괴롭힌 A에게 공정하기란 어려운 나이임에도 아들은 바른 사회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인격 형성은 나이와 상관없는 것 같다. 아들은 인생을 많이 살지 않았으나 현명한 판단을 할 줄 아는 지혜와 능력을 지녀 개인감정을 개입시키지 않는 성숙함을 보였다. 사람을 쓸 때는 장점만 취하고 단점을 상관하지 말라는 말을 다른 각도에서 실현했다.

 

살아가며 우리는 흔히 개인감정과 공정성을 혼동할 때가 있다. 회의할 때나 의견을 모을 때 혹자는 자기 뜻이 반영되지 않으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회의는 여러 사람이 의견을 모아 좀 더 나은 결과를 얻고자 함인데 다른 방향으로 빠지기도 한다. 토론하여 의논하자 해놓고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을 때 큰소리가 난다. 각인각색으로 저마다 바라고 찾는 것이 다를뿐더러 무엇이 옳으냐는 생각도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내기에 과격한 반응은 피해야 할 것이다. 내 의견과 맞지 않는 것이 그른 것이 아니련만 쉽게 승복하려 들지 않는 경우도 있다. 회의는 회의일 뿐인데 평소 돈독했던 인간관계마저 금이 가 서먹해지고 간혹 단절로까지 이어짐을 본다.

 

예전에 선친께서 자아(自我)는 부지(不知)란 말씀을 자주 하셨다. 자신의 자신 됨을 아는 일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쉬운 것 같으면서 어려운 나를 아는 일. 살아가며 생각과 행동이 분리되어 스스로 당황하던 때가 있지 않았던가. 내 존재가 주위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조심스럽다. 진정 밝은 사회, 아름다운 사회는 개개인이 바로 설 때 이루어진다고 본다.

 

나의 가치는 내가 만들어 가는 것. 나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함이 화합을 이루는 근간이 아닐까. 인간의 기본 도리를 지킬 줄 아는 바른 인격은, 자신을 아는 분별력과 양식에서 기인하지 않을까 싶다.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