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nt Mugu오른 날의 단상
최 숙희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가 한풀 꺾여 아침저녁 서늘한 기온이 가을을 알리는 어느 날, 친구가 전화를 했다. RV(Recreational Vehicle)를 마련했으니 캠핑카에서 자고 하이킹을 하자는 초대였다. 석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말리부의 Thornhill Broome campground를 예약했고 모든 준비물을 가져가니 우리부부는 등산화만 갖고 오란다. 복잡한 일상을 떠나 자연과 하나가 되는 캠핑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는 것 같은 즐거움이지만 RV에서 숙박은 처음이라 더욱 설레는 기분이었다. 별도의 침실과 벽난로가 있는 거실, 최신식 설비가 갖춰진 부엌과 샤워실이 있어 바퀴 달린 집(House on Wheels)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다. 에어프라이어에 구운 갈빗살과 한국에서 왔다는 아삭한 고랭지김치가 꿀맛이다. 해질녘 거대한 태양이 빨갛게 숨어버리는 수평선을 보며 마시는 와인의 맛도 일품이다.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이 코를 간지럽힌다. 차량통행이 많은 1번 도로, PCH(Pacific Coast Highway)의 소음을 염려했으나 자동차 소리는 태평양 파도소리에 묻혀 단잠을 이룰 수 있었다.
이른 아침 포인트 무구(Point Mugu)에 올랐다. 옅은 바다 안개에 휩싸인 채 멀리 떠있는 배와 일렁이는 파도가 만드는 하얀 포말이 한 폭의 유화 같다. 발아래 펼쳐지는 에메랄드빛 바다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정상에는 항상 성조기가 높이 펄럭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성조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즐겨 찍곤 한다. 오늘은 깃대 봉을 타고 올라가 셀피를 찍는 한 젊은 여자가 보인다. 필시 페이스 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려는 것이겠지만 국기에 대한 기본 예의도 없는 몰상식한 행동은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포즈를 바꿔가며 천천히 사진을 찍는 이기심은 안하무인격이다.
몇 주 전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인도출신의 여행사진 블로거 부부가 셀피를 찍다가 900미터 아래로 추락해 사망한 신문기사를 읽었다. 보다 완벽하고 아슬아슬한 사진을 위해 위험한 촬영도 불사하다 사망하는 사람 숫자가 점점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배에서 떨어지거나 파도에 휩쓸리는 익사사고, 달려오는 기차 앞이나 벼랑 끝에서 사진을 찍다 교통사고나 추락으로 목숨을 잃는 사례가 보고된다. 관광지의 위험한 절벽이나 고층빌딩 난간에 셀피 금지구역을 설치하고 철저히 감시하는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
몇 년 전부터 YOLO(You Only live Once)라는 말이 유행이다. 인생은 한 번 뿐이기에 현재를 즐기자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의 뜻이다. 한번 뿐인 인생이라 영원히 남을 걸작사진인 ‘인생 샷’을 남기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사진이 목숨보다 중요하진 않다. 자기 행복에 집중하여 주변사람에 대한 배려는 찾을 수 없는 이기심도 문제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 즉 연출된 삶은 진정성이 없는 가면무도회 같다. 가장 화려하고 명랑한 가면 뒤에는 현대인의 가장 초라하고 슬픈 얼굴이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수필 3월호,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