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쓴 딸
최 숙희
11월 말까지 회사에 다니기로 하고 사표를 냈다는 딸의 전화를 받았다. 어디로 옮기냐고 물으니 아직 모른단다. 갈 곳을 정하지도 않고 불쑥 사표부터 던지다니,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차피 12월 15일부터 사무실 문을 닫으니 2주 만 더 버티면 12월 한 달 월급은 받을 텐데. 저축은 좀 있나, 뉴욕 아파트 비싼 렌트를 어찌 감당 하려고. 회사의 방향이 자기가 원하는 것과 달라졌고 요즘은 프로젝트가 없어서 경력에 도움이 안 된다는 설명을 한다.
옮길 작정을 한 후 이력서를 내고 인터뷰를 다니려니 사무실 사람들 눈치가 보여 불편하단다. 연말인데 사람을 뽑기나 하려나. 빠듯한 이민생활로 부모는 내핍생활을 해도 아이들은 돈 때문에 주눅 들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는데 ‘돈 귀한 줄 모르고 세상물정 어두운 아이로 키웠나’하는 자책도 들었다. 2년 전 시니어 디자이너가 되었다기에 전공 살려 제 앞가림은 하는구나, 안심했지만 자식은 항상 애물단지다.
매번 옮길 곳을 먼저 정한 후 사표를 냈는데, 어쩐 일일까. 부모에게 말 못할 사정이 생겼나, 걱정이 앞섰다. 이유를 캐묻고 앞으로 어떡할 건지 채근하니 조개처럼 입을 다물어버린다. 공감과 위로대신 다그치는 말투가 나왔다. 마음이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듣는 충고와 조언은 비난으로 받아들인다는데, 경솔했다. ‘품안의 자식’이라고 스무 살이 넘은 자식의 결정과 선택에는 부모로서 참견할 여지가 없다. 그저 자식의 결정이나 선택이 빗나가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이민1세의 부모는 세상의 다른 부모들이 겪는 세대차 외에도 문화적 차이로 아이와 갈등을 겪는다. 늦은 나이에 이민 왔기에 본인이 자리 잡기 힘든 대신 아이의 성공에서 대리만족을 찾는 경향이 있고, 나도 예외는 아니다. 내가 그리는 로드맵에서 아이가 벗어나면 불안하다. 어떤 인생도 항상 청명할 수는 없고 때때로 비바람과 천둥이 친다는 것을 알지만 자식에게는 기적처럼 꽃길만 갈 것을 강요하고 기대한다.
졸업하고 6년 동안 한 번도 안 쉬고 일을 했으니 지쳤겠구나. 그런 결정을 한 나름의 절박한 이유가 있었겠지. 세상에서 받은 상처와 고단함을 모두 털어버리렴. 지치고 허기진 마음을 위로받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 출발하기를 바란다. 아이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응원과 위로가 필요한 때이다.
내일이면 딸이 집에 온다. 온 가족이 모이는 연말이면 가족들에게 최상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가중되는데 실직한 딸 본인의 스트레스는 더 크겠지.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시키는 곳이 ‘집’이지만 스트레스를 더 갖고 가는 장소도 될 수 있으니 온 식구가 말조심, 행동조심을 해야 한다.
“그동안 회사 다니느라 하고 싶었지만 미뤄둔 일을 하는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렴, 늦어도 괜찮아, 돌아가면 어때, 충분한 휴식에서 얻은 에너지로 산뜻하게 새 출발 하거라.” 다독여야겠다. 딸의 실직으로 심란한 중에도 올겨울에는 아이가 1월 초까지 집에 머문다니 평소보다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기쁘다. 아이들 때문에 롤러코스터 타는 심정이 되는 것은 모든 부모의 숙명이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8/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