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세월의 흔적
유숙자
연일 기온이 100(F)도를 웃돌더니 산불이 났다. 통계가 있는 것은 아니나 불볕더위가 계속되면 곧잘 산불과 지진이 일어난다. 산불은 연중행사처럼 찬바람이 선들거릴 때부터 시작하는데 올해는 이르게 왔다. 라카냐다 지역에서 시작된 스테이션 산불이 산과 인접한 인가를 위협했다. 주민들은 방송에 따라 집을 비우고 며칠씩 대피소에서 지내야 했다.
내가 사는 글렌데일도 산불 권 안에 들었으나 아직 위험한 단계는 아니다. 다만 냄새와 연기, 먼지로 일주일 이상 창문을 열지 못했고 활동을 자제했다. 대기가 연기로 덮여 해가 보이지 않더니 일주일 만에 벌건 불덩이가 풍선처럼 공중에 걸렸다. 불길에 그을린 하늘이 제빛을 잃었고, 기분 나쁜 메케한 바람이 폐부로 스며들어 기침이 났다. 700여 명이 넘는 소방관이 투입된 이번 산불로 17만 에이커 이상의 산림이 불탔고 수십 채의 주택 소실 등 피해액이 8.300만 달러가 넘었다. 무엇보다도 애석한 일은 2명의 소방관이 순직한 사실이다.
캘리포니아는 기후가 온화하고 각종 과일이 풍부하며 비치(Beach)가 아름다워 많은 관광객이 모여든다. 영화의 도시 할리우드도 큰 자산이다. 반면, 고온 건조하여 산불이 자주 일며 지진의 공포 속에 산다. 가까운 장래에 진도 8이 넘는 빅 원(Big One)이 올 가능성이 높다고 잊어버릴 만하면 미디어에서 일깨워 준다.
노스리지 대지진 때 집안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례적으로 아래위로 흔들려서 쓰러지고 깨진 가구와 액자가 온 집안에 널브러져 있었다. 잠시 흔들림이 멎자 밖으로 나왔다. 손에 쥐고 나온 것은 플라스틱 백 안에 지갑과 물 몇 병이었다. 가방에 차곡차곡 넣어둔 서류와 귀중품은 아예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유사시를 대비하여 운동화 속에 양말까지 넣어 두었건만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지진대에서 살고 있으니 흔들림에 익숙해지기도 하련만 그때의 공포는 수 초가 영원 같다. 언어가 사라지고 감정도 날아간다.
20여 년을 살던 집에서 길 건너로 이사했다. 불과 200여 미터 동쪽으로 이동했을 뿐인데 상황은 180도 달랐다. 전에 살던 곳은 조용한 주택가였는데 이곳은 부산하고 복잡하다. 근처에 대형 쇼핑몰인 글렌데일 갤러리아가 있어 인파와 차량으로 항상 붐빈다. 집 가까이 소방국이 있다는 것도 스트레스다. 사고나 화재 시 소방차와 구급차 3형제가 나란히 사이렌을 울리며 움직이기에 소음이 엄청나다.
잠시 기차역 근처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처음에는 기차가 지나며 내는 바퀴의 마찰음과 기적 소리로 신경이 날카로웠으나 시간이 지나니 차츰 익숙해졌다. 기찻 옆 오막살이에서 아기가 잘도 잔다는 동요가 떠오를 정도로 적응이 빨랐다. 기적 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들리거나, 깊은 밤 어둠을 가르며 들려 올 때는 낭만이었다. 소방차는 몇 년을 들어도 낯설다. 갑자기 자지러지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는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소음이며 금속성 비명이다.
