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칼이 된 테크놀로지
최숙희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구 경희를 인터넷의 ‘사람 찾기 사이트’를 통해 찾았다. 이름과 살던 도시를 넣으니 수십 명의 동명이인이 떴다. 생일과 가족관계로 추리해서 가능성이 높은 사람에게 연락해 보았다. 낯선 번호라 전화를 안 받아 메시지를 보냈는데 요즘 말로 ‘대박 사건’이 일어났다. 내가 찾던 친구가 맞았다. 연락이 왔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1983년 대학 2학년 때 미국 연수를 와서다. 집이 같은 여의도라 연수기간 내내 같은 방을 쓴 A의 단짝친구인 경희는 중학교 때 이민을 왔다고 했다. 워싱턴 DC에 도착하여 A가 경희를 만나러 가며 나를 방에 혼자 두고 갈 수가 없어서 데려갔다가 경희와 나는 친구가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수년 간 편지를 주고받았고 내가 직장 생활할 때 경희가 한국을 방문해서 셋이 만나기도 했는데 어떻게 소식이 끊겼는지 모르겠다.
오래전 미국에서 A를 만난 것도 기적이다. 미국에 온지 얼마 안 된 나는 쇼핑몰에서 작은 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안과진료를 받으러 토런스에 온 A가 백화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나에게 화장실 위치를 물은 거다. 십 수 년 만이었지만 우리 둘은 바로 알아보았다. 이미 탄탄히 자리 잡힌 병원장 와이프인 A에 비해 미국에 갓 온 이민자인 내가 초라해 보이고 자존심이 상했다. 아이들이 어려 바쁜 탓도 한몫 했다. 우린 자주 만나지 못했다.
코비드19 때문에 평소보다 컴퓨터를 보는 시간이 길어져 ‘사람 찾는 사이트’를 알게 되고 메릴랜드에 사는 친구 경희를 찾았다. 드문드문 연락하던 A와 나, 경희 이렇게 셋은 다시 뭉쳤다. 카톡과 3자통화로 살아온 얘기를 풀어 놓고 아련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난다. 장시간 전화를 해도 아쉬워 자세한 얘기는 카톡으로 하자는 못 말리는 아줌마들이다. 나이 들며 행복은 돈이나 물질적인 것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다는 생각이 든다. 내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내 얘기를 들어주고 조언해 주는 친구가 있는 게 든든하고 행복하다.
페덱스 직원 차림으로 나타난 괴한의 총격에 외아들을 잃은 연방 판사 에스더 살라스(Esther Salas)의 인터뷰를 유튜브로 보았다. 판사를 노렸을 괴한은 그녀의 아들과 남편에게 여러 발의 총을 쐈다. 중상을 입은 남편의 간호를 하며 외동아들의 장례준비를 하고 있다며 울먹였다. 주소를 포함한 개인정보를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회사에 조치를 취해 아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해달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온라인 쇼핑을 할 때 주는 집 주소, 크레딧카드, 쇼핑 성향 등의 정보가 쌓여 가공할 규모의 빅데이터를 형성하고 우리를 감시하는 빅브라더 역할을 한다.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이 분석한 결과인지 저녁메뉴를 걱정하면 배달이 가능한 식당 리스트가 뜨고 다운타운 사는 아이의 아파트리스가 끝나 집을 알아보면 부동산 광고가 뜬다. 기계치인 나도 컴퓨터로 친구를 찾았는데 지능적인 해커들은 원하기만 하면 어떤 정보도 손에 넣을 수 있다. 테크놀로지는 양날의 칼과 같아서 편리한 생활여건을 제공해 주는 순기능이 있지만 사생활 침해 요소가 크다. 코로나는 우리가 상상한 이상으로 비대면 사회에 가속도를 준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중에서 가장 이상한 봄과 여름이 주는 낯설음에 어지럽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08/12/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