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상견례
최 숙희
새벽 5시 30분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려고 맞춰둔 알람시계는 2시 30분에 정확히 울렸다. 너무 졸려워 간신히 일어나 고양이 세수만 하고 우버를 불러 공항에 갔다. 치매 진단을 받은 아버지를 동생에게 맡기고 하루 전 LA에 도착한 엄마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느라 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보스턴 공항엔 아들이 나와 있었다. 아파트를 얻어 캘리포니아 변호사 시험공부를 시작했단다. 두 명의 동기생과 룸메이트를 하는데 둘은 사귀는 사이라 방을 같이 쓴다나, 요즘 젊은 세대가 결혼 전 동거를 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실제로 주변에서 확인을 하니 놀랍다. 옛날엔 졸업식에 꽃을 들고 오는 이성 친구를 꽃순이/꽃돌이라고 불렀는데, "너는 누구 없니?" 하고 물으니 오늘 저녁식사에 초대했다고 한다.
LA에서 대학 다닐 때 같은 기숙사를 썼고 보스턴에 와서 둘을 잘 아는 친구가 소개해서 가까워졌다는 설명이다. 중국 여자는 살림을 안 한다고 들었기에 아들 배우자감으로 중국인은 아니었으면 했는데, 하필이면 중국 아가씨란다.
앞으로 어찌 될지는 모르지만 여자 친구를 정식으로 소개하기는 처음이라 좋은 인상을 주고 싶었다. 시간이 빠듯했다. 얼른 샤워하고 머리에 '구루프'를 말고 화장을 했다. 내가 선을 보는 것처럼 긴장되었다. 친정 엄마도 덩달아 화장을 고치셨다.
식당은 분위기와 음식이 모두 훌륭했으나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중국아가씨와 함께여서 영 불편했다. 우리끼리 한국말 하는 것은 매너가 아닌 것 같아 영어만 쓰려니 피곤했다. 키가 크지 않은 남자친구에 대한 배려인지 발레슈즈같은 납작한 구두를 신은 것과 차분한 인상은 맘에 들었다.
이튿날, 대망의 졸업식. 졸업식 연사로 초청된 독일 수상 안겔라 메르켈의 연설도 언어의 장벽 때문에 지루하기만 했다. 그동안 영어 공부를 등한시한 것이 후회스럽다. 성인영어학교라도 등록해야 할까보다.
한 시간 걸려 다림질 했다는 졸업가운을 입고 나온 아들의 얼굴에선 세상과 대적하는 결연함은커녕 아직 어린 티가 줄줄 흐른다. 500명이 넘는 졸업생이 행진하는데 이들과 경쟁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사회로 첫 발을 내딛는 아들아, 성공이 아닌 성장을 꿈꾸며 더 넓은 바다로 나가서 고래를 잡기를.
미주 중앙일보 [이아침에] 7/5/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