무료한 한낮, 졸고 있던 빌딩이 화들짝 놀라 깨었다. 화이어 알람이 울린 것이다. 놀라 뛰어 나와 보니 바로 옆집 문틈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메케한 연기가 이미 복도까지 새어 나왔다. 금방 우리 집으로 불이 옮겨붙을 것만 같아 재빨리 서류 가방을 챙겨 나왔다. 다리가 후들거려 넘어질 것 같았다. 911에 신고하려는 순간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소방차가 도착했다. 빌딩에서 알람이 울릴 때 소방국에도 자동 연결이 되었는지, 소방서가 가까이 있으니 알람 소리를 듣고 출동했는지 알 수 없으나 신고하기 전에 와주었다. 고마웠다. 완전 장비를 갖춘 소방관 6명이 건물 안으로 들어와 연기가 새어 나오는 옆집 문을 두드렸다. 놀라 얼이 빠진 것 같은 10대 소녀가 보였다. 방학이 되어 와 있던 딸이었다. 갇혀 있던 연기가 쏟아져 나왔다. 튀김을 하다가 기름이 넘쳐 불이 붙었다 한다. 옆으로 불이 번지니 당황하여 신문으로 불길을 잡으려 두드렸다는데 신문에 불이 옮겨붙어 더 크게 번졌다. 어찌 해보려고 우물거리다가 연기와 열기가 차서 센서에서 물을 뿜어 온 집안이 물바다가 되었다. 자칫 대형 화재로 번질 수 있었는데 신속하게 출동한 소방관 덕분에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났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감사 인사를 하러 밖으로 나갔을 때 비로소 쳐다보게 된 소방관들은 훤칠한 키에 건장한 체격, 하나같이 잘생긴 미남이었다.
그 사건이 있었던 후부터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내가 위급한 상황에 부닥치고 보니 시끄럽던 소리가 분 초를 다투며 생과 사의 갈림길에 있는 사람을, 재산을 지키러 숨 가쁘게 달려가는 소방관의 사명 소리임을 체험한 탓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군가 위험한 상황에 부딪히고 있음을 걱정하게 되고 제발 인명 피해만은 없었으면 하고 바란다.
TV 뉴스는 연일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허리케인과 토네이도로 흔적 없이 사라진 마을, 산불로 수많은 집이 잿더미가 되는 안타까운 현장을 보여준다. 재난당한 사람의 인터뷰는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침착하다. 잿더미로 변한 집터를 보면 슬플 텐데 울지 않는다. 때론 농담까지 섞어가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보는 내가 기가 막힐 때가 많다. 이 상태에서 감사하며 목숨을 잃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이제껏 살아온 것처럼 힘차게 다시 일어설 것이라는 말을 한다. 그 여유가 어디서 오는 걸까.
한 부인의 인터뷰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크루즈를 다녀와 보니 부모님 대부터 살아온 저택이 잿더미로 변했다. “지금 우리 부부는 입고 있는 옷과 여행 가방 2개가 재산 전부입니다. 한동안은 살아가기 불편하겠지만, 그보다 더 마음 아픈 것은 쌓였던 세월의 흔적이 사라진 겁니다. 집은 살아가며 다시 장만할 수 있겠으나 추억과 앨범이 재가 되었습니다.” 그의 아픔이 그 정도의 표현으로 충분할 만큼이었을까?
가을이면 자주 일어나는 산불. 비 한 방울 뿌리지 않는 여름 동안 바싹 말라 시들은 덤불들이 바람에 비벼지며 부러시 화이어(Brush fire)를 내기도 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산불이 동시 다발적으로 나기도 한다. 산불이 인가로 내려와 불타고 있는 집들을 볼 때, 곧 붕괴할 것 같은 주택 가까이에서 진화작업 하는 소방관을 볼 때는 보는 사람의 가슴도 함께 타들어 간다. 한 소방관은 자신이 사는 동네에 산불이 번져 진화작업을 하고 있는데 자기 집도 불길에 휩싸였음을 보았다. 곁의 동료가 이동할 것을 권했지만 자기 위치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후 소방관의 집은 전소 되었다.
9, 11테러 사건 때, 뉴욕의 소방관들은 맹렬한 불길에 휩싸인 무역센터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기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소방관의 책임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살려야겠다는 의무와 본분을 다한 것이다. 그 당시 희생된 소방관이 343명이나 되었다. 애석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많은 일을 겪고 사는 우리 인생들. 재난이 없다면 더 말할 나위 없겠으나 삶이 어디 평탄한 날만 있는가. 원인도 불분명한 산불을 겪기도 하고, 빅 원을 대비하라는 경고가 심심찮게 나오는 캘리포니아. 끊임없이 이어지는 재난에 시달리며 살다 보니 우리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일상을 살면서 놓쳐서는 안 될 귀중한 것들에 힘을 실어야겠다.
가을은 끝이 났다. 겨울로 접어들며 산불도 거의 사라졌다.
쉽게 금을 그어 한 계절을 떠나보냈다.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