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를 생각하며
최숙희
서울 방문 중 친구 두 명과 하얏트호텔 인근 이태리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오랜만이라 장시간 수다를 떨고 싶어 주차에 시간제한이 없다는 이유로 그곳을 정했다. 샐러드, 봉골레 파스타, 피자, 해물 리조또를 시켰으나 리조또 대신 해물 파스타가 나왔다. 재료는 다르지만 파스타를 두 가지나 먹어야 하다니, 재미없지 않은가. 리조또를 시켰다고 하니 민망할 정도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기는 잘못이 없다고 우긴다. 주문을 한 내 친구가 당황하여 “내가 실수로 파스타를 오더했나봐”라고 하여 마무리 되었다. 주방에 물어 리조또로 바꾸어 줄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는 대답을 기대했는데, 서비스업 종사자로서 자질이 의심스럽다. 식당을 잘 차려 놓고 서빙보는 사람 교육을 이렇게밖에 못 시키나 싶어 아쉬웠다. 다행히 음식은 훌륭했고 친구들과 반가운 만남은 이 모든 어이없음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작년 성탄 때 가족과 갔던 맨해튼비치의 P식당이 생각난다. 주차장이 없어서 길거리에 동전주차를 해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게 웬 떡인가. 빨간 헝겊으로 덮인 미터기에 ‘홀리데이 주차 공짜’라는 사인이 붙어 있었다. 옐프의 좋은 리뷰 덕에 사람이 몰리는 곳이고 성탄 전야라 몹시 붐볐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 한 가지가 빠지고 디저트가 나왔지만 온 가족이 모여 기분이 좋았고 음식도 맛있어 불평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말은 해야겠기에 웨이터를 부르니 매니저가 왔다. 빠진 음식은 실수로 주문이 안 들어갔음을 인정하고 금방 해주겠다는 대답을 한다. 메뉴 설명과 달리 디저트에 ‘감’이 아닌 ‘배’가 나온 이유를 물었다. 메뉴회의에서 ‘배’가 더 좋다는 생각에 재료를 바꾸었으나 메뉴를 못 고쳤다며 사과한다. 영수증을 보니 늦게 나온 음식 하나와 디저트가 공짜다. 라스트네임으로 보아 한인이 분명한 매니저의 호의다. 친절하고 다부진 인상의 그가 한인청년인 것이 반가웠다. 그가 처음부터 큰 식당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매니저는 아니었을 것이다. 힘들고 열악한 모든 조건을 견디며 배우고 익힌 후 지금의 위치에 올랐겠지. 자녀들이 화이트칼라의 번듯한 직장에서 일하기를 바라는 한인 부모님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대견하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청년실업문제 뉴스를 귀가 아프게 들었다. 그러나 사업체를 운영하는 친구들은 사람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니 아이러니하다. 특히 정부가 취업준비생에게 월 50만원씩 6개월 동안 지급하는 ‘청년 구직활동 지원금’ 제도를 시작한 뒤로는 부작용이 크다고 불평을 한다. 얼마동안만 짧게 근무하고 일을 그만두어 지원금을 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시급제로 채용되는 경우 신분의 불안함으로 잠시 머물다 가는 일로 인식하고 일을 열심히 안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나. 내가 실망했던 한국의 이태리 식당 서버도 시급제 아르바이트였을까. 서빙일도 열심히 하다보면 매니저로 승진도 되고 식당 경험도 쌓아 언젠가는 식당주인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아쉽다.
어찌 보면 별것도 아닌 일로 발끈하며 옹졸하게 굴었나. 주문을 잘못 받으면 음식 값을 물어낸다든지 하는 나름의 이유와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 식당에서의 경험과 비교하면서 서비스 정신이 부족하다, 프로 정신이 없다고만 탓했다. ‘다른 사람의 모카신(Moccasin)을 신고 두 달 동안 걸어보지 않고서 그를 판단하지 말라’는 인디언의 속담이 생각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라는 ‘역지사지’를 알고는 있지만 실천은 항상 어렵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5/20/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