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을 향하여 / 장미숙

 

 

목표지점에 이르자 도로 경계석에 주저앉고 말았다. 긴장의 범위가 무너지면서 힘이 풀어지는 느낌이 강하게 종아리를 관통했다. 잠시 그렇게 앉아 있었다. 숨은 가쁘지 않았다. 그때 10km를 채우고 싶은 욕심이 솟구쳤다. 벌떡 일어나 주위 공원을 걷기 시작했다. 다리에도 다시 피돌기가 시작되었다. 2시간 30분, 걷기 외에 목표했던 6km 뛰기를 채웠다. 쉬지 않고 달려온 거리였다. 스스로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그리고 고통의 깊이에 도달해보고 싶어서 벌인 일이었다.

달리기는 어느 날 내 의식 속으로 슬며시 들어왔다. 큰 변화 없는 생활 가운데 반복되는 일상으로 하루를 채워가는 날들은 견딤의 연속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새날을 맞고 평형을 유지하며 고민하고 고뇌하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산다는 건 늘 전쟁 같지만 때로는 고여있는 물처럼 답답하기도 했다.

몇 년 전부터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걷는 것만큼은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생각이 훨훨 날개를 달 수 있어서 좋았다. 의식이 육체에 갇히지 않고 내면과 외면을 오갈 때 주위에는 자연이 빚은 바람 소리가 있고 초록의 풍경이 다채로웠다.

찰랑거리는 햇살과 쫑쫑 지저귀는 새들, 팔랑대는 나뭇잎이 감성과 어우러져 목표가 되고 희망이 되었다. 갇혀 있던 나를 바깥으로 끌어내 다독여주는 시간 앞에 겸손해지고 더욱 진지해졌다. 달리기를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뛴다는 게 생소한 건 아니었다. 사는 일도 달리기와 다름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호젓한 길에 서면 잠들어 있던 욕망이 불쑥 치솟았다. 스스로를 극한으로 내몰고 싶은 종류의 것이었다. 삶이 소용돌이 속에 휘말릴 때는 더욱 그랬다. 그냥 두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절박함 속에서 달리기는 이어졌다. 없는 시간을 낱낱이 쪼개 산길을 걷고 달리게 된 이유였다. 어느 날 비가 몹시도 쏟아졌고 다음 날은 질척거리는 산길을 걷기가 힘들었다. 어쩔 수 없이 평평한 길을 찾아 나섰다.

집 근처에 도시를 잇는 둘레길이 있다. 천을 낀 데다 주위에 초록 식물이 많아 걷고 산책하기에는 그만이다. 하지만 쨍한 햇볕과 오르내림이 없는 길이어서 자주 가지는 않았다. 산길은 높낮이가 있어 지루하지 않지만 평평한 길은 단조로워 쉽게 싫증이 나는 게 문제였다. 게다가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막아줄 숲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때문에 이른 시간을 택했다. 햇볕이 강렬하기 전에 걷고 뛰는 건 가능할 것 같았다. 첫날은 무작정 걸어보자는 기분으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로 들어섰다. 의외로 주위에 생태공원이 있어서 지루하지 않았다. 갖가지 꽃들과 천을 흐르는 물소리가 등을 사뿐히 밀어주었다.

간간이 뛰는 사람을 만났다. 그들의 거친 호흡과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발걸음이 의욕을 부추겼다. 뛰어보자. 처음에는 3km만 채워도 좋을 것 같았다. 그동안 산길에서 자주 뛰었기에 약간의 자신감은 있었다. 단지 장거리에 대한 경험이 없어 두려웠다.

태어난 곳이 산골이라 달리기하고는 어려서부터 친숙했다. 온 동네를 뛰어다녔고 가파른 산도 곧잘 올랐다. 흙먼지 부옇게 일어나는 신작로를 뛰어 학교에 가는 건 예사였고 넓은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숱하게 달렸다. 몸집은 작았지만 재발랐던지 초등학교 때는 100m 달리기 선수로 뛰기도 했다. 하지만 딱 그 정도였다. 더 나아가지 못했고 겨우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빠른 게 고작이었다.

그 후, 아이 학교 운동회 때 학부모 달리기에서 몇 번 뛰어본 것 외에 특별하게 달려본 적은 없었다. 그래도 뜀박질에 대한 본능이 살아있었던 것일까. 뒤늦게 꿈틀거리는 욕망 앞에서 좀 더 젊었을 때 달려보지 못한 게 아쉬웠다. 길은 발걸음이 나아가는 대로 뒤로 물러났다. 옆에서 젊은이들이 전속력으로 추월해갔지만 개의치 않았다. 무리하지 않고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다. 한계가 어디일지 궁금했다.

문득 인생도 이렇게 천천히 꾸준하게 달렸으면 좋았을 걸 싶었다. 힘들다고 포기하거나 지레 피하지 않았더라면 현재의 삶이 안정된 궤도에 들어섰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사는 일이란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하기가 어려운 오래달리기일지도 모른다. 장애물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모두가 같은 지점에서 출발하지 않는 것도 변수의 요인이다. 어떤 이는 보다 우월한 환경에서, 어떤 이는 열악한 상황에서 첫발을 뗀다. 옆에서 끌어주거나 힘을 북돋아 주는 이가 있는가 하면 홀로 꿋꿋이 구간 구간을 버텨야 하는 사람도 있다.

달리다 보니 혼자보다 둘이서 혹은 넷이서 뛰는 사람들이 간혹 보였다. 그들에게는 여유가 있었다. 어우러져 여럿이 함께 가는 인생길이 수월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60년 가까이 살면서 언제나 혼자인 듯 살아온 내게 뜀박질은 숙제처럼 다가왔다. 조력자가 없지만 잘 달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주춤했던 날들의 구멍을 메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주먹을 꽉 쥐었다.

첫날 5km를 가뿐하게 넘은 건 나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건 6km에 도전할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 자못 설레기도 했다. 바윗덩이 같은 몸을 두 다리로 들어 올려 허공에 잠깐 세우는 반복 행위, 그게 바로 달리기라는 걸 실감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을 지탱하는 힘이 분산돼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의미는 충분했다.

첫날은 종아리에 통증이 있었는데 두 번째는 괜찮았다. 그만큼 다리가 상황을 인식한 증거였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무모한 도전에 나설지 모르겠지만 장거리 달리기는 분명 내게 찾아온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잠깐이지만 나이를 잊게 했다. 이제라도 인생 출발선에 다시 선다면 삶의 빛깔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생겼다. 아마도 다음 주, 나는 다시 운동화 끈을 힘껏 조이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수필과 비평 202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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