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소리, 요들
유숙자
유럽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요들송 DVD를 선물해 주었다. 마침 시즌이어서 좋은 공연을 감상했다며 다정한 마음을 전했다. 친구의 배려가 고마웠다.
요들송을 처음 들은 것은 여학교 시절,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외사촌 오빠로부터다. 기타를 치며 '요들레이 요들레이 디' 하며 변성기에 든 소년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데 음의 높낮이가 심한 그 노래가 무척 신기하고 재밌었다. 멜로디가 경쾌하고 발랄하여 몸이 저절로 리듬을 탔다. 스위스 목동들이 부른다는 그 요들송은 오빠 이전에 누구에게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요들송을 좋아했다.
우리 가족이 영국에서 살 때 유럽 여행을 자주 했다. 차를 가지고 움직인 여행이어서 국경이 인접해 있는 여러 나라의 풍물을 여유작작한 가운데 즐겼다. 알프스에 오르고 있을 때 어디선가 요들의 메아리가 은은하게 들렸다. 자연에 대한 경이감을 아름다운 음색으로 표현한 듯한 소리. 보통 음악에서 느낄 수 없는 신비가 깊은 산악의 계곡으로 울려 퍼졌다. 자연 속에 정체된 순수 예술을 체험하는 순간이다. 하늘을 가득 안은 알프스에서 듣는 요들은 산 내음 젖은 산의 숨결 같았다.
요들은 중세기 이전부터 알프스 지방의 목동들에 의해 전해 내려오는 민중의 노래라는 기원설이 있다. 스위스 산악지역에서 목부들이 악령을 쫓기 위하여 부른 주문이라는 설. 험준한 산악 지방의 마을과 마을 사이를 잇는 통신 수단과 신호로도 사용되었다는 설. 흩어진 양 떼를 불러모으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설. 신비로운 산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종교적 외경설로 다양했다.
알프스 지방의 요들은 지역적으로 스위스의 독일권, 오스트리아 서부의 티롤 주변, 독일 남부의 바이에른 등 3개 그룹으로 나눈다. 이들 중 향토색이 짙고 농민적인 요들(아름다운 베르네)을 지녀온 곳이 스위스이며 세련되어 있으나 대개 민요의 후렴으로 존재하여 있는 곳이 티롤(숲의 요들, 아름다운 스위스 아가씨) 이다. 관광객의 취향에 맞도록 상업화하였으며 기교적인 것이 바이에른이라고 할 수 있다.
요들의 본향은 스위스지만 세계적으로 알린 나라는 오스트리아이다. 워낙 음악이 발달하여서 민요의 후렴으로 자주 불리나 특히 요들이 성한 곳은 알프스 지방의 티롤이다. 티롤 지방의 요들은 세계화에 가장 중요한 일익을 담당했고 오늘날 유명한 요들송은 대부분 오스트리아 티롤 지방의 요들이다.
티롤계에 딸린 민요로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요한 대공의 요들>이다. 이 곡의 수록 여부에 따라 음반 판매 실적이 차이 난다고 한다. <요한 대공의 요들>은 고난도의 테크닉을 필요로 하기에 부르기가 쉽지 않다. 이 곡은 알프스에서 자연인으로 살고싶어 하는 비운의 왕자 이야기를 담은 노래이다.
요한 대공은 레오폴드 폰 토스카나 대공의 제13 왕자로 당시 오스트리아가 지배하고 있던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부친이 죽자 맏형 프란츠가 즉위, 요한 대공은 다음 차례의 황제가 될 것이라는 평판이 자자했다. 그 무렵, 오스트리아는 프랑스 혁명이 미칠까 봐 염려하여 프로이센과 힘을 합쳐 프랑스와 싸웠으나 패전을 거듭했다. 18세기 말에는 나폴레옹이 러시아 추방 작전의 통로로서 티롤이 공격 목표가 되었다. 요한 대공은 사령관으로 특명을 받고 출동하였으나 주전 부대가 아우스테를리츠에서 패전하여 오스트리아는 나폴레옹에게 굴복했고 빈이 점령됐다.
“모든 것은 끝났다/ 나는 패전의 이름을 지고 이곳을 떠난다/ 티롤의 산들이여 잘 있거라/ 어디에 있든 나는 슬픔에 차 있다/ 철석같이 믿고 있는 슈타이에르마르크를 위하여/총소리가 들리고 사슴이 쓰러지는 곳/요한 대공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이 말을 남긴 체 빈으로 돌아갔다.
사냥을 좋아하고 요들을 잘 불렀던 대공은 황제의 동생이라기보다는 산사나이로서 현지 사람들과 접촉하여 1816년 그룬도르 호반의 우체국장 딸, 안나 프로플과 결혼했다. 평민의 딸과 결혼한 것은 유럽 역사상 없었던 일로서 왕위 계승권의 포기를 의미한다. 1848년 2월 혁명으로 인한 정변으로 메테르니히가 실각했을 때 새로운 지도자로 영입되었으나 말년에는 다시 산으로 돌아가서 알프스에서 파란만장한 생애(78세)를 마쳤다. “요한 대공의 요들”은 그 고장 사람들이 대공을 그리워하며 즐겨 부른 노래였으나 작사 작곡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체 구전으로 전해졌다.
유럽의 요들송 공연장은 통나무로 지은 오픈 카페가 있고 원형 경기장 같은 실내 공간이 있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무대와 요들러의 전통 의상의 조화는 가히 환상이다. 산에서 펼치는 공연은 밴드를 동반하는데 산과 계곡의 울림으로 신비의 극치를 이룬다. 악기는 기타와 아코디언, 벤조, 만돌린, 더블 베이스가 주를 이뤘고 간혹 중후한 알프혼의 저음이 어우러지며 매력을 더했다.
유럽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요들러는 ‘안겔라 비들’이다.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로 그의 공연은 언제나 입추의 여지 없이 대성황을 이룬다. 30여 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도 아름다운 목소리와 인기에 변함이 없다. 요들, 오페라, 가요에 이르기까지 많은 공연을 한 가수로 특히 고음이고 고난도의 기교가 있어야 하는 <요한 대공의 요들>을 긴 호흡과 넓은 음폭으로 유감없이 발휘하여 아낌없는 찬사를 받는다.
맬라니 우쉬는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요들의 진수’라는 평을 듣는다. 그는 6명으로 구성한 ‘우쉬스 디 드리든 반트’의 리드 보컬이다.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우어스 마이어’를 제외하곤 모두 한 형제들이다.
‘헤어린드 린너’는 지긋한 나이에도 음성이 맑고 성량이 풍부한 가수다. 그가 알프스의 산자락 들꽃 길에서 부른 요들송은 산의 정기를 받아 더할 수 없이 청아하고 고운 메아리가 물결친다. 이들 세 사람이 부른 <요한 대공의 요들>은 실제 공연에서뿐만 아니라 유튜브에서 검색이 105만여 회에 가깝다.
우리나라의 요들송은 김홍철로부터다.
그는 1968년 스위스 ‘타게스 안사이거’ 신문사 초청을 받아 동양인 최초로 요들송을 수학했다. 1969년에 에델바이스 요들 합창단을 시작으로 전국 10여 개의 요들 클럽을 만들고 1983년 ‘김홍철과 친구들’로 그룹활동을 시작했다. 알프스 지방의 요들송과 민속 곡을 연주하는 아시아 유일의 그룹이었다. 방송 출연과 이벤트 공연을 통해 요들 보급과 아름다운 알프스의 민속 음악, 의상을 선보였다.
성악가 중에서 유일하게 요들송을 불렀던 사람은 신영옥이다. 리틀엔젤스 시절인 1973년에 부른 <아름다운 베르네 산골>과 <숲의 요들>은 음색이 곱고 맑아 관람객들을 황홀경에 빠뜨렸다. 어릴 적부터 차별된 미성의 소유자였다.
유럽을 떠나 온 후로는 공연장에서 관람할 기회가 없었으나 질 좋은 CD와 DVD가 있고 미국 요들인 컨츄리 송이 있어 아쉬움을 달랜다. 한국에 있을 때 에버랜드 알파인 빌리지에서 관람했던 “김홍철과 친구들” 공연이 인상에 남는다.
요들은 두성(가성)과 흉성(육성)을 음률에 따라 이어서 교차시키는 발성 기법이다. 다시 말하면 두 가지 목소리를 빠르게 연결하여 내는 신비스런 소리란다. 요들을 ‘영혼의 소리’라 함은 장엄한 산에서 생겼다는 데서 기인한 것 같다. 산을 대상으로 메아리쳐 울리는 요들. 신과 인간에게 동시에 공감을 줄 수 있는 소리가 아닐까 하여 생긴 말일 것이다.
<저 알프스의 꽃과 같은 스위스 아가씨 / 귀여운 목소리로 요들레이띠 / 발걸음도 가볍게 산을 오르면 목소리 합쳐서 노래를 하네->->
어느덧 나도 알프스의 요들러가 된다.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